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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Apr 11. 2021

좋아한다는 건 일상의 밀도가 생기는 일

호비클럽 썸머시즌 : 아무튼 여름

호비클럽 여름시즌에서는 '아무튼 여름'을 함께 읽었다.

김신회 작가님이 여름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적은 책이다.


이 책에 빠지게 된 건 첫 표지에 적힌 문장때문이다.


내가 그리워 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내가 정말 그랬다. 여름의 뜨거움이 아니라 뜨거운 햇빛을 쐬며 바다수영을 하던 내가 그리웠고, 뜨거운 한낮의 더위 아래에 시원한 생맥주를 먹는 내가 그리웠다. 여름의 나는 어떤 것들을 좋아했길래 그토록 나를 그리워했을까.


'아무튼'이라는 에세이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다. 이만큼 호비클럽에 딱 맞는 책이 있을까.


멤버들과 각자 책을 읽으며 한 번의 미션을 나누고, 한 번의 문장 선물을 하기로 했다.

첫 미션은 나의 '여름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여름의 시작과 끝이었다.


나의 여름 어는 누가 뭐래도 '빨간 의자'다. 뜨거운 한낮이 지나고 서늘해진 저녁이면 빨간 의자가 잔뜩 놓인 동네 호프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들이켜는 일. 그게 나의 여름 낭만이고, 여름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여름의 시작과 끝은 공기의 냄새가 기가 막히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 말 퇴근길 밤 냄새는 기가 막히게 달달하게 바뀌고, 바람도 달큰하다. 9월 1일이 되자마자는 또 아침의 냄새가 달라지고, 공기는 한 톤 서늘해져 순식간에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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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밀도를 촘촘히 쌓는 일

두 번째 미션은 서울숲에 가는 날 서로에게 문장 선물을 하는 미션이었다. 겹치지 않게 서로서로 문장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뽑기를 했고, 나는 조재에게 선물을 해야 했다.


정말 꼭 전하고 싶은 문장이 거기 있었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조재는 우리에게 그랬다. 유난히 감탄이 잦고, 작은 것에도 호들갑을 떠는 윤영이와 내 옆에 있으면 무덤덤했던 것도 한 번 더 보고 웃게 되고, 감탄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게 좋았다. 조재의 일상에 좋아하는 게 많아져서 잔뜩 웃고, 감탄하고, 환호하며, 감정의 높낮이를 느끼는 밀도 있는 일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재는 정말 호비클럽을 한 뒤 지금까지도 늘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자주 드립 커피를 내려마신다. 그 전보다 일상의 밀도가 생겼고, 멤버들의 세계를 흡수해 세계는 더욱더 넓어졌다.

더 자주 감탄할 수 있는 일상이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내가 선물 받은 문장은 이거였다.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더니 가방에 옥수수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서 좋았다.


보통은 그 뒤에 '싫었다'가 나와야 정상인데 그 뒤에 '그래서 좋았다'가 인간 황지혜라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이건 좋잖아.라고 좋은 걸 찾아내는 사람. 좋게 생각하는 사람.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어떤 의사 선생님은 지금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게 대단할 정도로 강하다고도 했다.


나는 얼마를 벌었냐는 질문보다 그래서 뭐가 더 좋아? 찐만두가 좋아 군만두가 좋아?라고 일상에서 내가 더 좋아하고 더 행복한 게 뭔지 묻는 질문들이 좋다.


그래서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무엇보다 중요도의 가중치를 높여서 생각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초당옥수수가 궁금해져서 시켜먹어 봤고, 옥천냉면이 궁금해져서 가보기로 했다. 책에서 좋았던 문장이 너무 많아 친구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다 읽어주기도 했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 내가 가진 자격을 떠올리지 않는 일, 더불어 타인의 자격 역시 판단하지 않는 일. 그것만큼 가뿐한 자유가 없다는 것을 한 여름 머슬 셔츠를 꺼내 입을 때마다 실감한다.


사랑에 매달리는 일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로서 제대로 서 있는 일이 아닌가.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더 집중할 시간. 누군가가 옆에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시간.


우리는 종종 무엇이 좋을 때 '그냥'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그냥' 좋은 것들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보고, 좋은 것들을 쭉 나열하다 보면 그 속에서 나만의 색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냥 좋은 것들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앞으로 '그냥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좋은 게 많은 일상은 더 촘촘하고, 밀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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