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ze Apr 11. 2021

하나의 세계를 잃으면, 또 다른 세계를 찾아

호비레터 : 페스티벌과 칵테일, 그리고 식물

호비레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쓰지만, 좋아했던 것에 대해서도 쓴다. 앞으로 더 좋아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도.


코로나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취미를 도둑맞았다. 특히 외부에서 하거나, 여러 명이 모여야하는 취미라면 억울하게 뺏긴 기분마저 들 것이다.

일상 생활에도 제약이 많아지는 만큼 모든 분야에서 제약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사람은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낙담하며 슬퍼하기만 하는 사람. 그 즐거움을 대체할 또 다른 조각을 찾아 나서는 사람.


지금 나에게 가장 그리운게 뭐냐고 물으면 단 하나. '공연'이다. 뜨거운 날씨던 비가 오던 상관없이 무대를 누벼가며 맥주 한 잔 들고 방방 뛰던 페스티벌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다. 특히나 나와 윤영, 조재는 페스티벌을 정말 - 정말 - 좋아하던 사람들이어서 그 허전함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나가 앗아간 확실한 취미다. 그렇지만 그 세계를 잃었으면 또 다른 조각을 찾아 허전함을 메꾸면 된다. 우리는 완벽한 후자다.

-

#hobbyletter 04

페스티벌을 잃었다.


나의 확실한 행복은 페스티벌이다. 아니 그랬었다.


맑은 날 맥주 한 잔 손에 들고 이 곳 저 곳 뛰어 다니면서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고, 방방뛰면서 대낮부터 밤까지 미쳐있는 그 순간이 좋았다. 언젠가 꼭 코첼라를 가보겠다는 다짐도 세워보면서, 매년 친구들과 락페를 가는건 나의 정말 큰 취미였다. 올해는 코로나로 그 어떤 공연도 페스티벌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애석한 마음을 달래려 차 안에서 볼륨 최대치로 nell의 stay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술탄오브더디스코의 온라인 공연을 방안에서 미친듯이 따라부르기도 했지만, 한 가지를 더 명확하게 깨달았을 뿐이다.


“이 취미는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이다.”


아무리 노래를 크게 듣고, 따라 불러도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주는 그 쾌감과 행복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상실감이 꽤나 컸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맥주를 마시던 그 때가 너무 소중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낙담만 하고 있을 순 없어, 새롭게 좋아하는 걸 찾아 나섰다.


칵테일 만들기. 술은 좋아하지만 칵테일은 잘 안 먹는 편이다. 너무 달거나, 상큼한 건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의 친오빠 밍구기는 몇 년 전 바텐더가 재밌어보인다는 이유로 몇년간 바텐더를 했었다. 이제서야 칵테일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오빠를 찾았다. “칵테일 알려줘”


친한 가게를 빌려 비장한 마음으로 메모장과 펜을 쥐었다. 최대한 내 취향에 맞는 술을 이것저것 먹어보고, 사이드카, 김렛, 다이키리 같은 처음들어보는 칵테일도 배워보고, 가장 배우고 싶던 모히또까지 내 취향에 맞는 온갖 종류의 칵테일을 배웠다. 칵테일은 너무 달거나, 너무 예쁘거나, 너무 화려하고 상큼한 것만 있는건 아니었다. 시크하고, 담담한 아이들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건 칵테일 세계에선 내가 레시피를 만드는 족족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백’이라는 이름도 예쁜 동네에 사는 나는 크랜베리가 들어가 붉은 빛을 띄는 ‘뉴욕’이라는 술을 변형해 ‘동백’이라는 칵테일을 만들었다.


우리집을 찾는 사람들에게 웰컴 드링크로 딱이지 않나. 동백꽃을 띄워 ‘동백’을 내어주고, 내가 키운 민트로 ‘모히또’를 만들어주고. 집에는 주류 트롤리를 만들어 이리저리 끌고 다녀야겠다. 방에서, 베란다에서, 거실에서 원하는대로 술을 만들어 먹어야지.


벌써 설레고 기대되는 일상의 조각이 생겼다. 하나의 행복을 잃으면 어때.
또 다른 행복을 찾아내면 되지.

 

그렇지만, 빠른 시일 내로 다시 페스티벌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페스티벌을 대체할 수 있는 완벽한 조각은 아니지만 내가 찾은 조각은 칵테일이었다. 한 잔만 마셔도 빨개지는 주제에 인스타그램 아이디는 '맥주없이 못사는 애'다. 가장 좋아하는 건 맥주고, 청하도 와인도 막걸리도 좋아한다. 그 중에 가장 선호하지 않는게 칵테일이지만 내가 맘대로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이름도 맘대로 붙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종종 저녁에 레시피를 적은 메모지를 들춰가며 칵테일 쉐킷쉐킷할 때면 '아! 나 이제 칵테일도 만들어먹는 어른이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손님이 올 때면 더 활용도가 높은 취미다.



