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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Apr 04. 2021

56살에도 취미는 필요하다.

호비 레터 03.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엄마의 취미는



종종 호비 레터를 쓴다.

호비 클럽에서 쓰는 취미에 대한 짧은 에세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이기도, 좋아했던 것에 대한 얘기이기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에 엄마와 제주 백패킹을 다녀와서 엄마의 취미에 대해서 짧게나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취미에 진심인 50대니까.


엄마와는 종종 백패킹을 간다. 첫 백패킹은 2017년 봄에 갔던 원적산이었다.

삼촌과 엄마와 떠나 한강과 별을 보며 맥주를 먹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정과 경험이었다.

완전한 사랑에 둘러 쌓인 밤이었다.



그해 여름엔 설악산 성인대로 떠났고, 가을엔 굴업도로 떠났다.

굴업도는 아직도 동화처럼 기억에 자리 잡았다. 


백패킹을 처음 경험했던 그 해에 좋은 곳으로만 쏙쏙 데려가는 엄마 덕분에, 힘들 때마다 자연의 품으로 데려가 주던 엄마 덕분에 힘들 때면 자연을 찾는 습관이 생겼고, 마음에 구멍이 생길 때면 엄마한테 백패킹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다음 해 여름엔 단양으로, 여름엔 제주로 우리만의 약속처럼 백패킹을 떠났다.

엄마와 단 둘이 떠났던 첫 제주 백패킹도 잊지 못한다.


암수술을 하자마자 떠났던 첫 여행이었고, 엄마랑 단 둘이 하는 첫 백패킹이었다.

늘 산에 올라가서 하는 백패킹만 해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제주 앞바다에서, 엄마의 버킷리스트였던 비양도에서 텐트 치고 자던 그 순간은 무엇도 부러울 게 없었다.

우리 둘만의 힘으로 공간을 찾고, 작은 집을 짓고, 깊숙한 이야기들을 꺼냈다.


작년엔 민둥산과 제주, 운탄고도 백패킹을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백패킹의 성지라는 굴업도, 성인대, 운탄고도를 모두 다녀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게 된 건, 나무의 색이 변해가는 걸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챌 수 있게 된 건 늘 자연 가까이 데려가 준 엄마 덕이 아닐까.

요즘도 지칠 땐 엄마한테 백패킹을 가자고 한다.

 


#hwang_backpacking이라는 태그로 엄마와의 백패킹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작년 여름, 이렇게 적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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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ghter’s hobbyletter

2019.07

호비 레터 03. 56살 우리 엄마의 취미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 꼭 우리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매주 주말 15킬로에 육박하는 배낭을 짊어지고 백패킹을 떠난다.

귀찮지 않냐 물었더니 떠날 수 있음에 마냥 행복하단다.

 

그런 엄마가 갑작스러운 발가락 부상으로 2달간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취미를 잃은 50대의 일상은 더욱 무료해졌고, 무력감을 느끼는 엄마의 모습을 처음 봤다.

주말 동안의 짧은 취미가 엄마의 삶에 얼마나 큰 비중과 영향력을 끼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주, 깁스를 푸르자마자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해 2박 3일 제주 백패킹을 떠났다. 나란히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섬 속의 섬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에매랄드 푸른빛 바다 앞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뚝딱 망치질을 해서 집을 짓고, 가스를 켜 밥을 지어먹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행복하다는 말을 몇 백번은 들었다.


56살인 우리 엄마에게도 취미는 필요하다. 매주 백패킹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과 이를 함께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평소에 볼 수 없는 풍경과 경험들. 엄마가 매주 떠나는 이유는 충분하다.

백패킹뿐만 아니라 수영을 꽤 오래 해왔지만 어깨가 아파 수영을 못하게 된 이후로는 필라테스에 재미를 붙였다. 올여름엔 꼭 서핑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50대도 하고 싶은 것 많고, 해봐야 하는 것도 많다. 엄마가 신신당부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지금 다 해보라고. 신체적인 제약이 생겨 못하기 전에 지금 다 하라고.


그러므로 올여름엔 꼭 엄마랑 서핑을 가야 한다. 엄마의 취미를 응원한다.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몇 년 전부터는 삼촌과 숙모, 막내 이모까지 백패킹의 세계에 초대했다. 지쳐있던 삼촌과 이모의 얼굴이 환해졌고, 이렇게 장난기가 넘쳤나 싶게 밝아졌다.

엄마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가 주변 사람에게까지 넘쳐흐른다.


사실 우리 엄마는 모질고, 힘든 일을 많이도 겪었다.

그 모든 일들을 지나오면서도 지금 이렇게 단단하고, 에너지 넘치고, 환하고, 밝고, 인생을 매일같이 즐기는 모습이 나에게는 가장 큰 영감이고, 인생의 희망이다.

엄마는 그렇게 나의 꿈이 되었다. 엄마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건 나의 가장 큰 욕심이다.

엄마의 생각이 궁금해져, 엄마의 취미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2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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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s hobbyletter

2020.03

나에게 취미란? 요동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백패킹!!!!


성격상 가만히 있질 못하는 탓에 집에 얌전히 있을라 하면 뭔가 시간낭비를 하는 느낌이 든다.

