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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 분열의 시대 단상

신촌. 메가박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현재의 '왜'를 떠오르게 하는 미래의 '샷'(4.0)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으로 근무하면서 눈여겨본 영화들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 내전이 발생했다는 독특하면서 자극적인 소재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심이 가기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이 영화에 더욱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비슷할 것 같은데, 작년 그 날이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밤, 갑작스럽게 그리고 생경하게 눈과 귀를 때리던 2024년 12월 3일 22시 23분 계엄령 선포. 근현대사를 공부할 당시, 그저 문자로서 사건으로만 인식하던 그 단어를 삶에서 실재로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 포고에 살면서 이유도 알 수 없는 시기에 계엄령이 내려진 국가의 국민이 되었다고, 나중에 아들, 딸이건, 손주들이건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시대를 산 증인이 되었다고 SNS 스토리에 올렸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행동조차도 너무나 부끄러운 행동이다. 그걸 쓸 때가 아니라 어쩌면 광장에 나가야 했다. 그랬더라면 아직도 현재진행형 중인 그 날의 여파에 나아가 더욱 극단화되고 있는 비민주적 야만 행위에 알게 모르게 불편하고 부끄럽다는 감정을 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처. 왓챠피디아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되기 이전에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는 개봉 예정이었고, 한창 홍보를 할 때였다. 공교롭게도 개봉일은 11월 14일에서 연기된 12월 31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영화 속 미국의 내전은 한국의 현실이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미래가 되었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1월 14일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보수 세력이라는 이들이 결집해 대통령의 무고를 주장하고 있으며 젊은 2030 보수들은 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보수 세력만이 아니라 이른바 진보 세력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대통령의 탄핵과 이를 막으려는 보수 세력에 대한 저항을 위해 광장 결집을 다시 외치고 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듯한 양 세력의 대립은 <시빌 워>의 빨간 안경을 쓴 군인을 떠오르게 한다. 같은 미국인이라는 말에 어느 쪽 미국인이냐고 반문하는 군인의 말은 지금의 정국이 극단화되었을 때를 상상하게 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 키노라이츠

공교로운 호재를 만난 영화 <시빌 워>가 더욱 공포스러운 이유는 영화 속 미국의 내전이 왜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쪽 미국인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화 속 내전은 짧든 길든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갈등의 골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여기서 공포스러운 지점은 갈등이라는 말로도 상상하기 어렵게 너무 얽히고 설켜서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혹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도,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는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너무나 당연하게, 확신에 찬 상태로 서부군이라는 표현, 역사에 다시 없을 승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연설하듯 이미 내전의 원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르게 말하면 내전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불합리하다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불만도 사실 무의미하다. 애초에 당장 보수와 진보로 오늘보다 내일 더, 점점 더 극단화될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극단화된 원인을 알고 있는가? 그 원인을 알고 있다 하여 우리가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겠는가? 아니 그 이전에 원인을 알았다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생각을 '그'가 안 했겠는가? 어쩌면 일어날 일이 발생했다는, 무성의하면서도 무력한 허무주의적 공포가 <시빌 워>에는 전제되어 있다. 바로 그런 공포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고.

출처. 왓챠피디아

그런 허무주의적 공포에 대해서 <시빌 워>는 끊임없이 직시하는 것으로 저항한다.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불합리함, 너무도 쉽게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잔인함 등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며 관찰한다. 당장 누군가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순간, 살려달라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는 순간, 내전 상태에서 자기 일은 아니라는 듯 빠져있겠다는 순간 등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계속 사진을 찍고 있을 거냐는 '제시(케일리 스패니 분)'의 물음에 어떻게 할 것 같냐는 '리(커스틴 던스트 분)'의 물음처럼, 자신을 살리고 등에 총을 맞으며 쓰러지는 리의 모습을 직시하며 카메라에 담는 제시처럼 영화는 끈질기게 렌즈로 그 순간을 담는다. 과거 세대라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현재의 모습이 폭력에 의한 죽음이라는 사실이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이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기억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듯. 더이상 중요한지도 알 수 없는 원인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함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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