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이 아닌 안쪽

by 녀웃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쉽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를 이해했다고 느낀다.

말투와 표정, 선택과 결과,

드러난 몇 가지 단서만으로도 그 사람의 전부를 아는 것처럼 생각한다.


보이는 것은 빠르게 판단의 언어로 번역된다.

저 사람은 성실하다, 무례하다, 얕다, 깊다.

이름표를 붙이는 일은 간단하다.

그렇게 타인은 설명 가능한 대상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다르다.

안쪽을 향한 시선은 느리고, 종종 불편하다.


마음이 어디에서 흔들렸는지,

왜 어떤 말은 오래 남고 어떤 말은 흘러갔는지,

무엇이 나를 예민하게 하고 무엇이 나를 닫히게 하는지.

그 질문들은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바깥에 머문다.

타인을 해석하는 동안에는

자신을 해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잠시의 확신을 준다.

내가 더 옳다는 느낌,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은 작지만 분명한 안정감을 만든다.


하지만 그 시선이 오래 바깥에 머물수록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우리는 종종 바깥을 정리하면

삶도 정리될 것처럼 믿는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

누가 더 나은지 덜한지,

관계와 사람을 분류하는 데 시간을 쓴다.


그러나 삶을 바꾸는 이해는

대개 바깥에서 오지 않는다.


시선이 안쪽으로 돌아올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결을 알아차린다.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

같은 자리에서 멈추는 선택,

설명되지 않던 불편함의 이유.


그때 비로소 보인다.

고쳐야 할 곳과 지켜야 할 곳,

이미 충분한 부분과 아직 여린 부분.

타인을 보며 흘려보냈던 에너지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늘 나 자신을 보라.

타인을 판단하는 데 쓰일 수 있었던 주의와 관심은

사실 나를 알아가는 데 더 필요하다.


타인을 덜 평가하라는 말은

타인에게 관대해지라는 뜻만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자신에게 정직해지라는 뜻에 가깝다.


바깥이 아닌 안쪽.

시선이 머무는 방향이

생각의 방향을 만들고,

생각의 방향이 삶의 방향을 만든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한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15화들음으로 닿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