*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끝자락에서 깊은 수렁으로 파고드는 인간성(3.5)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3번째 영화이자 한정된 공간의 스릴 속에서 고통 뿐인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는 영화이다.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는 밀실이다. 밀실은 바깥 세계 안의 또다른 세계, 즉 단절된 세계이다.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에서 세계는 크게 3개로 볼 수 있다. 스크린 바깥 관객들의 세계, 스크린 안 미국 서부라는 세계, 유마 카운티 끝 마지막 휴게소라는 세계.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가 스릴러로서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유카 카운티 끝 마지막 휴게소라는 세계 외의 다른 세계를 잊게 만드는 즉, 휴게소라는 밀실 공간으로 관객들을 잡아가둬야 한다. 이를 위해 <유카 카운티의 끝에서>는 인물들이 휴게소라는 공간에 갇힐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개별 인물들의 특성과 상황을 엮어 관객들을 휴게소에 가둔다.
출처. 왓챠피디아
유조차가 오지 않는 상황과 휴게소를 나가야 하는 각 인물의 특성과 이유는 단순히 상충되는 에너지가 아니라 세계를 완전히 휴게소로만 한정짓는 에너지이다. 사건에 대한 인물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은 휴게소를 나가려는 힘들 사이 차이를 만들어 더욱 긴박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주와 주 경계에 있는 마지막 휴게소라는 점에서 휴게소라는 세계는 끝이면서 처음인 세계가 될 수도 있었으나 이 영화에서 휴게소는 그저 들어올 수만 있을 뿐 떠날 수 없는 세계 즉, 막장이 된다. 그렇기에 휴게소는 일종의 체크포인트가 된다. 인물들은 휴게소의 주변을 맴돌거나 그 안으로 빨려들어와 포획된다. 이에 따라 밀실과 같은 이 세계는 황량한 사막 너머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빠져나갈 수 없는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블랙홀의 세계에서 외판원은 세계를 유지하는 핵심 인물이다. 외판원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소시민이다. 이혼으로 딸과 떨어져 사는 외판원은 생일을 맞은 딸을 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으나 기름이 부족해 휴게소에 들른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에서 외판원은 주유기 위에 앉은 이름 모를 새에 정신이 팔려 급히 주유 후 딸을 보려 가야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혼 사유는 경제적 무능력이 가장 큰 이유였으며 팔아야 하는 부엌칼도 회사에서 알려준 지침 외의 상황이 벌어지면 파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업무 능력까지 떨어진다. 휴게소 식당 전체를 은행 강도 두 명이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에도 긴장 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에는 이러한 외판원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이 영향을 미친다.
출처. 왓챠피디아
아이러니한 것은 외판원이 우유부단하고 소심했기에 인물들 중 가장 오래 살 수 있었고 그렇기에 없던 죄까지 짓게 되며 그렇기에 가장 비극적이면서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는 휴게소 공간 내부의 사건이 마무리되는 순간 사건의 생존자인 외판원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에 의해 급격하게 긴장감을 잃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느슨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본래는 소시민에 불과한 외판원이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에 의해 우발적이기는 하나 휴게소를 찾아온 부부를 죽이고 그들의 아이를 차에 내버려둔 채 도망가는 모습을 통해 비극적인 웃음을 유발한다. 외판원이 사랑하는 딸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가는 길이라는 점, 경제적으로 무능력해 이혼했다는 점 등 그의 과거사는 그의 행동을 통해 비극으로 화하지만 그의 행동은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죄인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렇게 죄인으로 거듭난 그는 유마 카운티를 넘어 캘리포니아로 넘어가려 하지만 유탄에 의해 차의 연료가 새 애리조나 주와 캘리포니아 주 사이 어딘가에 발이 묶이게 된다. 막장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는 사막에 전복된 유조차처럼 경계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말 그대로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그 다운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서 영화는 외판원이 식당을 떠날 때 십자말풀이에서 풀지 못하던 단어 'loot(약탈하다)'라는 단어는 보여준 것과 반대로 식당의 웨이트리스 '샬럿'에게 보여주기 위해 휴지에 적은 문구는 보여주지 않고 그대로 바람에 날려보낸다. 단순히 맥거핀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이 마지막 장면은 외판원이 밀실과 같은 블랙홀의 세계를 파괴해야 하는 순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그의 마지막 선택은 살인 현장에서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이었다는 것, 도망치던 중 무관한 타인을 죽인 살인자일 뿐이라는 것 외에 다른 사실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외판원, 웨이트리스, 은행 강도, 노부부, 한량, 휴게소 사장, 보안관과 부보안관 등 수많은 인물이 영화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면서 막장을 떠나지 못하고 맴돈다. 고통 뿐인 막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도 있었을 외판원은 마지막 선택으로 인해 어쩌면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딸은 보지 못하고 어쩌면 참작될 수도 있었을 증거는 그저 한낱 변명이 되어 보이지도 못한 채 사막으로 사라진다. 외판원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아침에 주유기 위에 앉아 있던 새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내를 잃어 이성을 잃은 보안관까지 죽인 그가 그 새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고통의 연속인 삶에서 우리는 오늘, 바로 지금, 세계를 마주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