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앞을 항상 지키는 알록달록한 기계는 늘 선우의 발걸음을 멈췄다. 뽑기 기계는 사람 친구가 하나도 없는 선우의 흥미를 일으키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엄마, 우리 어렸을 때, 선우가 매일 문방구에 가서 뽑기 돌려 달라고 했던 거 기억나?”
“당연하지. 뽑기에서 나온 로보트가 크기나 하냐? 콩알만한 그거 만드느라 눈 빠지는 줄 알았다. 얘는 지가 안 만들고 꼭 나보러 만들라고 하고 옆에 엎드려서 그거 쳐다보고 있었잖아.”
엄마가 웃으며 하시는 말씀에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문방구에 다녀오면 엄마 옆에 꼭 붙어 엎드려서 엄마가 로보트 조립하는 모습만 조용히 지켜보던 선우의 모습이 기억난다. 자폐 스펙트럼 증상의 하나로, 선우는 로보트를 줄맞춰 일렬로 세워두곤 했다. 엎드려서 곁눈질로 그걸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효진아, 선우랑 문방구 가게 잠바 입어.”
엄마의 말이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자켓을 입었다. 지퍼도 단단히 잠그고 거울을 봤다. 준비 완료. 엄마가 선우의 옷을 챙기는 동안 먼저 빨간 운동화를 챙겨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빨리, 빨리. 저번에 문방구에서 본 예쁜 종이 인형을 빨리 사고 싶었다.
엄마, 선우와 함께 문방구를 향하는 길이 너무 신났다.
“선우야, 오늘 뽑기 뭐 나올지 궁금하지?”
선우는 아무 표정도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 작은 손이 엄마의 손을 힘껏 잡고 자꾸 앞으로 끌어당겼다. 선우도 나처럼 빨리 문방구에 가고 싶은가 보다.
문방구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받은 500원으로 내가 사고 싶었던 종이 인형을 사고 나왔다. 엄마와 선우는 막 뽑기 기계에서 노란색 동그란 뽑기 알을 꺼내고 있었다.
“선우야, 뭐 나왔어? 봐봐. 보여줘.”
선우는 내 질문엔 아랑곳 않고 엄마의 손을 끌어 뽑기 손잡이에 올려놨다. 대화를 못하는 선우의 빨리 한 번 더 뽑아달라는 신호다. 엄마는 500원짜리 동전 한개를 기계에 넣고 오른쪽으로 손잡이를 돌렸다. 따라락, 따라락. 경쾌한 소리와 함께 뽑기 기계 속 알들이 움직였다.
통. 초록색 뽑기 알이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 옆에 주저앉아 몇 번 더 ‘통’ 소리를 들었다.
통, 선우가 이번에 나온 뽑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엄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당겼다. 마지막에 뽑은 로보트는 아마도 집에 없는 새로운 친구일거다. 색깔이 다르던, 모양이 다르던. 분명 둘 중에 하나는 다를거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지만, 선우는 정확히 안다. 그리고 엄마의 가방에 담긴 저 많은 뽑기 알들은 아마 오늘 엄마의 숙제일거다.
집에 오자마자 자켓을 벗어두고, 어린이용 가위로 종이 인형을 자르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엄마는 로보트 조립을 시작했다. 선우는 엄마 옆에 엎드려 엄마의 손과 로보트를 집중해서 본다. 집중하느라 뾰족하게 튀어나온 작은 입이 너무 귀엽다.
엄마가 구부린 허리를 펴느라 손을 멈추면 선우는 엄마의 손을 잡고 로보트로 이끈다. ‘빨리 만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럼 엄마는 다시 조립을 시작한다. 나도 종이 인형을 자른다. 우리 집에는 톡톡, 작은 플라스틱이 부딪히는 소리와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만이 가득했다.
선우는 조립 로보트를 좋아한다. 엄마가 조립하는 모습을 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그 로보트를 일렬로 세우고 곁눈질로 보는 걸 아주 많이 좋아한다.
로보트를 만드느라 엄마의 허리가 구부러지고 아파도 선우는 모른다. 모르니까 더 좋아한다.
문방구에 가는 날은 엄마가 힘든 숙제를 하는 날이다. 하지만 사람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선우에겐 새로운 말없는 친구들이 생기는 즐거운 날이다.
[사진 출처: doopedi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