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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단상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그해 여름. 2025 BIFAN 2일차.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그 때 그 시절 소나기의 이야기가 있었다면(3.0)


우연의 일치로 올해 BIFAN에서 관람한 영화들은 모두 부천시청 내 상영관에서 만났다. 부천시청 2층에 있는 어울마당과 1층에 있는 판타스틱큐브이다. 6편 중 3편은 어울마당에서, 3편은 판타스틱큐브에서 봤으니 굉장히 공정하게 상영관을 나눈 것이라 할 수 있다. BIFAN 1일차에 관람한 영화 2편은 모두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본 것과 다르게 2일차에 관람한 2편은 판타스틱큐브에서 봤다는 점에서도 BIFAN을 방문한 기간 동안 상당히 부천시청의 공간을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고 자평할 수 있겠다. 쉰소리는 그만하고 2025 BIFAN에서 준비한 이병헌 배우 특별전인 '더 마스터: 이병헌'의 상영작 <그해 여름>은 판타스틱큐브에서 본 첫번째 영화이다. 판타스틱큐브에서 본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나름 가깝다면 가까운 독립영화 상영관이었으나 가봐야지 하면서 가본 적이 없었는데 독립영화관으로 운영하지 않게 된 올해, BIFAN을 통해 판타스틱큐브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된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결국 언제까지고 미루지 말고 생각날 때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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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왓챠피디아

2006년 개봉한 <그해 여름>은 배우 이병헌과 수애 주연의 멜로 영화로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시대와 인물들의 나이를 바꾼다면 이런 이야기일 것 같다는 영화였다. 여담으로 영화에 대해 조사하던 중 보니 김은희 작가의 입봉작이라고도 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2001)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이자 멜로라는 장르적 특성으로 성별에 따른 인물 묘사, 인식의 변화 등에서 한계가 명확한 편이나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 합을 보는 재미가 있다. <번지 점프를 하다>의 '태희(故 이은주 분)'와 마찬가지로 흔히 말하는 여성적인 면만으로 '정인(수애 분)'이 그려지는 것 같으나 사건에 대한 주체적인 대응이 '석영(이병헌 분)'보다 높다는 점, 이러한 두 인물의 차이를 두 배우가 좋은 연기합으로 보여준다는 점도 영화의 재미를 고조시킨다.


석영의 경우 당시로 따지면 지식인에 해당하는 대학생이나 삼선개헌에 대해 반대하는 대학생 사회의 여론에 무관심하고 건설사 사장인 아버지를 두고 있어 경제적으로 부유해 놀고 먹으며 매력적인 이성과 만나 연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일 뿐이다. 대학생들이 농촌민들과 교류하며 노동력만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는 것에 목적을 둔 당시의 농촌 활동에도 마치 MT를 따라가듯 가 모기 때문에 하룻밤만에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 달리 정인은 농촌민들의 생활을 증진시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도서관을 만든 지식인이자 사회주의 활동을 한 아버지를 두고 있어 반공의식과 공동체의식이 뒤섞인 농촌 수내리에서 미묘하게 겉돌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 내내 정인과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수내리의 이장 '김씨(정석용 분)'와 다방 점원 '엘레나(이혜은 분)' 뿐이며 마을 사람들은 정인을 딱하게 여기면서도 직접적으로 챙겨주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주체성이 더 높은 인물은 정인으로 둘의 관계를 부정해야 하는 취조실에서 정인은 석영의 안전을 위해 진실되게 관계를 부정하며 스스로를 희생한다.


그래서 사실 멜로라는 장르적 특성에 충실한 영화로 <그해 여름>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이나 항상 비슷한 연기톤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은 수애 배우의 연기가 정인에 잘 녹아들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수애 배우의 정인과 마찬가지로 이병헌 배우는 석영을 연기하며 둘의 관계 변화에 높은 설득력을 부여한다. 멜로 영화인 만큼 두 인물의 감정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고 그런 와중에 크게 동하게 되는 장면들이 많다. 그 중 상대를 보다가 상대가 눈을 뜨려고 하면 눈을 감는 정인과 석영의 모습을 담은 마을 장터 잡화가게 유리창에 기대어 LP판의 음악을 듣는 장면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두 인물의 감정이 애틋하게 느껴져 미소가 지어진다. 급변하는 정치 상황으로 농활을 급히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정인과 함께 서울로 가기 위해 비를 뚫고 돌아오는 석영의 모습이나 취조실에서 벌벌 떨면서 자신과 관계를 제대로 부정하지 못하는 석영을 보고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 그를 지키기 위해 먼저 똑부러지게 관계를 부정하는 정인의 모습 등도 감정을 움직이는 장면들이다. 덧붙이자면 이병헌과 수애 배우의 연기만이 아니라 최덕문, 유해진, 정석용, 오달수 등 연기파 배우들의 젊은 시절 연기도 씬스틸러라는 점에서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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