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더>
<마더>
tvN, 2018.01.24-2018.03.15, 연출: 김철규, 윤현기 / 극본: 정서경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며 울었다. 그것도 집도 아니고 기숙사에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에 내가 나에게 놀랐다.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드라마의 문법에 단련돼왔다.
왠만한 감성팔이에는 더 이상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가끔은 드라마 속 어처구니 없는 눈물에 도리어 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달랐다. 감성팔이가 아니었다. 진짜였다.
<마더>는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별히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들의 이야기. 부모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이가, 부모가 세상의 전부일 나이에 부모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된다는 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만큼 큰 일일 것이다. <마더>는 이렇게 아프고 큰 사연을 겪어보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세심하게 그려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태어나 제일 먼저 겪게 되는 사회이자 그룹인 가족은, 너무나도 닳고 닳은 단어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가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가족에 대해 쉽게 떠들어대기 때문에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당연한 관념이 팽배해 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는 나누는 장면. '가족'이라는 단어에 으레 떠올리게 되는 이 모습은 너무 흔한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안다. 저런 장면이 모두의 집에서 매일 펼쳐지는 장면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누군가는 단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도 만들어진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다른 가족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보통'이 아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더>는 달랐다. 어떤 것도 당연하게 그리지 않고, 어떤 고정적인 가족의 모습도 우월하게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부모가 모두 다른 세 딸과 함께 이룬 최영신의 가족, 자신이 가르치던 학대 아동과 함께 이룬 수진의 가족은 누구의 가족보다 사랑이 넘쳤고, 누구보다 서로를 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되었다. 이미 그들은 서로의 가족이었기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의 연대
드라마에 많이 쓰이는 캐릭터 구성이 있다. 정반대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며 함께하게 되는 구성, 그리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함께 아픔을 치유하는 연대의 구성. 이 드라마는 연대의 이야기다.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수진과 엄마에게 학대받은 윤복은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봤고, 서로의 아픈 구석에 공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알릴 수도, 알린다고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도 없는 아픔을 가지고 그저 외톨이로 살기를 택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나 서로의 구원자가 된 것이다.
똑같이 겪어보지 않고서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기 힘들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같은 아픔을 가지지 않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그 일이 얼마나 그를 힘들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더라도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줄 뚜렷한 방법 없이 의욕만 앞섰던 송예은 선생님이나,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서도 습관처럼 거짓말 하는 혜나 앞에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경찰처럼. 타인의 아픔은 어려운 문제고 그를 대하는 데 정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은 치유되어야 한다. 속에서 혼자 곪아 터진 아픔은 설악같은 사람을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고통스럽기도 하므로. 그래서 <마더>는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진을 만나지 않은 윤복의 삶, 윤복을 만나지 않은 수진의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들은 충분히 불행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 쉽게 멀어질 수도 없이 고통을 이고 지고 살았다. 미래며, 직업이며, 삶의 질이며,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상처의 치유로 그들은 구원을 얻었다. 기적처럼.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쉽게 쓰이는 관용구다. 자식이 어떤 잘못을 해도, 자신을 버려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고 애닳아 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세세한 사연까지 알지 못해도 엄마니까, 엄마라서 그들은 그랬고, 그래야 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가족'처럼, '엄마'도 우리는 그 이미지에 완벽히 부응하는 엄마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모성이란 뭘까.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모성일까, 저절로 생긴다면 어느 정도로 생기는 걸까.
<마더>에는 여러 엄마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수진과, 그 수진을 낳지 않았음에도 역시 사랑으로 길러낸 영신, 자신이 낳았지만 아이를 사랑하지 않은 자영, 그리고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홍희까지. 그들의 상황은 모두 달랐고, 그래서 모정도 달랐다. 그들은 모두 엄마였지만, 엄마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해 포기한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 버린 그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마더>는 엄마로 살았던 여성들의 삶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어떻게 엄마가 되어가는지, 어떻게 자녀를 책임질 마음을 먹게 되는지 보여주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에 대해 고쳐나가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나는 엄마에 대한 담론도 한 번 재고해보아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식을 낳는다고 저절로 모성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모성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게 되는 많은 어머니들이 있다. 그리고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한 순간이 아니라, 뱃속에 아이를 품는 순간부터 헤어지게 되는 순간까지 어쩌면 그 이상동안 계속해서 쌓아가야 하는 관계일 것이다. 사회에서 겪게 되는 많은 다른 관계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낳았다고 모두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낳지 않았다고 부족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마더>는 삼박자가 고루 잘 갖춰진 작품이었다. 대본은 아동학대와 엄마의 책임에 대한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면서도 쫓고 쫓기는 구도로 시청자들을 흡입력있게 끌고 갔고, 연출과 음악은 적절히 감정을 극대화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원래 믿고 볼 수 있는 배우 이보영, 이혜영, 남기애의 열연은 예상가능한 대목이었으나, 처음 보는 얼굴의 허율은 어렵고 아플 수 있는 연기를 매우 현실성있게 잘 해내주었고,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해본다는 고성희도 무리 없이 역할을 잘 소화해냈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더 극을 현실감있게 만들어주었다.
드라마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무거운 내용이었지만 밝은 윤복이를 볼 때마다 너무 귀여웠고, 수진과 윤복이가 어디까지나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화까지 함께 했다. 정주행할 드라마를 찾고 있는 분들께 강력추천한다. 대신, 마음이 좀 안정적일 때 보시길.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게 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