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함에 대하여

by 녀웃

삶이 궁극적으로 닿아야 할 경지가 ‘초연함’이라고 한다.


초연함이란

현실에서 도망치거나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반드시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


사람에게서 의미를 빼앗지 않고

그 사람에게

나의 중심을 맡기지도 않는 것.


초연함은

무언가를 포기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감각에서

조용히 생겨난다.


사랑이 언젠가는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불안 때문에

나 자신을 더 조이지 않아도 되는 마음.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채로

스스로를 증명하느라

소모되지 않는 태도.


초연해진다는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느끼면서도

그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기대가 흔들릴 때에도

나의 자리가 무너지지 않는 상태.


그래서 초연함은

관계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방식에 가깝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삶을 차갑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더 넓게 만든다는 것도.


어쩌면 초연함이란

삶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삶을 신뢰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붙잡지 않아도

흘러갈 것은 흘러가고,

남을 것은 남는다는

조용한 확신.


그 확신이 생긴 이후에야

삶은 비로소

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사랑이 소유가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