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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Aug 24. 2018

빙글_9와 숫자들

d-43

만남과 이별의

의미를 알지 못 했던 난

작은 바람에도 쉽게

몸서리를 쳤어


내밀어 준 따스한

손길 모두 뒤로하고

낯선 길을 꿈꾸던


빙글, 9와숫자들

-

왜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스스로도 모른채 조심스러웠던 준비 기간 끝에 슬금슬금 주변에 알리고 있다. 가까웠던 사람들은 꼭 얼굴을 보고 전하고 싶었던 소식이기에 한명씩 약속을 잡고 얼굴을 보고 "나 결혼해." 라고 하얀 봉투를 내미는 일들이 줄줄이 잡혀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집에 가서 잠을 잘까, 카페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할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큰 창이 있는 카페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j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넉넉히 챙겨다니던 하얀 봉투에 아이브로우로 j의 이름을 써두고 "나 지금 선릉이야."라는 짧은 연락을 했다. 1시간 뒤 "가고있어"라는 대답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쓰윽 들어왔다. 커피는 됐다며 향이 좋은 티를 한잔 시켰다. 꺼내는 놓았지만 선뜻 주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이름이 써진 하얀 봉투를 보았을테고, 무슨 봉투인지 알았을 j는 그 얘기보다 얼마 전 다녀온 몽골은 어땠는지, 맥북은 잘 쓰고있는지를 얘기하다가 맥북 점검에 들어갔고, 한참을 타이밍을 못잡았다. 이것저것 만지던 j가 그래서 날짜는 언제야?라고 던져준 덕분에 "아 맞다, 이거"라고 슬쩍 밀었다. 그거 언제줄거야를 돌려말했던 건지 씩웃으며 받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하다보니 또 무언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크게 싸우고 난 뒤, 작년의 나처럼 찌질하고, 슬프고, 속상하게 많이 울면서 밤거리를 배회했던 새벽이 있었다. 그 다음날, 다다음날에도 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나도, 그도 입을 닫아버렸기에 그 감정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아 묵묵히 묵혀있는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도, 앞으로 함께 할 날도 기대가 되고 행복하기보다 벌써 힘들었다.

j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근데 너 왜 안행복해보여?

-

오늘부터 43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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