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엘리펀트 송>을 보고
사랑, 진실, 그리고 비밀
연극 <엘리펀트 송>을 관통하는 세 단어다. 이 극은 철저하리만치 치밀하고 정교하게 짜인 복선과 은유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다, 단 한 번의 결정적 순간에 관객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극이다.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빛을 발하다
자신을 하얀 코끼리라 칭하는 마이클의 장난스러운 대사, 보라색 차트에 대한 광적인 집착, 그리고 안소니에 빗대어 표현하는 코끼리 이야기들. 초반부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게 만들던 수많은 텍스트는 극이 끝에 다다를 때 비로소 하나의 선명한 형체로 드러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좁은 상담실에서 단 세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하나의 진실로 귀결될 때, 관객은 탄식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으며 마이클의 외로움에 함께 눈물 흘리게 된다.
너무도 잔혹했던 단어 '음정 세 개'
가장 고통스러웠던 대목은 마이클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었다. 자신의 직업이 아들보다 중요했던 어머니에게 마이클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실수'에 불과했다. 쓰러진 어머니가 마이클을 향해 뱉은 마지막 말은 미안함도, 사랑함도 아니었다. 그저 "전날 공연에서 음정 세 개를 틀렸다"는 차디찬 말뿐이었다.
그 말은 마이클에게 내 내려진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에게, 생사의 기로에서조차 자신보다 '직업적 완벽성'을 우선시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마이클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말살했다. 여기서 박은석 배우의 전작 <세일즈맨의 죽음>이 오버랩된다. 아버지에게 "나는 10달러짜리 인간일 뿐"이라 소리치던 비프의 고백이, 음정 세 개보다 못한 존재임을 자각한 마이클의 눈동자와 겹쳐보였다. 아버지의 기대가 독이 되어 나를 잃어버린 채 사회에 던져졌던 청년과, 어머니의 한 톨의 사랑조차 얻지 못한 채 버림받은 소년의 그 닮은 듯 다른 서사는 가슴을 후벼팠다.
치밀하게 설계된 소년의 비극적 선택
엔딩의 급격하게 휘몰아치며 머리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반전은 이 비극을 완성한다. 로렌스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초콜릿. 그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마이클이 스스로 선택한 '최후의 만찬'이었다. 마이클은 그린버그와 대화하는 그 순간까지도 누군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길 갈구했으나, 결국 그조차 불가능함을 깨닫자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기로 한 것이다. 그린버그는 마이클과 벽을 허물고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안심했으나 급격히 괴로워하는 마이클의 상태와 다급히 상담실로 달려온 로렌스가 마이클의 견과류 알레르기를 언급하는 그 급박한 과정은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마지막 순간, 마이클은 자신과 교감했던 로렌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코끼리 인형을 안은 채 숨을 거둔다. "사랑해요, 안소니가 말했어요"라는 고백은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로 꽂힌다.
사랑이라는 책임감
마이클의 상처와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이클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고, 따스히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평생 사랑에서 결핍된 채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힌 아이는 외로움이라는 고통에 닳고 닳아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쓸쓸한 결말을 스스로 완성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마이클이 고통받고 있고, 그들은 안소니라는 허상 뒤에 숨어 스스로를 감추며 괴로워하고 있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