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 & <F1 더 무비>.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중 블록버스터이면서도 큰 만족감을 준 영화를 떠올리라고 하면 단연코 <F1 더 무비>를 꼽을 것이다. 사실 현재 극장가에는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에 대해서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개봉을 하지 않았거나, 개봉했으나 관심이 없었거나 등 여러 이유로 보지 않았기에 온전한 기준에서 선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영화들을 봤더라도 <F1 더 무비>가 가장 큰 만족감을 준 영화일 것이라고 꼽았을 것이다. <F1 더 무비>를 보고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이전 영화 <탑건: 매버릭>(2022)과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에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희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필자가 대단한 젊은 꼰대, 아재, 애늙은이라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어느 정도 확신인데 조셉 코신스키 감독도 대단한 젊은 꼰대, 아재, 애늙은이일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3개 영화만 보고, 그리고 두 개 영화만을 가지고 한 감독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화를 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교하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두 영화에서, 특히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으며 현재도 여전히 그 위상이 공고하고 향후에도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두 배우가 비슷한 이미지의 인물을 연기했으며 그 인물을 통해 영화가 드러내는 바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적어도 두 영화에서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 것은 하나이다. '위대함'이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을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한 영화인 <탑건: 매버릭>은 <탑건>(1986)의 후속작으로 냉전 시대 미 공군 조종사들의 활약을 그린 전작에 이어 현 시점 미 공군 조종사들의 활약을 그렸다. 전작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을 꼽아보라면 영화의 배경이다. <탑건> 속 미국의 현실과 영화 외적 현실인 냉전은 미국과 소련의 대결로 오늘날과 비교해 세계의 구도가 비교적 명확하다. 명확한 세계의 구도에서 미 조종사들의 목표는 자본주의 세계의 리더이자 세계의 보호자인 미국의 위대함을 하늘을 화려하게 활강하며 보이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 조종사들은 미국의 상징이자 하늘의 제왕으로도 여겨지는 독수리, 즉 미국의 위대함 그 자체이기도 하다. <탑건>은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서로의 기량을 겨누며 자유롭게 하늘을 활강하고 끝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마초적 남성들의 세계를 통해 미국의 위대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탑건: 매버릭> 속 미국의 배경과 영화 외적 현실은 세계의 구도가 모호하다.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미국을 위협하는 단체, 세력, 국가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이 맞이한 세계는 더 이상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혼란의 세계. 그 혼란의 세계에서 희망으로 제시되는 것은 과거 미국의 영광 그 자체였으나 이제는 최고의 속력으로 하늘을 나는 것을 꿈꾸며 실전에서 물러난, 하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모의 미션을 단 한 번에 성공한 늙은 조종사 '매버릭(톰 크루즈 분)'이다. 이렇게 보면 <탑건: 매버릭>에 대한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탑건: 매버릭>은 전작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미국의 위대함을 다시 노래하는 듯하다.
<탑건: 매버릭>과 비교하면 <F1 더 무비>의 서사구조는 굉장히 비슷하다. 마하 10으로 창공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비행 실험을 하는, 여전히 한계에 도전하는 조종사 매버릭과 마찬가지로 '소니(브래드 피트 분)'는 F1 경기 중 몸을 완전히 망가뜨린 사고에도 불구하고 데이토나 24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몰 수 있는, 이른바 레이싱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뉴욕 택시기사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이다. 데이토나 24시에서 소속팀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멕시코의 오프로드 레이싱 경기이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바하 100에 참가하려고 할 정도로 레이싱이라는 행동 그 자체에 미친 인간이다. 그런 소니를 F1에 다시 불러드린 이는 과거의 동료이자 F1 팀 중 최약체 팀으로 올 시즌을 끝으로 팀 해체를 눈앞에 둔 에이펙스GP의 소유주 '루벤(하비에르 바르뎀 분)'이다. 매버릭을 탑건의 교관으로 보내는 것이 전작에서 그의 라이벌이자 전우이며 현재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아이스맨(발 킬머)'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두 영화는 비슷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작만이 아니라 매버릭이 현재의 젊은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고 그들과 갈등하면서도 하나의 팀이 되어 가는 모습은 소니가 '조슈아(댐슨 이드리스 분)'와 갈등하면서도 그와 함께 훈련하면서 진정한 F1 레이서로 훈련하는 모습과, 훈련에도 불구하고 모의 미션 실패로 좌절하는 미 공군의 위기를 해결하는 과거의 영광 매버릭은 리그 꼴지인 팀의 순위를 노련하면서도 여우 같은 플레이로 서서히 끌어올리는 소니와, 과거 자신의 윙맨의 아들인 '루스터(마일스 텔러 분)'와 과거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비로소 한 팀이 되고 끝내 미션을 성공하면서 더 위대한 조종사가 되는 매버릭은 조슈아와 완전히 화해하고 비로소 한 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F1에서 우승하며 F1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소니와 일치하는 등 두 영화의 서사는 사실 차이점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서사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F1 더 무비>가 <탑건: 매버릭>처럼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F1 더 무비>에 의해 <탑건: 매버릭>의 서사가 다르게 읽히면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위대함'이라는 것에 골몰하는 감독처럼 보인다. 