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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단상

광화문. 씨네큐브. 메모리.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온전하지 못함에도 오직 그대만은 온전히 떠올리는 기억의 불가역성(3.5)


기억의 불완전함을 통해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역설적인 영화이다. 영화는 불완전한 매체인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지 및 기억 장애, 이른바 치매를 앓고 있는 '사울(피터 사스가드 분)'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강간 기억을 포함해 성폭력 피해 기억을 갖고 있는 '실비아(제시카 차스테인 분)', 언니의 성폭력 피해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해 방치 및 방관하며 관계를 이어온 동생 '올리비아(메릿 위버 분)', 실비아에 대한 남편의 성폭력을 실비아의 거짓말로 치부하는 어머니 '사만다(제시카 하퍼 분)' 등. 인물들 개개의 기억은 과거, 현재에 대한 경험, 믿음, 고정관념 등 각자의 정보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다름에 의해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실비아는 사울을 고등학생 때 자신을 강간한 학생 중 한 명이라고 기억한다. 올리비아는 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언니의 모습을 어린 나이에 봤기에 그 당시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전술했듯 사만다는 실비아의 성폭력 기억을 자신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엇나간 딸의 거짓말이자 망상이라 생각한다. 입으로 외우(記)고 마음에 새긴(憶)다고 하지만 결국 각자 자신에게 남기는 이상 인간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불완전성을 지니게 된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처럼 불완전한 기억에서 <메모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뉘앙스를 강하지만 잔잔하게 내포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사울은 고등학교 동창의 파티에서 실비아를 보고 첫 눈에 반한 듯하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사울에게 실비아에게 반한 기억이나 실비아를 따라 그의 집까지 따라간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실비아를 보고 그의 말에 귀기울이며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메모해도 되는지 묻고 적어놓는다. 보통은 인지 및 기억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상대에게 실수 혹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 여기고 그가 사려깊은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로맨틱한 상상을 더하면 불완전한 기억의 저 밑바닥에 남아 있는 실비아에 대한 감정이 잉크가 물에 퍼지듯 서서히 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행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동생 '아이작(조쉬 찰스 분)'의 과보호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던 사울이 실비아를 불순한 목적을 갖고 접근한 여자라 여기고 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아이작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나 실비아의 딸 '안나(브룩 팀버 분)'의 설득에 실비아를 보러 가는 행동은 실비아를 향한 감정만큼은 불완전한 기억 속에서 불가역적인 기억인 것은 아닌가?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당황하는 관객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실비아와 그 가족의 관계, 실비아와 사울 가족의 관계, 사울과 그 가족의 관계 등 아직 어떻게 마무리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사울이 실비아의 집으로 찾아와 둘이 포옹하며 끝나는 결말은 어딘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결말과 불완전한 기억. 기억이 불완전하다 하여 사람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불완전하다 하여 실비아와 사울의 사랑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사람이 불완전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잊지 않으려 해 끝내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이라는 진행형으로 끝나기에, 즉 불완전한 결말로 마무리되기에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완전한 사랑이란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게 진행되면서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자 그러한 순간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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