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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단상

부천시청. 어울마당. 번지 점프를 하다. 2025 BIFAN 1일차.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시대의 한계 혹은 도전이었을 윤회의 비극(4.0)


올해 29회 BIFAN에서 기개봉작 위주로 즐긴 이유 중 하나는 이병헌 배우 특별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병헌 배우의 초기 작품들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봤던 작품들을 제외하고 2000년대 작품 2개를 예매했고 그 중 하나가 2001년에 개봉한 <번지 점프를 하다>이다. 지금 개봉하면 다른 의미에서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 <번지 점프를 하다>는 퀴어와 윤회를 활용한 멜로 영화이다. 퀴어적 소재와 관련해서 영화는 2000년대 전후 한국 사회가 배경이기에 상당히, 아니 굉장히 전적으로 퀴어성을 혐오하는 모습이 제시된다. 퀴어성만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적 표현도 다수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보는 누군가는 시대착오적인 혹은 단순 혐오적 영화로 평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번지 점프를 하다>는 여성, 퀴어, 동성애 등에 대한 인식이 낮은 혹은 거의 없던 당시에 제작 및 개봉되었다는 점에서 시대적 도전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번지 점프를 하다>는 시대적 한계와 도전이라는 양면성이 명확한 영화이기에 번지 점프를 하기 전 굳은 마음을 먹는 것처럼 영화의 시대적 배경, 영화 속 한국 사회, 인물의 대사 등을 받아들인다는 마음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이병헌 배우 초기의 연기를 감상한다는 목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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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이러한 시대적 한계와 도전이라는 양면성 외에 영화에서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결국 이 영화에서 퀴어와 동성애는 정상적 사랑으로 여겨지는 이성애를 합리화하는 도구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인우(이병헌 분)'와 고등학생 '현빈(여현수 분)'의 관계는 과거 국문과 인우와 조소과 '태희(故 이은주 분)의 관계 연장선에 있으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관계가 아니라 과거 관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수업 시간에 첫 사랑에 대해서 태희와 비슷한 발언을 하면서도 자신과 '혜주(홍수현 분)'이 인연이자 운명적 사랑이라고 말하는 현빈의 모습은 서서히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 하는 태희의 귀신에 의해 사라진다. 즉, 인우와 현빈의 동성애적 관계는 동성애 그 자체로서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는 서사적 주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현빈이 인우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태희와 사랑을 위로하는 염매이자 혜주와 사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서사적 도구로 쓰인 것이 아니다. 그저 생을 넘어 이어지는 영원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위해 사고로 완성되지 못한 태희와 인우의 관계를 비추고 현세에서도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로서 서사적 도구에 불과하다. 인우와 현빈이 뉴질랜드로 가 번지점프로 동반 자살을 하는 모습, 마치 자유롭게 함께 날며 서로를 계속 사랑할 거라고 다짐하는 것이 인우와 태희라는 점, 서로 여자로 태어나도 그 때도 결국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끝을 동반 자살로 그렸다는 점 등에서 퀴어와 동성애를 이성애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것은 단순한 시대적 한계를 넘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으로 <번지 점프를 하다>를 보며 느낀, 2000년대 전후 한국 영화를 봤을 때 좋은 점은 지금은 워낙에 잘 알려진 배우들의 젊은 시절 혹은 무명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 자살로 세상을 떠난 故 이은주 배우와 그와 합을 맞춘 이병헌 배우는 각각 당차면서도 아련하고, 순수하면서도 욕망을 드러내는 태희를, 순수함과 부끄러움이 많으면서도 이따금 보이는 장난기, 상대방을 향한 믿음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인우를 섬세하게 그린다. 동시에 특별출연인 김갑수, 이범수를 비롯해 단역 시절 남궁민, 김민재, 김정학, 박철민, 김정영 등 현재 한국 콘텐츠 업계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배우들의 연기는 "와 저 때나 지금이나 참 비슷하네", "저 때 연기랑 지금 연기랑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다르다" 하는 느낌으로 보는 맛을 더욱 높인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전후 한국 영화를 볼 때는, 다시 말하지만 영화가 옳다, 그르다와 같은 도덕적 판단 보다는 시대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는지 혹은 있을지를 인정한 후 다른 재미를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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