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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Apr 10. 2021

내가 만든 컵에 드립커피를 내려먹는 다는 건

호비클럽 어텀시즌 : 코로나 시대의 호비클럽


호비 클럽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

금방 종식될 것 같았던 코로나는 좀처럼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 같이 모여서 호비 노트를 적고, 굿즈를 나눠주려고 했던 여름 시즌의 마지막 모임은 줌으로 대체되었고, 맥주 한 캔씩 들고 화면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가을 시즌을 고민하던 때였다.


가을에는 꼭 차나 커피를 배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면서 천천히 차를 우려내거나, 천천히 커피를 갈아서 내려먹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

그때마다 어떠한 따스한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면 그 행위를 하는 내가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차와 커피, 술을 모두 결합한 시즌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가을에는 '드립 커피와 도예'로 정했다.

드립 커피를 배우고, 도예 클래스로 컵을 만들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커피를 내가 만든 컵에 내려먹는 근사한 일.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에세이를 사면서, 같은 곳을 떠나오면서 인연이 닿았던 경한님에게 연락을 했다.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take a break라는 tab coffee bar를 차렸다.

공간이 주는 매력뿐만 아니라 주인장의 매력도 넘쳐나는 커피바다. 



아, 그만큼 딱 맞는 호비클럽의 바리스타는 없다.

호비 클럽의 가을 시즌을 함께 해주세요. 바리스타가 되어 멤버들에게 드립 커피의 세상을 열어주세요.

라고 연락을 드렸다. 


문제는 5인 이상이 모일 수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온라인으로 해보기로 했다.

물론 드립 커피를 온라인으로 배웠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커피를 배운다는 건 향을 느끼고, 맛의 차이를 음미하면서 점점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니까.


그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정답은 없으니까 각자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가이드만 해준다면! 

커피는 맛을 보고 해야 하는 거라 온라인으로 알려드리는 게 걱정이라고 했던 경한님은 몇 시간 뒤에 고고하시죠!라는 답을 보내왔다. 뭐, 새로운 거 해보는 거지 뭐! 안돼도 뭐! 


바리스타 경한님이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원두와 장비를 추천해주셨고 호비 클럽 autumn season 모집이 시작되었다. 


초보자들은 하리오와 칼리타라는 드리퍼를 많이 사용하는데, 어떤 드리퍼를 쓰냐에 따라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 추출되는 구멍에 따라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을 내는지, 조금 더 진한 맛을 내는지의 차이가 난다. 


원두 또한 취향이 어마어마하게 갈리는 영역이었다. 우리는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드립 세트'와 '원두'를 통일해서 제안하기로 했다. 


호비 클럽 가을 시즌 :  60 minutes drip coffee


"커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해본 적 있는 당신이라면, 60분만 함께해요. 매일 쉽게 타 먹는 카누 말고, 스벅에서 쉽게 사 먹는 커피 말고. 두 가지의 원두로 천천히 커피를 내리며 나의 취향을 알아보고,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소중한 나의 집이 나에게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 퀘렌시아가 될 수 있고, 짧은 시간이 나를 지키는 소중한 루틴이 될 수 있어요.


이번 가을에는 온라인으로 '커피'를 배워보려고 해요. 준비물도 굿즈도 저희가 모두 보내드려요. 60분만 내어주세요.


뭘 준비해야 할까요?

드리퍼, 드립 서버, 드립 포트, 여과지, 원두 200g, 내가 좋아하는 컵

*장비가 없어도 걱정 마세요. 구매를 신청해주신 분들을 위해 한 번에 구매해 배송해드릴게요.

[드립 커피세트☕] -하리오 드리퍼 1-2인용 -시타 베이식 드립 서버 300ml -시타 테프론 드립포트 350ml -계량스푼 12g -여과지 -원두(에티오피아 원두 100g + 브라질 원두 100g)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커피를 배우기 위해 위 장비 세트로 통일하여 구입할 예정입니다 : )

신청하실 때 '드립 세트 보유 여부'만 알려주세요! 기존 장비가 있으실 경우, 별도 구입하지 않으셔도 되며, '드리퍼, 드립 서버, 드립포트, 여과지'까지 준비되었는지 확인해주세요.

장비를 구입하지 않으시더라도 원두는 저희가 준비해드립니다!




일주일 동안 신청을 받았는데, 이상하다. 신청자가 없었다.

장비와 원두를 모두 준비해주는 과정이어서 가격대가 비싸긴 했는데, 보통 일반적인 원데이 클래스 정도의 가격대라고 생각해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공간과 그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집에서 배우는 취미 클래스가 많이 생기긴 했지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영역은 새로운 공간에서 함께 향을 맡고, 맛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정말 매력적인 시간인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그러니까. 


아쉬움에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다가 방향을 바꿨다.

우리의 바리스타인 윤영이에게, 윤영이네 카페에서, 궁금했던 원두를 사놓고, 우리끼리라도 경험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가 오는 일요일 오전 문이 닫힌 북아현동의 콘 브리오로 갔다.

