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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포인트 단상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알 포인트. 2025 BIFAN 2일차.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가해자의 피와 공포로 넋을 위로하는 위령화(4.0)


원래라면 지갑을 직접 열어 공포 장르 영화를 보는 일이 손에 꼽는다. 돌이켜보면 공포 장르 영화를 '내돈내산'으로 영화관에서 본 일이 이번 <알 포인트>까지 해서 3번 정도 되는 것 같다. 공포 장르 소설이나 만화를 보고 읽는 것이 더 마음 편하지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들, 특히 그림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인체들이 겪는 공포를 보는 것은 참기 힘들기 때문이다. 보고 나면 괜히 잠자리가 뒤숭숭하거나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뒤척이며 두려워 하고 있어 공포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은 참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알 포인트>는 안 볼 수가 없었다. 정식으로 재개봉할 일이 없다고 여겨져서인지 이번 제29회 BIFAN에서 놓치면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더 어렵다고 느껴졌다. 어린 시절 묘하게 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쳐다보고 싶다가도 무서워서 고개를 돌리게 되는 <알 포인트>의 포스터를 눈앞에 둔 순간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것에 홀려 '지금이 아니면 못 본다!'라는 생각으로 께름칙한 기분과 함께 예매를 했다. 판타스틱큐브에서 보는 두번째 영화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판타스틱큐브라는 작은 영화관에서 관람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크린 속 세계가 묘하게 더욱 강렬한 힘으로 빨아들였다. 그 힘에 몰입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대던 관객에게서 핸드폰을 뺏아 영화관 밖으로 던져버렸으리라. 뿌연 안개가 낀 듯 동공 없이 회색빛인 감우성 배우의 눈이 지닌 마성처럼 <알 포인트>의 공포는 그만큼 강렬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시절 한국, 미국, 프랑스, 베트남의 군인들이 등장 혹은 언급되는 영화를 보면서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 가해자, 피해자 등의 키워드를 떠오른다. 그런 가운데 한국군이 공포를 경험하는 주체로서 끝내 모두가 온전하게 귀환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 떠오른 키워드와 함께 더욱 공포를 가중시킨다. 한국과 베트남 모두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라는 역사를 공통적으로 경험했다. 나아가 한국은 광복 이후 약 5년이 지나 냉전 시대 최초의 대리전이라는 6.25 사변을 겪었다. 이후 한국은 냉전 시대 대리전인 베트남전에 아이러니하게도 파병을 보낸다. 비슷한 피해자로서 역사를 경험한 두 국가에서 한 국가가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에 가해자로서 충돌한 것이다.


KakaoTalk_20250721_164944895_02.jpg 출처. 왓챠피디아

<알 포인트>에 등장하는 군인 즉, 정규군 귀신들을 살펴보면 프랑스군, 미국군, 한국군으로 침략군이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 냉전 시대 대리전을 통해 동남아의 공산주의 확대를 막으려 했던 미국, 그런 미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병한 한국. 명분이야 어쨌든 간에 3국은 직간접적으로 제국주의와 연관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침략군으로 3국의 군인들은 베트남을 침탈해 손에 피를 묻혔다. 그렇기에 3국의 군인들은 알 포인트 경계에 있던 비석에 적힌 것처럼 죽어서도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생존자 '강 대위(안내상)'를 제외한 모두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군의 당나귀 삼공 수색대원들은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잊지 말라며 구해달라며 구슬프게 귀신의 목소리로 운다. 일종의 한국군의 경계성일지도 모르겠다. 냉전 시대의 이념 전쟁, 국가 경제 회복, 뒤틀린 현대사 등 다양한 이유들로 미국에 의존해야 했던 한국은 베트남과 비슷한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침략군으로서 베트남에 발을 들였다. 다만 역사적 사건의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국가의 명으로 베트남을 밟은 군인 개인들만이 베트남의 전장에서 자신들을 잊지 말고 고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을 뿐이다.


