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메가박스. 씨너스: 죄인들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과할 정도로 밀어넣은 음악으로 꼭 쥐게 되는 공동체의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3.5)
음악을 문화적 매개체로 사용해 현대와 과거를 이으면서 미래의 바람으로 나아가려는 영화면서 조금은 힘이 과하게 들어간 듯한 영화이다. 우선 이 영화는 과거를 비추면서 그 뒤로 현재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부족 사회의 민속 음악, 블루스, 랩, 클럽 DJ까지 과거부터 현대의 흑인 음악이 총망라된 영화의 스펙트럼에 귀가 즐겁다. 하지만 단순히 즐겁다는 감정을 넘어서 어느 순간 돌비시네마로 영화를 보는 내내 단 한시도 빠지지 않고 귀에 들어오는 흑인 음악에서 그 안에 담긴 한(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정치적 평등은 이뤄졌으되 실질적 평등은 여전히 요원한 193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조응해 블루스에 담긴 흑인들의 한은 스크린을 통해 거대한 공감각적 파도를 이끌어내어 블루스를 모르는 관객이라 해도 본능적으로 그 한에 반응케 한다.
특히 주류 백인 자본주의 문화와도 연결되는 뱀파이어를 활용한 은유는 흑인들을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까지 억압하면서 그들이 마치 주류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현재를 떠올리게 한다. 주류 문화 혹은 집단이 매력적인 문화적 산물과 그 주체들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산물은 공동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정신을 잃고 오로지 대중의 욕구만을 충족하게 되며 주체들은 서로 분열하게 되는 양상. <씨너스: 죄인들>은 1930년대 남부 미시시피, 흑인 음악 블루스, 아일랜드 출신 뱀파이어 등을 엮어 과거 인종차별의 공포가 현재에도 실재한다는 사실로 관객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다만 영화에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나오는 사운드들은 과하다는 느낌도 든다. 30년대를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흑인 소작농들의 삶을 전하는 블루스는 그 자체로 리드미컬해 좌석에서 발을 구르고 어깨와 목을 들썩이게 한다.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영화 속 흑인들의 삶과 동화되어 그들의 음악 속에서 감정의 파도를 느끼는 과정은 영화관에서 <씨너스: 죄인들>을 관람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만 그와 별개로 영화 러닝타임 중 거의 모든 순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사운드는 어떤 순간에는 과하게 느껴져 지친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이 영화는 137분 간의 스탠딩 콘서트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음악으로 관객들을 홀린다. 다르게 말하면 홀린 것을 깨달은 순간 음악과 감정에 동화되어 누적된 피로로 지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씨너스: 죄인들>은 영화관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하는 순간 속에서 봐야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차별과 혐오라는 공동체적 문제에 대해서 흑인이라는 집단의 경험과 기억을 음악을 통해서 공유할 때는 관객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일 때 더욱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그만두라고 맹세하라는 아버지 앞에서 완전히 망가져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기타의 헤드를 꼭 쥔 젊은 '샘(마일스 케이턴 분)', 살아남은 뱀파이어로 자신을 찾아온 '스택(마이클 B. 조던 분)'과 '메리(헤일리 스테인필드)'에게 전자 앨범이 아닌 기타로 과거의 블루스를 연주하는 나이 든 샘(버디 가이 분), 뱀파이어 사태가 있기 전 흑인들이 함께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기며 자유를 느낀 주점 주크 조인트에서의 밤이 가장 행복했다고 공유하는 스택과 샘의 모습을 이해하는 과정은 관객이라는 집단으로 영화를 볼 때 더욱 와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