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이중언어의 벽 앞에서

내 아이의 영어 콤플렉스

by Young


교육에 몸담고 있는 저이기에, 사실 아이를 처음 낳고 길렀을 때는 나름 자신만만했습니다.

‘적어도 언어 교육만큼은 흔들리지 않겠지.’

그때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어만큼은 놓치지 않게 하자.’

그것이 유아기 제 아들을 키울 때의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릴 때부터 오직 한국어만 들려주었습니다.

동화책도, 동요도, 대화도 모두 한국어였지요.

저는 그것이 곧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한국어로 아이의 사고력을 세우고, 정서를 길러주면

언젠가 아이가 커서도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가기 싫어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적응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치반에서 초등반으로 올라갔으니 선생님이 쓰시는 어휘의 수준이 높고, 문장도 더 복잡하고 빠를 수 있으니 알아듣기 힘들 수도 있다고 아이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큰 불평 없이 학교를 다니긴 했습니다. 물론 즐겁게 가지는 않았지만요.

초등반 합류 한 달 여가 지난 뒤 소풍에 제가 자원봉사 학부모로 따라가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선생님 지시와 다른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제 가슴은 서서히 조여들었습니다.

‘한국어를 잘하게 만들겠다’는 제 신념이

어쩌면 아이의 어깨를 너무 무겁게 짓누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의 교육적 신념이 아무리 단단해도

그 신념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아이 자신이라는 것을요.

언어는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었지만,

아이는 그 이전에 ‘지금 이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겁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이 깊어지던 중에

위의 고민은 고민도 아닌 폭탄이 하나 터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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