비 오는 날 비틀스의 엘피판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커피 향을 잔뜩 맡으며,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게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준비한 원두는 3가지였다.


1. 정말 궁금했던 werk의 werk blend baby : 클린, 브라운 슈가, 캬라멜, 약간의 산미 (250g, 16000원)
2. 이름부터 기분 좋은 프릳츠의 '잘 되어 가시나' everything good : 단맛 베이스 (200g, 16000원) 
3. 커피를 잘 못먹는 조재를 위한 felt의 디카페인 에스프레소 : 헤이즐넛, 아몬드, 블랙슈가 (200g, 15000원)


커피는 홀빈을 바로 갈아서 내려마셔야 가장 신선하고, 풍미가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여 모두 홀빈으로 주문했다. 

 


콘브리오의 일품 바리스타인 윤영이 어머니와 윤영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들었다. 

먼저 드리퍼 기구들을 모두 뜨거운 물로 뎁혀주고, 종이 필터는 한 번 물에 적셔 종이 비린내를 없애주고, 홀빈을 어느 정도 굵기로 갈아낼지 취향을 맞춰가고, 커피빵이 나올 정도로 두툼하게 첫 추출을 하고, 시간을 재어가며 기다리는 과정을 3번 정도 반복한다. 


정말 신기했던 건 같은 커피로, 같은 시간 동안 내렸는데도 맛이 정말 제각각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사람의 손을 정말 많이 타는구나. 세상에 같은 건 단 하나도 없구나. 같은 재료로 네가 내린 것과 내가 내린 것도 이렇게 다른데. 정말 세상엔 늘 다르고, 새로운 것 투성이다.


세 가지 원두를 천천히 내리면서, 한 편에서는 엘피를 계속 바꿔 틀었다. 비록 우리가 생각했던 온라인에 모두 모여 함께 한 드립 커피 시간은 아니었지만 커피를 갈아서, 천천히 내리고, 어떤 맛인지 음미하고,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너무 따뜻했다. 


우리 셋이 좋아하는 원두는 모두 달랐고, 각자 마음에 드는 원두를 하나씩 챙겨갔다. 사람이라는 게 이렇게 다르다. 커피를 하나 내려마셔도 좋아하는 향과 맛이 이렇게나 다르다. 


그래서 남이 좋다는 거 말고, 내가 좋다는 걸 계속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남이 좋은 건 내가 좋은 게 아니니까.




everything good 


그런 말이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 커피 안에 '난 최고야, 나 멋져, 오늘 힘내!'라는 주문을 걸고 그 커피를 마시면 주문이 내 몸속을 타고 흐르며 정말 그렇게 되는 힘이 있다고. 


프릳츠의 'everything good'을 마시면 정말 그런 기분이 든다. 모든 일이 정말 잘 될 것 같은 기분. 

이번엔 이 커피를 내려마실 컵을 만들고 싶었다.


호비 클럽과 함께 도예 클래스를 하고 싶다고 제안해준 곳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도예 클래스가 있었다. 남양주의 마이 포터리. 


빛이 힘차게 들어오는 노란빛의 건물 한가운데 앉아 손가락으로 조물조물 내가 사용할 컵을 만드는 일을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또 어느 날의 주말. 아침 일찍부터 만나 남양주에서 만났다. 조물조물 컵을 만들고, 거기에 everything good을 썼다. 이 컵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모든 일이 잘 될 거라는 주문을 걸면서.  




요즘도 주말이면 무조건 드립퍼 세트와 everything good 컵을 꺼낸다.

다양한 원두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요즘은 이월 로스터즈의 만월이라는 블렌드 원두를 갈아먹고 있지만 컵은 항상 같다.



정말 좋아하는 말이다. 배운다는 건 '세상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라는 말. 

가을 시즌 동안 드립 커피를 배우고, 도예공방에 가서 컵을 굽고, 그 컵에 내가 선택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시간을 즐기는 일. 세상에 해상도가 조금 더 짙어졌다.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궁금하고, 신기했는데 나의 세계가 그들의 세계까지 한 뼘 확장한 기분이 들어 짜릿했다. 내 세계가 조금 넓어졌다. 이제 나는 카페에 가서 홀빈을 팔면 조금 더 기웃거리다가 집에서 내려먹을 생각에 들고 올 거고, 주말 아침엔 천천히 커피를 내려마시면서 나의 시간을 즐기겠지. 


아우. 짜릿해. 세상을 넓혀가는 일은, 해상도를 높여가는 일은 이렇게 재미있다.


-

코로나로 망한 줄 알았던 가을 시즌도 나에게 짙게 남긴 건 있었다. 

짙게 남긴 취미와 시간과 햇볕이 있었다. 

오늘도 빨래를 돌려놓고, 천천히 커피를 내려마신다. 


everything good! 


hobby club way

be hobby, be happy

find your hobby

fill your hobby with hobby club

no stress, just do hob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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