아직도 바에 즐겨 가지는 않고, 칵테일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진 베이스, 럼 베이스, 위스키 베이스의 술을 구분하고, 어떤 술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알게 되고, 내가 좋아하던 취향은 어떤 베이스의 어떤 음료가 섞인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확실히 알게 된거지. 그리고 집 한 구석에 나만의 호비존을 만들어두었다. 아직 어설프고, 숭덩숭덩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칵테일, 인센스스틱을 모아두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도록 옹기종기 모아두었다.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차리게 될 기회가 생기면 그 때는 꼭 웰컴 드링크로 '동백'을 내어줘야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울 수 있다. 벌써 짜릿해.


그리고, 이보다 조금 더 전 찾았던 조각이 뭐였느냐 물으면 '식물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여전히 몇 개의 식물은 운명을 달리했고, 페퍼민트는 덩쿨처럼 미친듯이 자라나 이게 맞아? 싶을 때도 있지만. 햇볕 아래 그들이 살랑이는 걸 지켜보면서 말랑말랑한 연초록의 새로운 잎사귀가 돋아나는 걸 보는 건 나의 가장 큰 뿌듯함이고 보람이다. 봄이 왔다는 건 또 어떻게 기가막히게 눈치채고, 예전 잎을 떨궈내고 싱그러운 이파리를 마구마구 뻗어낸다. 봄바람 냄새를 맡는걸까.




#hobbyletter 02

식물에 물을 주는 일


삶이 낙이 뭐냐는 질문을 받곤 멍해졌다. ‘삶’과 ‘낙’이라는 어려운 단어가 연이어 나와서 그런지 더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다.


삶의 낙이라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든 마냥 행복하기만 한, 별 생각없이 편안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닌가 싶었다. 그 질문을 받곤 만나는 사람마다, 닥치는대로 ‘삶의 낙’이 무어냐고 묻곤 했다.


질문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잠깐 생각하곤 ‘뭐야, 나 삶의 낙이 없는 것 같다’며 슬퍼졌다.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집에서 가족과 밥해먹을 때, 그리곤 밤에 달릴 때, 그리고 우리집에 내가 직접 들인 식물들에 하나둘씩 물을 주고, 새로운 잎을 가만히 바라볼 때 마냥 행복하고, 아무생각없이 편안하다.

이 작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세상을 살아간다는게 뿌듯하고, 심지어 요즘같이 볕이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쑥쑥 자랄 때는 기특하기 까지하다.


요즘 나의 삶의 낙은 그건거 같다. 식물에 물을 주는 순간. 새로운 잎이 나는 걸 발견한 순간.

삶의 낙은 대단하면 안된다.
대단한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과정은 오히려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간단하고, 쉽고, 별거 아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 가볍게 삶의 낙을 즐길 수 있다. 샤워하고 넷플릭스를 보거나, 집 앞을 달린 뒤에 맥주 한 잔을 하는 것들.
내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바로바로 나의 삶의 낙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호비클럽이 사람들에게 삶의 낙을 찾아주는 소소하고, 따뜻한 커뮤니티로 남았으면 좋겠다. 첫번째 막걸리 플렉스 모임이 끝난 뒤에 ‘삼십분 러닝클럽’을 결성했다. 매주 모이거나, 같이 달리는 거창한 건 아니다. 그저 런데이에 친구 추가 해두고, 일주일에 3번 달리는 걸 응원해주는 모임. 달릴 때마다 박수가 날라오는데 별거 아닌게 귀엽고, 힘이나고 난리다.

삶의 낙, 별거 아니다. 지금 이 레터 읽고, 기분 좋으면 이 레터를 기다리는 것도 삶의 낙이 될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삶의 낙이 많아지는 인생이길!

#behobbybehappy




'원파운드'라는 브랜드를 굉장히 좋아하고, 원파운드를 만들어가시는 지훈님은 굉장히 유쾌하시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얘기를 해본 적이 없는데 DM으로 삶의 낙이 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그 때 이렇게 답이 왔다.


원예, 기타연습, 킥보드타기, 피클담그기 이런거 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어쩌죤.


아, 진짜 유쾌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삶의 모든 재미에서 '삶의 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지금 좋아하는 것들을 평생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흘러가고, 또 다른 것들이 흘러오고. 계속 밀물썰물 들어오고 나가듯이 좋아하는 것들도 영원하지 않다.


오늘 좋았던 게 내일 싫어지기도 하고, 좋지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하나의 세계를 잃으면 또 하나의 세계를 찾으면 된다.


hobby club way

be hobby, be happy

find your hobby

fill your hobby with hobby club

no stress, just do hobby

이전 07화 56살에도 취미는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