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관 구해령>
드라마 캐릭터의 필수조건은 무엇일까? 외모, 능력, 재력, 매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중 제일은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마력과도 같은 매력! 그 매력이란 녀석이 1화부터 철철 넘쳐야, 요즘처럼 볼 것 넘치는 세상에 끝까지 시청자를 잡아둘 수 있다.
매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연약한 모습으로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 착한 마음씨가 마치 천사와도 같은 매력, 깨물어주고 싶은 귀여운 매력 등. 이중에도 요즘 여성 캐릭터들에게 단연 화제인, 뜨는 매력은 ‘멋짐’이다.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세 주인공 배타미(임수정 분), 차현(이다희 분), 송가경(전혜진 분), 영화 <알라딘>의 주인공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이지은 분)까지. 요즘 여성 주인공들은 ‘멋짐’을 장착하고 있다.
일에 대한 사랑과 능력으로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검블유>의 타미-현-가경, 세상의 편견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용기 있게 외치는 <알라딘>의 자스민, 시대를 초월한 존재가 갖는 초능력으로 항상 찬성(여진구 분)을 지켜주는 <호텔 델루나>의 만월. 그 종류는 각각 달라도, ‘멋진’ 여자가 인기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신입사관 구해령>의 주인공, 구해령(신세경 분)은 어떨까? 정규회차까지 볼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 올라온 짤 하나라도 본 사람은 느꼈을 것이다. ‘너무 예쁘고, 너무 아름답다. 한복도 잘 어울리는구나.’
그런데 멋진가?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 나한테 구해령은 멋지지가 않다.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드라마는 이런 여성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하는 일마다 미숙해서 사고를 치고, 일을 그르치는 민폐녀. 장점이라고는 긍정적인 것밖에는 없어서 매번 참고 참고 또 참기만 하다 왕자님을 만나는 캔디녀, 상식도 교양도 없지만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백치미녀.
최근의 한국 드라마를 보면, 새로운 시대의 시청자에 걸맞은 새 여성 주인공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다수의 드라마는 아직도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건 구해령도 마찬가지다.
해령의 민폐녀적인 면모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에피소드는 10-12회차의 서리 파업 장면이다. 해령은 궁 안의 사정도 자세히 모르면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상소를 올리더니, 그 때문에 겪게 된 불편과 비난은 억울해만 할 뿐 해결할 방법을 찾지도 않고, 해결해내지도 못한다.
결국, 문제는 민우원(이지훈 분)이 해결하고, 쏟아지는 일감은 이림(차은우 분)이 도와주는 흑기사 스토리로 이 사건은 마무리된다. 바람직하지 못하게.
물론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깨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해령은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여인이고, 따라서 궁궐 내의 업무와 조직 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신입사관 구해령>은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처럼 잘 모르고 미숙하지만, 결국 훌륭한 사관이 되어 나라에 이바지할 주인공 구해령의 성장기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성장하는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목표 설정과 이를 이루어내겠다는 의지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만나는 동료들과의 팀워크는 성장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고. 하지만, 아쉽게도 해령이는 목표가 없다. 정확히는 해령의 생각을 드라마는 보여주지 않는다. 해령의 행보에 고민이나 신념은 없다. 오로지 행동만 존재한다.
간단한 퀴즈를 내보려고 한다.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답을 해보시라.
1. 해령이는 왜 결혼하기 싫었나?
2. 해령이는 왜 사관이 되었나?
3. 해령이는 사관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나는 <신입사관 구해령>을 꾸준히 보고 있지만, 위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해령이 다른 여인들과 다른 것은 분명한데 어째서 그렇게 다른지, 그래서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결국 그래서 해령이를 응원할 수가 없다.
고민이나 신념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문제다. 어떤 일을 대할 때 그 일이 결국 되어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얘기니까. 무모하고 미숙하더라도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이 있다면 그 행보는 가치 있다. 하지만, 해령의 행보는 의아함의 연속이다.
가장 인상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던 에피소드는 6화의 신참례 장면이다. 과거를 통해 정식으로 뽑힌 사관이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해령과 동료 사관이 선진 사관에게 자신들에게도 신참례를 열어달라 청한다.
신참례는 오늘날의 신입생 환영회 신고식, 직장 회식문화처럼 위계에 의한 강요가 없어져야 하고 순화되어야 할 문화다. 극 내에서도 여러 인물의 대사를 통해 이런 점은 명확히 제시된다. 그런데도 여사관들은 자신들이 인정받는 데 필요하다며 자처해서 신참례를 연다.
사관의 역할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모두 좋지 않은 문화라 여기고 있는 신참례를 통해 사관으로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흑기사를 자처해 벌인 술대결을 통해 해령은 뭘 얻고 싶었던 걸까?
드라마 내내 해령의 행보는 이처럼 통일성이 없다. 문학소녀였다가 갑자기 사관이 되더니, 사관으로서 이렇다 할 두각은 보이지 않으면서 활쏘기, 술 마시기, 의술을 잘하는 생뚱맞은 능력을 뽐낸다. 논리도 그렇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문학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규방 여인들은 식견이 짧은 사람들이지만, 매화의 소설을 비난하는 자신은 이상이 없고, 여사관을 인정하지 않는 선진 사관들에게 반발하면서도 자신들을 궁녀처럼 대하는 상궁의 행동에 ‘궁녀 취급’을 한다며 분개한다.
녹서당에서 펼쳐지는 이림과 해령의 로맨스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신입사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사랑만 키우다가는 편견과 통념으로 얼룩진 조선 시대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진정한 사관이 되기는커녕 그저 대군의 총애를 받은 여인으로 남을 뿐이다.
해령이의 최종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1화부터 16화까지의 긴 여정을 거쳐 해령이가 결국 도달하는 곳이 이림대군의 옆일 뿐이라면 나는 좀 많이 실망할 것 같다.
앞으로의 회차만이라도 아름다움과 귀여움보다는 멋짐으로 시청자를 설득하는 <신입사관 구해령>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