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핀 노란 개나리꽃이 살랑이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엄마, 학교 다녀왔어요.”
“들어오지 마! 잠깐 기다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여느 때와 같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내 몸은 순간 얼어붙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집은 엉망진창이었고 나는 무서웠다.
거실 바닥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엄마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에는 선우가 식탁 의자 위에 올라가 서 있었다. 선우의 손에서 햇빛에 반짝여 무지개색을 띠는 유리컵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선우는 아무 표정 없이 가만히 떨어지는 유리컵을 쳐다보고 있다.
와장창!
나는 재빨리 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조용해진 것 같아 눈을 뜨려고 할 때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또다시, 와장창!
뭔지 모를 무서움에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현관에 주저앉아 울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그저 무서웠다.
선우가 이상해. 내 동생이 아닌 것 같아.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된 나는 엄마와 예전 이야기를 종종 한다. 우리 집이 이랬지, 내가 이랬었지. 식탁에 마주 앉아 유리컵에 담긴 식혜를 보다 떠올랐다. 그날, 엄마가 한 이해 못 할 행동이.
“엄마. 그날, 선우가 유리컵 다 깼던 날 말이야. 그만두게 하지 않고 왜 집에 있는 컵을 전부 선우한테 깨라고 들려줬어? 나 그때, 엄마랑 선우랑 둘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좀 무섭기도 했고.”
“저 원하는 대로 원 없이 하게 해 주고 싶었어. 집에 있는 유리 다 깨면 그만하겠지 싶어서.”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예쁜 크리스털 조각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거실 한쪽, 나무로 된 장 안에 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분홍 크리스털 귀를 가졌던 곰돌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거였다.
하지만, 동생이 태어나고 어느 순간 엄마의 취미는 사라졌다. 장 안의 크리스털도 함께 사라졌다. 그날, 집 안의 모든 컵과 함께 사라졌다.
어린 시절엔 동생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폐증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 병인지 알지 못해서 처음 보는 선우의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선우를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자폐증 증상 중에 감각 추구 행동(Sensory Seeking) 이 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지금의 나는 선우를 조금 더 알고 이해할 수 있다.
선우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저 특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