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 라이카시네마. 아르코.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무지개 너머 라퓨타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걷는 아이들(3.5)
아이들의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인간 세계, 그러니까 '아르코(오스카 트레사니니 목소리)'가 살고 있는 2932년과 '아이리스(마고 링가르 올드라 목소리)'가 살고 있는 2075년은 엄청난 기술적 발전을 이룩했음에도 계속해서 종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혹은 종말을 맞이한 세계이다. 거대한 나무 기둥 위 도시나 시간 여행이 가능한 무지개 망토, 가정과 사회의 모든 노동을 대체한 로봇 등. 마법과도 같은 기술을 향유하고 있음에도 <아르코>는 어떤 희망적인 뉘앙스로 인간 세계를 그리지 않는다. 극중 무지개 망토를 좇는 것에 삶을 바친 삼형제 '도기(뱅상 마케뉴 목소리)', '스튜위(루이 가렐 목소리)', '프랭키(윌리엄 레브길 목소리)'가 아르코에게 왜 종말을 앞두고 있는 이 시기를 방문했냐고 묻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패배주의, 종말감 등을 느끼게 한다. 물질적, 기술적으로 풍요로움에도 <아르코>의 인간은 감정적으로 죽어 있으며 그저 물질적, 기술적 풍요를 통해 하루하루 치밀어오르는 저 밑의 종말감을 잊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아르코>의 인간들이 감정적으로 고양되고 나아가 행복을 느낄 때는 다른 존재와 관계를 재확인할 때이다. 즉, <아르코>의 인간들은 물질적, 기술적 풍요를 누릴 때보다 타인과 관계를 나누고 되새길 때 감정적으로 고양된다. 공룡이 보고 싶어 무지개 망토를 훔친 아르코는 자신의 행위로 영영 가족들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고도화된 기술 발전 사회에서 아이리스는 자신을 두고 일을 떠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부모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들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언제 종말이 올지 알 수 없는 시대에 다른 존재와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다른 존재와 맺는 관계는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에도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무엇이다.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고 물성이 없음에도 존재하고 있는, 관계 혹은 다른 존재는 망해가는 세계임에도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특히나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는 <아르코>에서 아르코와 아이리스의 관계는 종말이라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가 어디서 오는지를 깨닫게 한다. 둘의 관계는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공룡을 보기 위해 무지개 망토를 훔친 아르코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시간 여행으로 도착한 시대가 2075년이 아니라면? 아이리스가 아니라 삼형제에게 먼저 아르코가 발견됐다면? 미키의 신고로 아르코가 경찰에게 잡혀갔다면? 수많은 IF 가정이 영화 속에는 내재되어 있다. 그런 수많은 IF들을 넘고 넘어 두 아이가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을지라도 둘은 무지개 다리로 연결된 시간의 다리를 통해 서로를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연과 기억을 통해 종말이 찾아와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되었을지라도 인간들은 2932년에도 나무 기둥 위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모든 것들이 파괴되었음에도 아이리스는 결국 아르코에 대한 기억을 통해 미래를 현실로 갖고 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