당나귀 삼공 수색대의 생사를 조사 임무로 알 포인트에 오기 전 '최태인 중위(감우성 분)'는 베트남 사창가에서 사창가 여인에게서 자장가를 듣지만 잠들지 못한다. 방금 열락의 순간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그와 함께 자리에 했던 사창가 여인은 호흡이 고르다. 동시에 총성과 함께 들린 비명에 기다렸다는 듯 바로 총을 들고 일어선다. 최중위가 오래도록 전쟁에서 구른 경험 많은 군인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그가 전쟁으로 온종일 긴장 상태로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헌병대에 끌려간 그가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장면을 보면 감우성 배우의 눈매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단순히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원망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보는 듯하다. 지옥과 다름없는 전쟁으로 밀어넣은 당사자는 전장에 없다. 대신 그를 대리해 전장을 구르는 동안 자신이 매일 같이 죽음을 보고 죽기를 바라다가도 살고 싶어 하는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도록 만든 것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을 아닐까? 사창가에서 죽인 베트콩 여자인지 알 포인트에 진입하기 전 죽인 베트콩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알 포인트 귀신의 모습은 그가 느끼는 죄책감을 보여주는 듯하다. 국가를 대리해 침략군이 된 최중위처럼 두더지 셋 수색대의 대원들은 침략군으로서 가해자이나 동시에 국가에 의한 피해자이며 이들은 손에 피를 묻혔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계성의 인물들이다.

KakaoTalk_20250721_164944895_01.jpg 출처. 왓챠피디아

그런 두더지 셋 수색대의 대원들이 겪는 공포는 결국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서 비롯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전쟁에서 베트콩이라 부르며 베트남 사람들의 고향과 터전을 침탈하고 그들을 죽인 이들은 손에 피를 묻힌 상태에서 자신들의 죄를 베트남에 묻어버린 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알 포인트에 발을 들인다. 짬밥이라 불리는 '마원균 병장(박원상 분)'이나 군악대 소속인 색스박 '박재영 하사(故 이선균 분)'처럼 직접적으로 전장에서 죽인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이는 이들도 파병되어 베트남에 발을 들인 순간 이미 침략군과 다름없다. 자신들 밖에 없는 알 포인트에서 자신들이 마주친 존재들이 모두 귀신이라는 진실, 그런 공포 속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죄책감 등을 겪는 동안 그들은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은 강해지되 자신들의 원죄, 그러니까 침략군으로서 베트남을 짓밟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그들 역시 국가에 의해 파병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알 포인트>는 굉장히 슬픈 공포 영화로서 하나의 위령화(慰靈畫)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는 모두 구천을 떠도는 군인들을 잊었다. 국가에 의해 파병된 군인 사병들, 그러니까 미군은 베트남의 어딘가에 있는 알 포인트에 갇혀 조국과의 관계를 부정하며 그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거나 한국군은 자신들을 잊지 말고 구해달라고 피를 흘리며 울부짖을 뿐이다. 이중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 울부짖는 한국군의 원령은 두 가지의 치유 효과와 한 가지를 깨닫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상상해본다. 치유 효과 중 하나는 경계성에 있는 한국군의 공포는 국가에 의한 피해자로서 그들의 처지를 떠오르게 하면서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 그들의 원한을 치유한다. 다른 하나는 피해자라 할지언정 결국 그들 역시 가해자이기에 그들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죽음을 경험한 베트남인들의 원한에 사죄를 구하며 베트남인들의 원한을 치유한다. 이러한 치유 효과에서 나아가 현재까지도 베트남전에 대해서 당시 파병된 군인들에 대해서, 나아가 당시 있었던 전쟁 학살에 대해서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가 없었다는 점을 떠오르게 한다. 단순한 공포 영화로 즐기기에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힘을 당하고 있는 원한을 상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알 포인트>의 공포는 께름칙함에도 홀리게 되어 보게 되는 마성적인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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