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시청. 어울마당. 나만의 비밀. 2025 BIFAN 3일차.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너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나는 모르는 그 시절의 풋풋함(4.0)
학원 청춘물하면 크게 두 나라가 생각난다. 대만과 일본. 두 나라의 학원 청춘물은 즉각적인 시각적 차원의 색감 면에서 보면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외의 소재 차원에서 보면 대만의 학원 청춘물은 '첫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반해 일본의 학원 청춘물은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청춘과 젊음을 상상해 연출하는 듯하다. 대만의 학원 청춘물은 이른바 청춘 스타라 할 수 있는 배우들을 내세워 아직 서툴고 어리숙한 청춘의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감정의 정동이라 할 수 있는 첫 사랑을 대중적이고 오락적으로 풀어내는 것에 집중한다. 가장 최근에 본 대만 학원 청춘물인 <여름날의 레몬그라스>(2024)나 한국의 <너의 결혼식>(2021)을 리메이크한 <여름날 우리>(2021)만 해도 2015년 개봉한 <나의 소녀시대>와 비교해서 색감, 배우, 감정 등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 직접적으로 보게 되거나 느끼게 되는 1차원적 요소들의 구성이나 단상이 변화한 것을 느끼기가 어렵다.
반면 가장 최근 정말 인상깊었던 일본 학원 청춘물하면 떠오르는 <썸머 필름을 타고!>(2020)은 여고생-사무라이-사랑-로맨스물이라는, 엮일 수 있는지 의문부터 드는 소재들을 엮어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관계에 대해서 고뇌하고 자신만의 사랑을 꿈꾸고 사랑하는 고등학생들의 청춘과 그 미래를 담았다. 제29회 BIFAN에서 관람한 <나만의 비밀>의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2023)도 마지막 졸업생들의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를 앞둔 학교에서 성인이 되기 전 여고생 4명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내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는 인상깊게 보지 않았으나 학원 청춘물하면 떠오르는 싱그러움, 젊음, 풋풋함 등의 이미지 대신 끝과 종말과 같은 이미지에서 느낄 수 있는 아쉬움, 그리움, 두려움 등의 감정을 중심으로 청춘을 새롭게 보는 시각과 시도가 인상깊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학원 청춘물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만류에 가깝기도 하고 애초에 학원 청춘물에 대한 기대나 욕구가 크지 않다 보니 차이를 느낀다고 해도 많이 선택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나만의 비밀> 역시 처음에는 관람 리스트에 넣지도 않았다. 관람 리스트에 추가된 이유는 영화로 엮인 주변 지인들의 평이 상당히 좋아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에 이은 나카가와 슌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나만의 비밀>은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작가 스미노 요루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로 모두 제작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애초부터 관람 리스트에 넣었을텐데... 영화 소개글은 잘 읽고 봐야 할 일이다. 영화는 '쿄(오쿠다이라 다이켄 분)', '미키(데구치 나츠키 분)', '츠카(사노 마사야 분)', '파라(키쿠치 히나코 분)', '엘(하야세 이코이 분)'이라는 고등학생 5명 개개인이 숨기고 있는 초능력을 중심으로 이들의 교우 관계를 그린다. 5명 모두 타인을 보면 타인의 감정 신호를 알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신호로 인해 5명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는 것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 할 수 있다. 고등학생 5명의 관계 변화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소재하면 당연히 사랑이고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 <나만의 비밀>은 대만 학원 청춘물과 같이 첫 사랑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만의 비밀>은 오히려 사랑은 부가적인 오락 요소, 즉 관객들이 누가 누구와 연결되느냐를 놓고 호기심과 긴장을 갖게 만드는 요소로만 활용한다. 영화에서 더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혹은 영화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다섯 학생 각각의 비밀과 그 비밀의 공통 특성이다.
앞서 말했듯 5명의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 신호를 알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색깔이 있는 문장 부호, 가슴에 '+'와 '-'가 양쪽에 있어 계속해서 움직이는 감정 시소, 감정에 따라 색깔과 모양이 바뀌는 카드 문양, 감정에 따라서 가슴에 떠오르는 심박수의 수치, 타인에 대한 호감으로 가슴에서 뻗어 나오는 감정 화살표 등. 영화에서 5명의 학생은 다른 학우들 혹은 무리의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 각자의 능력으로 감정을 파악하고 자신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결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5명의 학생 모두가 관심을 갖고 신경쓰는 것이 타인, 그 중에서도 자기 또래의 다른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유아기와 아동기에는 가족을 중심으로 자아를 형성하는 반면 학교라는 사회에 진입한 이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청소년기까지는 또래와 관계가 자아 형성과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5명의 학생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이 단순히 초능력이라고만 치부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초능력이라고 하지만 5명 모두 타인의 감정과 생각의 방향성 정도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사실 이들의 초능력이 실제로는 타인과 관계 그 중에서도 또래와 관계에 가장 큰 감정적 영향을 받고 그만큼 감정의 요동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그만큼 더 딴딴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청춘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즉, 감정을 보는 초능력은 초능력이 아니라 섬세한 긴장에 짓눌리는 와중에도 다음을 향해 피어나려고 굳세게 일어나는 다섯 청춘 각자의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다섯 청춘의 초능력 모두 자기 자신의 감정을 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고 해서 보이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 뿐이다. 친구들의 감정에 일희일비하고 긴장감에 짓눌려 어쩔 때는 너무 많은 상상으로 학교에 오기가 두려워지기도, 어쩔 때는 너무 많은 생각으로 몸이 아파져 쓰러지기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럼에도 5명의 학생 모두 언제나 자기 자신이 어떤 감정이고 어떤 상태인지를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혹은 그것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타인의 감정과 상태에 집중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감정을 교류하는 타인이 행복하면 자신도 행복하다고 당연스레 생각한다.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너무 신경쓰는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이 시기의 우리도 이미 각자가 맺은 교우 관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신경쓰며 살았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5명의 학생이 서로를 섬세하게 챙겨주고 관찰하는 모습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시기에 그래도 자신을 봐주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서 정말 다행이라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다른 친구들을 비추는데 진심을 다하는, 이 풋풋한 관계에서 따뜻한 싱그러움을 느끼며 잠시 마음을 쉬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