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학교폭력에 이어 부당해고다. 김희선 배우의 고등학생 위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앵그리맘>(2015)의 김반디 작가가 3년 만에 근로감독관이 주인공인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돌아왔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제목부터 끌리는 드라마였다. 나 역시 작년에 임금 미지급 문제로 고용노동부 신고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니까. 다행히 신고 전에 원만히 합의되어 받아야 할 임금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 경험은 사회에서 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일을 당해본 경험이 있거나, 없더라도 제대로 임금을 받고 있는지 계산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근로와 관련된 문제는 지금까지 관련 드라마가 왜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만연한 문제다. 제때, 올 것이 왔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김반디 작가의 전작 <앵그리맘>과 닮은 점이 많다. 사회문제를 품은 것부터, 판타지를 연상케 할 만큼 독특한 설정을 가진 히어로를 내세우는 것까지. <앵그리맘>에서 김반디 작가가 보여준 히어로 사용법은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앵그리맘>의 히어로는 제목 그대로 ‘앵그리맘’인 주인공, 조강자(김희선 분)다. 조강자는 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학생으로 위장해 학교에 들어간다는, 황당하면서도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딸을 고등학생 때 낳기도 했고, 아름다운 동안 외모와 신분세탁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이런 설정을 가능하게 한다. 억척스러운 엄마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인물이었으나, 딸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의 히어로 또한 제목 그대로 조장풍, 그러니까 조진갑(김동욱 분)이다. 유도선수 출신이라 싸움 실력이 뛰어나고, 체육 교사로 일하다 공무원이 되는 머리도 좋은 인물이다. 삥 좀 뜯는다는 학교의 불량 학생들을 유도 실력으로 장악해버리고, 조폭에 준하는 인물들과 다수 대 일로 붙어도 쉽게 이기는, 역시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남다른 정의감 때문에 벌써 한 차례 누명 아닌 누명을 쓰고 교직에서 물러난 뒤, 공무원이 되어 정의감을 애써 누르고 살아왔다. 하지만 “아빠가 창피하다”는 딸의 말과, 자신의 학생이었던 선우(김민규 분)의 부당해고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정의감을 불태우게 된다.
이처럼 <앵그리맘>과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모두 타이틀롤을 맡은 주인공이 중심 서사의 큰 축으로, 이들은 힘없고 빽없는 서민이지만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권력층에 맞서기를 택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주인공이 일명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류의 인물들은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작은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에 개의치 않고, 논리나 지성보다는 계략과 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전문가형 히어로 주인공이 내 목표를 위해 변호사나 검사라면 법을 어겨도 되는지, 의사라면 생명을 가벼이 여겨도 되는지 고뇌하고 갈등하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앵그리맘>에서 강자의 조력자는 강자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조폭 두목인 한공주(고수희 분)다. 위장 입학부터 시작해 여러 비합법적인 일들을 도맡아 하며 강자의 지원군이 되어준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진갑의 조력자는 자신이 선도했던 학생이자 현 흥신소의 사장인 천덕구(김경남 분)다. 해킹, 절도 등 여러 비합법적인 일들을 통해 진갑에게 유용한 정보와 증거를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력자 설정에서 눈여겨볼 것은 이들이 어둠의 세계에 종사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들이 주인공인 친구, 선생님의 일을 돕고 있기 때문에 응원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지, 오로지 이 두 인물만 놓고 보면 이들은 악의 세력과 마찬가지로 응징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9일 방영분에도 대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덕구가 진갑을 다시 만난 뒤 “선생님 아니었음, 난 지금까지 개망나니로 살았을 거다. 나 사람 만들어준 분이시다!”라고 하자, 덕구와 함께 일하는 오대리(김시은 분)가 “지금은 개망나니 아닌 줄 아나 봐.” 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주인공 대신 나쁜 일을 해주면서, 주인공이 정의를 위해서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앵그리맘>에서 강자는 처음에는 딸의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지만, 학교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 사학비리, 부실공사 등의 문제를 목도하고 결국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재벌과 정치인들을 정의구현의 타깃으로 삼게 된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자신의 학생인 선우를 도와주기 위해서 상도여객과 미리내재단을 조사하지만, 상도여객의 진짜 사장인 구대길(오대환 분) 뒤에는 조장풍과 악연으로 얽힌 재벌 양태수(이상이 분)가 있다는 점이 9일 방영분에서 공개되었다. 흔한 플롯대로 닥쳐온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진실에 다가서게 되고, 결국 큰 적을 맞닥뜨리게 되는 내용이다.
이런 구조는 거의 모든 히어로물이 취하는 구조다. 그리고 결국 이 구조 안에서 등장인물들을 운용하기 위해 앞 두 설정을 취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법을 다 지켜가면서, 윤리를 다 지켜가면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권력을 악의 세력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비전문직 서민형 히어로를 설정하고, 범법행위를 대신해줄 착하지만은 않은 인물을 조력자로 설정한 것이다.
4화까지의 감상으로,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안정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조리 있게 잘 짜인 드라마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 여럿 있지만, 앞으로 다른 인물들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근로감독관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쓰면서 기존의 획일적인 선악 구도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앵그리맘> 등 이전의 여러 드라마를 통해 검증된 안전한 구조를 답습하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히어로 드라마에서 재벌이나 정치인이 빠질 수 없는 소재인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이 강한 악의 세력을 맞닥뜨리고, 전혀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음에도 결국에는 쓰러뜨렸을 때 주는 카타르시스가 권선징악형 드라마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 악으로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이제 식상하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만 보아도 총 21작품 중 15작품에 재벌이나 정치인이 비중 있게 등장하고, 이 중 <닥터 프리즈너>, <더 뱅커>, <빅이슈>, <열혈사제>, <아름다운 세상>, <자백>, <킬잇> 등의 작품들이 재벌과 정치인을 절대 악으로 설정하고 있다. 재벌과 정치인이 악의 배후가 되는 것은 아주 흔한 소재라는 이야기다. 피해자 쪽도 마찬가지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영화 <카트>, JTBC 드라마 <송곳> 등 여러 작품에서 이미 다뤄진 부당해고를 다시 다룬다. 물론 부당해고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고, 이전의 드라마들이 해고 노동자와 변호사 혹은 노무사의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니 이번에는 근로감독관의 입장에서 색다르게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부당해고와 관련하여 새롭게 나온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전에 여러 번 쓰인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근로감독관은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다뤄지는 매우 신선한 소재다. 이왕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김에 자신도 약자이면서 같은 약자를 괴롭히고 심지어는 잘못인 줄도 모르는 서민 악당들,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성폭력 혹은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피해자 등 이전에 보지 못했던 구도를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로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근로자가 직접 매일 경험하고 있는 삶의 문제기 때문이다.
아직 방영 첫 주가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 새롭고 다양한 근로 관련 문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다. 이미 설정된 구도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새로운 소재의 신선함과 권선징악의 시원함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명작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