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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 거리의 이웃

4월 29일 일기

by birdkiz

만남의 명분은 집들이었다.

오늘은 번역원 인턴 시절 인연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가는 K선생님의 집에 초대받았다. 작년 12월 선생님의 결혼식이 열렸던 조달청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보통은 우리 둘이 만났으나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럿이서 만나기도 했는데, 다른 두 명의 선생님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K선생님과 그녀의 남편 (예식장에서 보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과 어색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K선생님 부부는 불고기와 새우 알아히요를 내어주었다. 손님이라곤 말주변 없는 나뿐인 자리라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편해졌다. 나는 K선생님과 그녀의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잠시 고민했다가 그냥 형부라고 부르기로 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입이 착 감기지 않을 만큼 형부라는 단어가 그리 친밀한 단어였던가?) 키가 크고 마른 형부는 날카로운 생김새와 달리 순박한 포항 청년이었다. 내가 최근에 있었던 사건들로 화두를 던지면 K선생님이 답변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고, 가끔씩 우리는 그의 의견을 물었다. 겉으로 봤을 때 이 자리가 불편한가 의문이 들만큼 대화에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의견을 물을 때마다 그는 서툴지만 신중하게 이야기 거리를 풀어보였다.


만날 때마다 우린 조금씩 변해있었다.

내가 사온 호두파이를 먹으며 조금 더 수다를 떨다가 9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K선생님을 이제 언니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배웅을 받으며 내가 어쩌다 K선생님의 신혼집까지 와서 그녀의 남편과 셋이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일까, 생각했다. K선생님은 내 성격과 정반대로 유난히 차분하고 진중한 성격이고 우리가 함께 일한 시간은 3개월뿐이다.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1년에 2번 정도 연락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1년에 한 번 만났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함께 했고, 다시 백수가 되어 스터디도 함께 하고, 사회인으로 옛직장을 함께 찾아보기도 하고, 결혼을 해 신혼집에도 갔다. 다양한 신분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연을 이어나간 덕분에 더 친근하게 느껴진 것이다. 만날 때마다 우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친밀함을 쌓아나갔다. 꾸준히 또 변화하면서.


1시간 반짜리 이웃이 생긴 기분

집에 돌아와서 왠지 어릴 적 엄마의 친한 친구네 집에서 가족 식사를 한듯한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이동 거리와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온 그녀의 어색한 식사 자리를 다녀온 후인데도 말이다. 편안한 이웃이 생긴 기분이다. 다른 사람의 공간에 방문한다는 것은 이렇게 평화로운 사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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