20대부터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결혼해서 살림에 육아에 매달리다 보니 아이들하고 여행을 위주로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같이 등산을 데리고 다녔다.

잘 따라오는 거에 신이 나서 참 많이도 같이 했던 것 같다.

중학교 들어가니 산보다는 친구가 좋다고 산엘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


40대부터는 매주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달려갔다.

그 당시는 산악회를 쫓아다니면서 정상석을 밟고 내려오면 뭔가 뿌듯하고 나 자신한테 성취감이 들었다.

무박산행, 종주산행.. 닥치는 대로 다니면서 주변에서 물어보면 자랑스럽게 산 이름을 줄줄이 대면서도 정작 그 산에 대한 느낌이나 주변은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매주 배낭을 메고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말 산을 다녀오면 그 산의 정기로 한 주를 기운차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받았다.


나이 50대에 들어서면서 산에 오를 때면 큰 배낭을 메고 내려오는 백 패킹하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도 힘든데 저렇게 큰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일 년 뒤 내가 그 미친 짓을 미친 듯이 하고 있었다.


첫 백패킹을 굴업도로 가서 받은 느낌은 등산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물론 올라갈 때 배낭의 무게(보통 18-20킬로)가 내 삶의 무게로 느껴질 때가 많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가끔 이 짓을 왜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 힘듬마저도 희열로 다가온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껴지는 싱그러운 그 느낌과 작은 새소리 하나에 힘들게 올라온 느낌을 보상받고도 남음이었다.


올라가면 내려올 것을 굳이 왜 힘들게 올라가냐고?


힘들게 올라가지 않아도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맞다. 그렇지만 올라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게 있다.

말이 필요 없다.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자연은 항상 좋은 것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비바람에, 곰탕인 하늘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즐기는 맘의 여유도 생긴다.

지금은 무작정 올라가서 정상석을 찍기보다는 자연을 몸으로 느끼면서 전망 좋은 곳에서는 한 없이 앉아서 멍도 때리고, 계절별로 바뀌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바라보면서.. 내가 주말이면 떠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돌아올 수 있는 직장과 가정이 있음에 정말 행복한 삶이구나 싶다.


작년엔 여러 가지 부상으로 주말마다 떠나던 백패킹을 못 갈 상황에 마주하다 보니 무기력해지고 삶이 무미건조하고, 우울증까지 오려고 했다.

이 작은 취미가 나에게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힘이구나 싶었다.


주중에 수영이나 요가, 필라테스를 해보았지만 백패킹만큼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든 시기에 웬만한 일엔 가슴 뛸 일도, 심장이 요동칠 일도 없다. 웬만한 일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지고, 늘 같은 심장박동수로만 살아가는데, 무거븐 박 배낭만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끼는 이 삶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못할 때까지 오래도록 할 수 있길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


-


이 글을 읽고 우리 정말 닮았구나 생각했다.

서로의 생각과 서로를 생각하는 생각까지.


내가 작년의 쓴 호비 레터뿐 아니라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느꼈던 경험들까지 비슷한 감정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의 무게를 삶의 무게로 느끼고, 성취를 쫓던 삶에서 벗어나 여유와 행복을 느끼고, 늘 맑은 날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도.


나의 산티아고 에세이 <우는 대신 걸을게요>

엄마의 삶의 태도가 나에게 그대로 물들었다.

엄마의 호비 레터를 보고 느꼈다. 엄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에게 그대로 물들어가고 있다고.

그게 너무 좋았다. 엄마는 나의 50대를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니까.

엄마가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 모든 걸 같이 하고 싶다.


20대도, 50대도 가슴 뛰게 하는 일은 필요하다.

얼마 전, 요트를 세 대는 가지고 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60대지만 요트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그게 어려워져 한강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요트투어를 한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수상스키장에서 진짜 멋있게 타시는 분들은 50대 여성분들이다. 탄탄한 몸에, 환한 표정에, 여유로운 그 모습에 나도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이 취미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50대, 60대의 취미는 왠지 요트 한 대 정도 끌어줘야 할 것 같고, 경제적인 능력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게 있고, 할 수 있어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으니까. 몇 년 전 큰 수술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여름에 물놀이고, 달리기도, 맥주 마시기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온 몸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50대 이후의 취미는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했던 취미를 계속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엄마처럼 50대에 들어 새로운 취미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세상을 둘러보려는 의지이자 에너지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탐험하고, 관심 가지고, 도전하고, 즐기는 50대가 되기 위해서 우선 체력을 키워야겠다.

확실한  엄마가 나보다 체력이 좋다는 사실이니까.

좋아하는게 있으면 내 몸을 더 아끼게 된다. 평소에도 구석구석 살펴보며 아픈 곳이 없나 둘러보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면밀히 살핀다.

좋아하는 걸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아끼게 한다.


엄마의 글을 읽고 회사에 가서 최근 가장 가슴 뛰었던 일이 언제였느냐고 물어봤다.

생각보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나이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태도의 문제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움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에너지를 지니고, 주변을 둘러보며 익숙한 것도 낯설게 보며 두근거림을 느끼는 50대가 되어야지.

이렇게 오늘도 엄마는 나의 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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