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양념치킨을 먹는 날이다. 아차, 그게 아니라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양념치킨을 사는 것뿐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좋아하시니까.
그리고 선우와 자동차 구경을 하는 날이다. 나는 이 날을 좋아한다.
아직 페리카나 간판이 보이지도 않는데, 벌써 바삭한 닭고기 위에 스며든 매콤 달콤한 양념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온다. 킁킁 거리며 숨을 들이마시자 양념치킨 냄새가 콧 속으로 훅 들어오는 것 같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페리카나에 도착하면 선우와 나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구경한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선우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선우는 나를 두고 자동차와의 세계로 날아간다. 나는 조용히 옆에 서서 선우의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까만색 자동차가 지나간다. 선우의 고개도 자동차를 따라간다.
“현대 싼타모.”
“싼타보? 선우야, 싼타보가 뭐야? 방금 지나간 자동차 이름이야?”
역시나 선우는 나와 이야기해 주진 않는다. 대신 지나가는 자동차 이름을 계속해서 말한다. 은색 자동차가 지나간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뻗어 지나가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야, 저 은색 자동차 이름은 뭐야? 저것도 알아?”
“대우 레간자.”
우와. 순간 선우랑 진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선우가 대답해 준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마치 선우와 이야기하면서 노는 것 같은, 엄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누나와 동생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선우야, 너 사실은 누나가 자동차 잘 모르니까 대답 안 해주는 거 아니야? 사실은 엄마랑 누나가 하는 말 다 듣고 무슨 말인지 아는 거지? 근데 그냥 대답하기 귀찮아서 안 하는 거지?”
까만색 차가 지나간다.
“현대 스타렉스.”
“선우야, 누나 말이 맞으면 고개만 살짝 끄덕여봐.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선우는 또 다른 차가 오나 안 오나 골목길 끝을 바라볼 뿐이다. 여전히 선우는 자동차와의 세계 속에 있다. 절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주지 않는다.
도대체 이 많은 자동차의 이름은 어떻게 다 아는 걸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가끔 선우는 너무 낯설고 또 신기하다. 선우는 아픈 게 아니라 천재인 건 아닐까? 사람들과 대화를 못하는 것도 사실은 말이 안 통하기 때문 아닐까? 그저 너무 똑똑해서 페리카나 양념치킨 같은 것보다 자동차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한 글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던 선우는 어느 순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페리카나 치킨집에 가는 날을. 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자동차 이름을 말하던 선우의 옆모습을.
선우는 자폐 스펙트럼 증상이 점점 나아지면서 이때의 뛰어난 기억력을 차츰 잃어갔다. 아주 아주 천천히. 지금 어른이 된 선우는 지나가는 모든 자동차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만큼 나아졌다.
너무 똑똑해서 나와 말을 섞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던 나는 이제 선우와 대화를 한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진 않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가끔은 질문도 한다. 이제는 페리카나 치킨 집 앞에 가지 않아도 선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선우는 이제 문장을 말한다. 싫어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모든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선우와 같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거다.
의사표현을 못하는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가진 아이는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도움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도움이 모이면 아이는 조금씩 자신만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선우가 보여줬다. 아니, 증명했다. 할 수 있다고. 도와주면, 나도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