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단상

신촌. 메가박스. 어쩔수가없다.

by Gozetto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서로를 갉아먹음에도 어쩔 수 없다며 애써 외면하는 삶에 대하여(3.5)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처음 개봉을 예고했을 때만 해도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정말 높았다는 점은 숨기지 않겠다. 영화를 관람한 당시에도 관람 당시에나 지금에나 근래 봤던 한국 영화 중 매력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봉 전 출품했던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최근 오스카 시상식까지 이른바 네임드 영화제 혹은 시상식에서 무관 중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감독이 박찬욱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직 감독의 전작을 본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 <헤어질 결심>(2022)과 비교하면 <어쩔수가없다>는 분명 박찬욱 감독의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이질적이고 완성도가 높다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나오는 배우들은 한국에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의 향연이요, 영화 속 박찬욱 감독표 블랙코미디는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어쩔수가없다>의 서사적 완성도가 어딘가 미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어쩔수가없다>의 서사는 돌이켜 보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경쟁자들을 죽인다고 해서 취업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을 뿐더러 애초에 취업을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 언제 박찬욱 감독 영화의 서사가 현실적이었던가?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복수의 대상을 장장 20년 동안 군만두만 주며 감금하는 <올드보이>(2003), 치료법도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신부가 흡혈귀가 되는 <박쥐>(2009), 서로를 사랑하는 아가씨와 몸종이 저택을 탈출해 서로의 구원자가 되어주는 <아가씨>(2016), 살인자인 여성을 사랑해 사건을 조작하는 형사와 그런 형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여성이 등장하는 <헤어질 결심> 등 애초에 현실성이라는 말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현실에서 가능해도 서사로 불가능한 사건보다 현실에서 불가능해도 서사로서 가능한 사건이 더 좋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후자에 충실했다. 그의 영화는 그저 언제나 현실의 어떤 현상을 아주 극단적으로 상정한 상태에서 일종의 줄타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자칫 잘못하면 현실과 서사 어느 쪽에도 위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실날같은 핍진성을 부여잡은 것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신의 평생이라 할 수 있을 제지업체에 다시 취업하기 위해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경쟁자들을 살해하는 '만수(이병헌 분)'의 여정은 완벽하게 박찬욱 감독스럽다. 만수의 여정이 비현실적이라는 둥, 너무 꾸며낸 것 같다는 둥 하는 감상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취향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고 어쩌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보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시네필 흉내를 낸다거나 한국 대표 감독의 영화이니 봐야 한다는, 어디 누가 하는 소리인지도 모를 허상의 흐름을 좇는 것이 아니라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피하는 것이 좋을 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면, <어쩔수가없다>의 서사적 완성도는 이 서사가 현실적이냐는 취향적 평가보다 서사의 흐름이 적절하냐는 분석적 평가로 판단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어쩔수가없다>는 만수가 구조조정을 당하는 초반부, 재취업에 성공해 가족이 다시 안정을 찾는 종반부를 각각 서(序)와 종(終)으로 제외하면 '범모(이성민 분)', '시조(차승원 분)', '선출(박휘순 분)'이라는 3명의 경쟁자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각 부분, 즉 3장 혹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3장 혹은 3부의 양적 구성을 비교하면 범모 살인 서사가 시조와 선출 살인 서사 둘을 합친 것보다 압도적이다. 경쟁자 중 가장 자신과 비슷한 범모를 죽이기까지 오래 걸리고 이후에는 살인이 점점 쉬워졌다고 보기에는, 우선 시조 살인 과정은 다른 두 인물의 살인과 비교해 복잡하지 않고 러닝 타임 상에서도 짧다. 그에 반해 선출 살인 과정은 만수가 되고 싶은 인물상과 선출이 가장 비슷하고 이미 두 사람을 죽여 선출만 죽이면 자신이 바라는 상황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살인임에도 살인을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서사로 표면상 시조보다 심리적으로 더 복잡하고 러닝 타임 상에서도 길다. 일반적으로 범모(1장) 다음 살인이 점점 어려워진다면 시조(2장), 선출(3장) 살인 서사는 각각 러닝 타임 상으로는 점점 길어져야 하며, 심리적으로도 더 복잡해야 한다. 하지만 마치 좌충우돌 긴긴 살인 터널인 1장을 지났으니 쉬어가란 듯 2장은 짧은 반면, 다시 복잡해지는 듯 3장이 길어지는 서사 구조는 어딘가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특히 상대적으로 2장은 짧기에 시조라는 인물이 서사의 진행을 위해 소모된 것처럼 느껴진다.


실날 같은 핍진성으로 현실과 서사 사이를 줄타기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시조라는 인물이 소모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현실도 서사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다르게 말하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가 정말 있는 그대로 거짓으로 느껴진다.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여전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는 그 순간 어딘가를 부유하는, 있는지 없는지 알고 있지만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모순된 그 무언가 되어 버린다. 가족들에게 살인에 따른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잘 나가는 치과의사 '진호(유연석 분)'와 바람 피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그만큼 밥 잘 사줄 것처럼 예쁜 아내 '미리(손예진 분)'에게 질투를 느껴 다시 살인을 다짐하는 만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시원(김우승 분)'과 딸 '리원(최소율 분)'을 위해 어쩔 수가 없다며 되새기다가도 아들의 범죄로 찾아온 경찰에게 다 말하겠다며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는 새가슴 만수. 만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어쩔수가없다>의 영화 세계는 말 그대로 무의미해진다. 어쩌면 애초부터 만수라는 인물만을 중심으로 살인을 이어가는 서사는 조금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처럼, 특히 <박쥐>처럼 만수와 미리가 함께 사건을 일으키며 진행되었다면 조금은 더 완성도 있게 서사를 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어쩔수가없다>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더 좋은 영화라는 사실은 틀림없고 박찬욱 감독의 다음 영화가 여전히 기대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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