서사적 유사성만큼이나 두 영화는 속도와 그에 따른 희열감 혹은 스릴감에 굉장히 몰두한다는 유사성이 있다. 전작에서 매버릭이 마하 10이라는 목표 속도에 도달하고도 더 빠른 속도에 집착하는 모습만큼이나 소니가 집착하는 레이싱은 빠른 속도를 내는 것에 최적화된 차체로 누구보다 가장 빠르게 속도를 내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속도에 대한 집착에 더해 대조되는 인물의 모습도 유사한데 매버릭-소니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팀을 강조하는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신세대 탑건 조종사들-조슈아는 팀의 목표보다 개인의 기량이나 위상을 더 중시하는 모습이다. 서사적 유사성에 더해 속도에 대한 집착, 인물을 통한 팀과 개인의 대립이라는 유사성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두 차례에 걸쳐 유사한 서사를 통해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과 한계를 도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연대 혹은 팀워크로 위대함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을 유추하게 한다. 이때 연대 혹은 팀워크를 현 세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잊힌 망령처럼 여겨지는 과거 세대가 현 세대에게 육체적으로 재현해 체화시키는 것으로, 즉 과거 세대를 중심으로 제시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에게서 보이는 위대함은 과거 세대로부터 시작해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탑건: 매버릭>과 <F1 더 무비>가 속도를 매개로 하는 영화라는 점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다르게 말하면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두 영화는 일종의 시간여행 영화로도 읽을 수 있다. 주변의 기대와 평가, 부를 위한 협찬, 유명세 등 끊임없는 자기 감시와 그에 따른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현재적 가치보다 몰입하는 것에 대한 자기 만족, 그러한 만족보다 더 큰 만족을 위한 자기 완성과 구도의 길 등 현 세대에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미래적 가치를 과거로부터 끌어온다. 미래적 가치를 과거에서 끌어온다는 점에서 마치 그의 영화에서 미래적 가치는 과거의 꼰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복고적 가치로 격하되는 것처럼 보이고 그에 따라 굉장히 복고적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도가 매개체로 붙는 순간 과거에서 끌고 온, 복고적 가치처럼 보이는 미래적 가치는 현재에서 유효하며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는 미래적 가치가 된다. 자본주의에 의해 현 세대의 인간은 한계에 도전하지 못한다. 더 빠르게 대기권을 활공할 수도, 더 빠르고 완벽한 속도로 레이싱에서 우승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를 도전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더 많은 자본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들로 한계 그 자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 돌아가다 어느새 완전히 한계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한계를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감시하며 개인의 가치를 당장 높이는 것에 경도되어 있는 현 세대를 과거의 세대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 오히려 더 먼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에게 속도는 과거의 가치를 현재에 재현할 뿐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시간여행이라는 지점만이 아니라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서도 중요하다. 감독이 보기에 위대함은 매순간 닥쳐오는 혹은 마주하게 되는 한계에 도전해 끝내 극복하는 것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했을 때 속도는 인류 문명에서 인간의 육체와 기술의 총체로 볼 수 있다. 이전 시대의 속도를 뛰어넘는 물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적 조건만이 아니라 그러한 물체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견디는 신체와 정신을 유지·성장하는 육체적 조건이 만나야 한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에게 현대는 기술적 조건은 끊임없이 충족·발전하는 시대이지만 육체적 조건, 즉 인간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에서 제자리걸음 중이거나 퇴보하고 있어 기술적 조건을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현 세대의 문명적 발전은 기술 그 자체는 눈부셔 보여도 그러한 기술과 함께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인간은 눈부신 기술에 경도되어 한계에 도전하는 것을 잊은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조셉 코신스키 감독에게 속도는 1차원적으로 블록버스터로서 희열감, 스릴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시간여행의 의미만이 아니라 과거의 인간이 현 세대의 인물 나아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가하는 충격의 의미 또한 갖게 된다. 육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기술적 조건으로 갖춰진 물체로 목전의 한계를 뛰어넘는 속도를 내는 과거의 인간은 스크린을 찢고 돌진하는 듯한 이미지를 통한 충격인 것이다.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위대함을 위해 과거의 인간이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속도의 시간여행을 할지는 모르겠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서사의 단편성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알 수 없으며 애초에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위대함을 갈고닦아 새로운 서사와 함께 영화를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있어 블록버스터가 단순히 대중오락영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그의 이전 영화 중 <오블리비언>(2013) 역시 과거 인류의 위대한 우주비행사가 미래의 지구 세대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인간이 현 세대를 위해 빛과 같이 돌아와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속도의 시간여행은 조셉 코신스키 감독을 이해하는 것에서 중요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한다. 단 한 번도 운전해본 적 없는 멕시코의 바하 100 레이싱에 참가하려는 소니처럼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알려진 <마이애미 바이스>에서는 어떤 도전을 할지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