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청. 어울마당. 레즈우주공주. 2025 BIFAN 1일차.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MZ식 자존감과 레즈비언의 조금 아픈 비틀기와 지루한 반복(3.5)
매력적인 퀴어 세계관과 상상력으로 펼쳐진 우주를 배경으로 MZ 레즈비언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병헌 배우가 왔기에, 딱히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없었기에, 이번이 아니면 또 극장 스크린에서 보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기에 등등의 이유로 기개봉작을 중심으로 올해 29회 BIFAN을 즐겼다. 총 6편의 영화를 관람했는데 이 중 <레즈우주공주>는 메리 고 라운드 섹션에서 한국 프리미어로 공개된 상영작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퀴어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레즈우주공주>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적 쾌감이라 한다면 퀴어-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영화에서 SF는 퀴어 우주, 외부 우주, 이성애 우주 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우주 공간, 광대한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 등 거진 배경에 불과하다. 영화의 재미는 "이불 밖은 위험해"와 같은 지나칠 정도의 불안감에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우울감이 겹친 극내향형 인물 '사이라(샤바나 아제즈 목소리)'가 전 애인인 '키키(버니 반 텔 목소리)'를 구하러 가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사이라가 어떤 비틀린 사건을 마주하는지이다.
SF와 퀴어라고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현실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레즈비언 왕국인 클리토폴리스 행성을 다스리는, 그러니까 부모(?)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사이라의 부모(?)는 자식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문제시만 할 뿐 거의 방치하는 느낌이다. 자식이 언젠가 스스로 이불 밖에 나와 자신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가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환하는 자신만의 전쟁 도끼 로열 라브리스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환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세상을 두려워 하며 이불 안에만 있던 딸을 돌보다 지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애초에 지쳤다고 해서 방치하는 태도가 옳은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들에게는 그저 오늘밤 열릴 파티가 흥겹고 즐거운 것 그리고 자신들이 그 파티에서 빛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부모(?)만이 아니라 퀴어 우주의 다른 이들도 사이라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비웃고 그가 키키와 연인 관계를 맺는 것을 시샘할 뿐 그를 위로하거나 응원하는 이들은 없다. 유일하게 사이라를 응원하는 듯한 '블레이드(퀸 콩 목소리)'도 사이라를 이용할 생각으로 응원의 댓글을 남겼을 뿐이다. 사이라가 걱정했듯 이불 밖 세계는 그것이 퀴어 중심의 세계라고 해서 다를 것 없이 잔혹하고 위험한 것들로 가득하다.
<레즈우주공주>의 블랙코미디적 쾌감은 남성성을 비트는 것에서 폭발한다. <레즈우주공주>에서 남성성은 크게 두 인물군에서 보인다. 하나는 자신에게 너무 의존적이라는 이유로 사이라에게 이별을 고한 현상금 사냥꾼 키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키키가 다른 여성들과 함께 하는 잠자리에 침임해 여성들을 살해하고 키키를 납치한 이성애 백인 분필남 3명이다. 두 인물군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남성성의 진실은 일종의 비대한 자아와 그 속에 자리한 찌질함이다. 영화에서 키키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실력 갖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쉽게 분필남들에게 납치당하고 납치당한 뒤에는 그저 말 뿐인 탈출을 시도한다. 실제로는 계속 로프에 묶인 채 산성 액체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이별을 고한 사이라에게 뻔뻔하게 구원을 요청한다. 분필남들은 자신들은 괜찮은 사람인데 여성들이 자신들의 진가를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여성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심지어 그토록 원하는 여성들에게 대해서는 알려 하지도 않으면서 여성들만 끌어모으면 그 중에서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토록 자신감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조언은 안 듣고 큰 소리만 내는 그들이 사는 곳은 더럽고 습한 동굴이며 자신들 외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다. 비대한 자존감으로 자신의 찌질함을 감추는 두 인물군의 모습은 우습기 그지 없다.
다만 이러한 블랙코미디의 쾌감과 별개로 키키를 구하러 가는 사이라의 여정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느낌이다. 자기 자신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극복해 로열 라브리스를 소환한 사이라가 멋들어지게 라브리스를 휘두르며 위기를 극복하지도, 혹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 장점을 찾아 자존감까지 높여준 '윌로우(제마 추아 트란 목소리)'를 선택하고 그와 함께 키키를 구하러 가지도 않는다. 윌로우 대신 키키를 선택해 윌로우와 헤어지고 소환한 라브리스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어둠으로 끌어당기는 우울감과 분필남들에게 "어쩌라고"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키키를 구한 다음 다시 혼자 분필남들의 행성을 떠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사이라의 자존감 성장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는, 지극히 유아적(唯我的) 성장처럼 보인다. 그러한 성장을 눈앞에서 본 덕분인지 몰라도 분필남들이 이성애를 넘어 서로 짝이 되어주는 퀴어적 성애의 결말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에 따라 존재적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는 코믹함을 영화는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유아적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사이라의 불안하고 우울하며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반복적으로 목도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관계를 통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이자 또 다른 자아일 윌로우를 중간에 서사에서 배제한 이후 유아적 성장으로 끝나는 것은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