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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Jan 08. 2021

쌓아두지 않으면 휘발되는 것들

'영감 아카이빙'보다 중요한 '경험 아카이빙'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반성하는 것 중 하나는 '회고와 기록'의 아쉬움이다.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록은 자주 해와서 모든 경험이 촘촘이 연결되고, 진득하니 남았지만 유독 일에 대해서는 늘 정리하고, 쌓는 습관이 자리잡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력하지 못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모든 경험과 시선은 아카이빙해두지 않으면 휘발된다. 어딘가에 쌓아두어야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새로운 영감을 붙잡아두는 '영감 아카이빙'은 참 잘하는데, 나의 경험에서 나온 레슨런을 쌓는 '경험 아카이빙'은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부분이다.


즉흥적이고, 일을 벌리기 좋아하는 성격이어서 새로운 일에 쉽게 도전하는 편이다. 이거 괜찮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 걱정보단 기대를 안고 빠르게 뛰어들어 적응하며 배우기 때문에 일을 벌릴 때마다 적어도 한 개씩은 꼭 새롭게 배워서 레벨업하게 된다.


책을 만들 때 인디자인을 배우고,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편집을 배우고,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유저 팬덤 전략을 배운다. 특히, 기획일을 하며 고민을 했던 포인트, 시장의 문제, 유저의 보이스, 디자이너와 개발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업계에서 5년간 마케터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며, 마케팅 업계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만나고, 진득하니 고민을 나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인사이트가 있었는데 따로 회고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길들여지지 않았던게 아쉽다. 최근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지금껏 쌓인 수백개의 파일과 자료들을 통해 한 번 돌아볼 수는 있었지만 별개로 흩날리는 것들을 나를 통해 체득한 노하우로 기록해두는건 또 다른 이야기다. 물론 경험적인 측면에선 '과거에 이런 케이스가 있었으니 이번엔 이렇게 해볼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만의 노하우로 프로세스가 갖춰졌다면 새로운 프로젝트마다 더 효율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진행했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카이빙은 중요하다. 물론 이 글을 통해 영감과 경험에 대한 아카이빙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노하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오히려 함께 해보자는 다짐의 외침이다.


얼마 전, 신사임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어도비 '우미영' 대표님의 영상을 봤다. 일 잘하는 사람의 5가지 태도에 대한 영상인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복기로 반복 가능한 노하우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했던 업무에 대해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고, 다음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프로세스를 갖춰놔야, 나만의 모듈이 여러개 생긴다.


그럼 그 다음 스텝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나만의 모듈을 조합하여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게 된다. 그 모듈을 얼마나 많이 갖춰두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경력에서 쌓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창의성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점은 창의성이란 '천재적인 발상에 있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생각의 노동'에서 나오는 것에 가깝다. 오랜 생각의 숙성, 생각의 노동, 경험과 질문. 그리고 '연결하는 능력'이다.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결국 창의성은 얼마나 나의 경험을 잘 축적하고, 연결하고, 생각의 밀도를 높이는 지에 따라 달려있다. 생각이 매번 일회성으로 흩날리면 그 무게에 힘을 싣기가 힘들다. 모든 생각을 압축해 힘껏 눌러 밀도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경험을 연결시키면 나만의 생각, 나만의 가치가 탄생한다. 이 모든건 '나'라는 사람의 히스토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서 더욱 갚지고 의미있다.


독서는 타인의 생각과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어디 '독서'뿐일까. 수 많은 인터뷰와 뉴스레터, 유튜브 영상과 인스타그램 계정들의 콘텐츠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흡수하기만 하면 '내 것'은 없다. 나만의 생각, 삶의 지혜, 태도, 인사이트를 갖기 위해선 그것들을 흡수해서 만들어온 나의 삶의 궤적을 잘 보존하고, 그 궤적을 연결시켜 새로운 가치로 탄생시켜야 한다. 분명 내가 오늘 한 생각은 과거의 a와 b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많이 흡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output을 만들자. 그 첫 걸음이 경험을 통해 배운 레슨런을 정리하는 습관일 것 같다. 그런 레슨런이 모여 일과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성문이 길었다. 이렇게 반성만 하고 있을 수 없어서, 이번주부터 바로 시작하기로 했다.

힙서비의 today i learned. TIL 챌린지. 힙서비 멤버들과 레슨런을 적고, 공유하는 챌린지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내가 잘한 것과 아쉬운 것. 배운 것에 대해 레슨런을 적는다. 그럼 다음 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다. 물론 더 좋은 점은 혼자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타트업, pm,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레슨런을 하는데, 다른 사람의 레슨런에 응원과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실로 어마무지한 든든함이라고 한다.


이 참에 노션에 템플릿을 하나 더 만들었다. 경험 아카이빙을 위한 캘린더 템플렛을 만들어 레슨런을 적고, 매주, 매월 회고해보려 한다. 그럼 나의 한달이, 1년이 더 촘촘하게 기록되고, 가득차겠지.


모든 삶엔 아카이빙이 필요하다. 새로운 영감을 축적하는 '영감 아카이빙'도 중요하지만, 나의 지나간 경험과 히스토리에서 쌓이는 '경험 아카이빙'이 더 중요하다. 그건 나밖에 쌓을 수 없는 소중한 재산이다.


아, 조금만 더 일찍 깨닫고, 마구마구 쌓아뒀으면 좋았을텐데, 지금이라도 흩어진 경험을 한 곳에 쌓아 올리고, 모듈을 만들어봐야겠다. 레고처럼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마구마구 활용할 수 있는 나만의 무기를 갈고 닦기 위해 레슨런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 잘하는 멋진 언니가 되어야지. 기대된다.


생각해보니 이것 또한 2021년의 새로운 도전이네. 나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여러가지 실험 중 하나겠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는 내가 어떤 것까지 할 수 있고, 어떤 모습까지 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한 해다.)

가능성 프로젝트의 첫 번째. 레슨런을 적으면 나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경험 아카이빙이 나에게 어떤 재산이 될까.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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