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깃, 흘깃. 사람들이 코를 막은 채 어린이날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발걸음과 함께 노란색 구두가 춤을 춘다.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도 모른 채 코를 막는 데만 열심이다. 코맹맹이 노랫소리는 덤이다.
“5월은 어린이날, 선우의 세상~”
"효진아, 왜 자꾸 선우의 세상이라고 해? 우리들 세상이잖아.”
“엄마, 난 이제 1학년이야. 근데, 어린이날은 선우처럼 어린이들 날이잖아.”
선우의 작은 손을 잡고 걷던 엄마는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엄마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따라 웃었다. 엄마랑 선우랑 같이 동물원에 온 것이 그냥 좋았다. 어린이 날, 선우가 좋아하는 동물을 보러 온 것이 마냥 좋았다. 냄새가 좀 심하긴 하지만.
코끼리, 사자, 호랑이, 사슴…. 기린은 어디있나. 선우가 좋아하는 목이 기다란 기린.
드디어 저 멀리 기린이 보였다. 목이 긴 기린은 멀리서도 잘 보인다. 선우도 기린을 발견했는지, 엄마에게 잡힌 손을 꼼지락 거렸다. 엄마가 손을 놓지 않자, 손을 잡아당기며 칭얼댔다.
“선우야, 안돼. 엄마랑 누나랑 같이 가야지. 사람들 많잖아.”
그때, 선우가 엄마의 따뜻하고 안전한 손에서 손을 획, 빼냈다. 그리고 걸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망설임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선우야! 선우야! 이리와!”
선우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계속 걸어갔다. 문득, 엄마는 왜 선우를 부르지 않는지 이상해서 옆에 있는 엄마를 올려다 봤다. 나만 선우를 걱정하는 건가.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빠르게 선우의 뒤를 쫓았다. 엄마의 손이 내 손을 힘껏 잡았다. 조금 아팠지만 참아냈다.
어린이 날, 동물원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동물원이 아니라 ‘사람원’ 같았다. 선우를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밀려왔다. 엄마의 빠른 걸음을 부지런히 따라가며 계속해서 선우를 불렀다.
“선우야, 선우야!”
선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멈추지 않았다. 계속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기린을 향해.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들 중에는 뒤를 돌아보는 것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
그날 엄마가 나에게 선우는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해 줬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아무리 불러도 단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던, 연두색 반바지를 입은 선우의 뒷모습만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애타게 선우를 부르는 동안, 그저 묵묵히 선우를 쫓아가던 엄마의 따뜻한 손만 기억에 남아 있다.
엄마가 처음 선우가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무리 불러도 앞으로만 걸어가는 선우를 보며 얼마나 놀랐을까. 그렇게 선우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아이가 자폐 아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며 힘들지 않았을까.
선우의 마음 속에, 선우의 세계에 가족으로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좀 안타깝다.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 들여놓지 못한 채 혼자 살아가는 선우가 안쓰럽다. 보통 사람들처럼, 혼자 살아가는 것이 외로운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선우의 세계는 나에게 여전히 아득하다. 내가 언젠가 선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세상에서 선우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긴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