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메가박스. 엘리오.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보이저의 질문에 답하는 픽사의 상상력과 사랑(4.0)
인간의 근본적인 공포와 외로움에 대해서 우주를 소재로 픽사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답하는 영화이다. <엘리오>는 엘리오가 우주항공박물관에서 보이저호 영상 전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시퀀스를 통해 주인공 '엘리오(요나스 키브리업 목소리)'가 느끼는 외로움을 드넓다는 말로는 부족한 우주에서 단 하나의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공포와 외로움으로 연결한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존재의 근원이자 실재적 소속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립할 때까지, 나아가 어느 정도 확립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정체성의 기반인 부모를 잃었기에 엘리오는 인간임에도 지구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자 실재적 소속지를 거부한다. 지구에서 자신의 근원과 소속을 확인할 수 없다고 시시각각 느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엘리오는 복합적인 방어성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기본적으로 엘리오는 자신의 근원과 소속을 찾으려는 주체적 인물이다. 하지만 엘리오의 주체성은 지구라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바깥의 확인된 적 없는 불확실한 존재를 향해 있다. 동시에 엘리오는 자신의 공포와 외로움을 고모 '올가 솔리스(조 샐다나 목소리)'가 알아주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엘리오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같다. 자기 생명의 근원과 존재의 소속을 모르기에 공포와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느끼는 인간이 불확실한 외계 생명체를 찾아 우주로 보이저호를 쏘아올리는 것이 엘리오의 인물성과 겹쳐보인다.
이런 엘리오의 복합적인 인물성을 고려하면 <엘리오>의 결말에서 엘리오가 고모와 함께 지구로 돌아오는 것은 단순히 가족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주체적이나 방어적인 엘리오는 지구가 아닌 우주를 바라봤다. 자신이 바라던 대로 커뮤니버스에서 외계인과 조우하고 관계를 맺게 된 엘리오는 지구의 대사를 자처하고 '그라이곤(브래드 가렛 목소리)'과 협상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자신을 과대포장한다. 이러한 엘리오의 모습은 지구에서 가족과 교류하고 또래와 관계를 맺으며 안정되었어야 할 근원적 공포와 외로움이 억눌려 비대해졌다가 과하게 발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엘리오의 근원적 공포와 외로움이 위로와 치유를 받는 것은 크게 2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글로든(레미 에절리 목소리)'과 쌓은 우정이다. 하지만 글로든과 맺은 우정은 엘리오에게 근본적인 위로나 치유가 될 수 없다. 글로든은 아이의 근원과 소속인 부모를 잃은 것이 아니라 소속된 하일러그 사회에서 일종의 어긋남을 느끼는 것이기에 글로든에게 필요한 것은 과할 정도로 자신들을 감추며 공격성을 드러내는 하일러그 사회 혹은 사회를 이끄는 아버지 그라이곤에게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는 용기이다. 둘의 우정은 서로에게 잠시 안정감을 선사해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이다.
엘리오가 진정으로 위로와 치유를 받는 것은 고모 올가와 함께 전세계 아마추어 무선 모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우주선을 타고 커뮤니버스로 돌아갈 때이다. 커뮤니버스로 돌아가기 위해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를 피해야 하는 엘리오와 올가를 위해 미국, 베트남, 일본, 인도, 프랑스 등 전세계 사람들이 궤적을 파악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실시간에 가깝게 소통하는 이 장면은 실제로 있을 것 같지 않은 것을 넘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이른바 초연결사회에서 '초연결'이라는 것에 대해서 과학적 진실 혹은 태도를 곁들인 아이스러운 상상력이 빅뱅하는 장면이다. 지구 바깥에서 자신의 근원과 소속을 확인하고자 했던 엘리오에게 초연결의 빅뱅은 있다는 것을 잊고 있던 혹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실재적 감각을 일깨운다. 자신의 꿈인 우주비행사를 포기하고 지상에서 엘리오의 보호자이기를 선택한 고모 올가가 함께 우주를 여행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기도 한 지점에서 엘리오가 느낀 감각은 근본적인 위로이자 치유인 것이다. 이러한 위로와 치유를 받은 엘리오에게 지구와 커뮤니버스 중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순간이다. 지구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근원적 공포와 외로움에 맞서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기에 엘리오는 고모와 함께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엘리오의 지구 귀환은 가족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자 아이가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픽사는 아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하게 하고 아이를 통해서 우리 존재를 돌아보게 하기에 다정하다. 엘리오라는 인물의 복합성은 단순할 것 같은 아이를 한 번, 두 번 바라보게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생각하게 한다. 엘리오가 느끼는 근원적 공포와 외로움은 우리가 느끼는 공포와 외로움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러한 공포와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우리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픽사는 자신들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시대를 반영해 관객을 아이였던 순간으로 돌아가게 하면서도 동시대에 느끼고 있을 무언가를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어쩌면 픽사의 다정함은 공통된 추억 매개체를 갖기 어려운 최근 세대에게 공통된 추억 매개체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세대의 장벽을 넘어 잠시 멈춰선 채 서로를 관조할 수 있게 하는 마지막 공통 경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