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뒤의 숙제

언어와 정체성의 간극

by Young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곧 정체성의 거울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이상한 한국어를 하면서 자기가 먼저 멋쩍게 웃기도 하는데

종종 그 거울이 흔들릴 때의 불안한 진동이기도 하다.


한 학생이 발표를 하기 전에 미리 속죄하듯

“저는 한국말 잘 못해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홍콩에 오래 살았고, 친구들과 학교에서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국적도 한국, 부모님 모두 한국인인… 혈통으로서는 순도 100% 한국인이다.


한국말로 발표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자신이 ‘broken’ Korean을 한다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하고

아이들이 놀릴까 싶어 이상함을 감지하면 자기가 먼저 웃어버리기도 하고

너무 잘하려다 못하면 민망하니

처음부터 ‘누가 누가 못하나 ‘인 것처럼

그리고 서로 웃기고 웃고…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은 마치 두 언어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


이중언어 환경의 아이들은 늘 선택을 강요받는다.

“집에서는 한국말 써야지.”

“학교에서는 영어가 중요해.”

이 두 목소리 사이에서 아이들은 종종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다.

그래서 교실에서 ‘틀린 문장’을 말할 때조차, 그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흔들림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두 언어를 함께 쓴다는 건, 두 세계를 함께 품는 거야.”

하지만 내 말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가 그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숙제,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

그 숙제를 아이들과 함께 품는 일, 그것이 교사로서 나의 오래된 과제다.


웃음 뒤엔 언제나 숙제가 있다.

그 숙제는 문법이 아니라, 마음의 문장을 다시 쓰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나는 한국어도, 다른 언어도 할 수 있는 나야.”라고 답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언어는 아이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집이 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3화‘축구를 놀다’와 ‘케이크를 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