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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Sep 04. 2024

이토록 작고 이토록 소중한

어린이가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이 가득 '사르르 그림책방'

해리포터가 번개 치는 생일날 해그리드로부터 받았던 귀여운 생일 케이크나 영화 '마틸다' 속 초콜릿 퍼지 케이크를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림책 캐릭터를 클레이로 만들어보고 싶었던 적은?


인위적인 독후활동을 지양하는 편이지만 책을 읽고 이렇게 진짜 당기는 활동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의 재미를 배가시킨다고 본다.


독서교실을 할 때 가장 고민됐던 것도 이거다. '내가 시키는 활동들이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뭐든 재밌어야 남고 독서도, 공부도 최대한 괴롭지 않아야 좋다고 느끼는 내게 독서교실은 거대한 모순 자체였다. 왜냐면 학부모에겐 뭔가 결과물을 보여줘야 될 필요가 있어서다. 자연스레 한 줄이라도 끄적거려 보길 권하고 그걸 또 찍어서 남기는 게 번거롭고도 필요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던 것.


물론 배움의 모든 과정이 재미로만 해결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초등학생 저학년이나 미취학 어린이에게 만큼은 논술이나 독후감 같은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다. 독서가 그 자체로 재미였으면 하는 마음 탓이다.


여기 아파트 상가 한편에 자리한 작은 그림책방이 있다. 이곳은 어쩌면 내가 그리는 이상향과 비슷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냥 재밌고 재밌고 따뜻하고 따뜻한 곳! '사르르 그림책방'은 사실 책방이라기보다는 그림책 체험교실이라 해도 무방한 곳이다. 미취학 어린이를 상대로 한 수업이 주를 이룬다.


책상이 어른은 도저히 앉을 수 없는 높이다. 어린이 고객만을 위한 책상이다. 작은 소품 하나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책방 입구에 들어서면 입구를 가리고 있는 책장 한 개만 '판매용' 그림책이고 나머진 책장은 활동에 쓰이는 책들이었다. 다소 당황한 내게 책방 주인은 민망해하며 다른 그림책 전문 책방 여럿을 소개해주셨다. 그러나 내가 여기 책방을 소개하는 이유는 판매가 주를 이루는 많은 그림책방보다 체험이 주를 이루는 이 책방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서다.


사장님은 여기에 오는 어린이들보다 두어살 많은 딸을 키우고 계셨고 아이와 책으로 함께한 경험을 녹여낸 듯 보였다. 얼핏 봐도 정말 좋고 유명한 그림책들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라키비움'이라 유명한 그림책 전문잡지의 디자인을 맡아하시는 분이셨다. 어쩐지 그림책 보는 안목이 범상치 않더라니!


그림 그리거나 요리를 하기도 해서 손 씻는 곳도 마련돼 있다. 아이들이 저 스텝스툴에 올라 손 씻고 재잘대는 상상을 해본다.


판매하는 쪽 책장이 아닌 이쪽 책장에 갖고 싶은 책이 훨씬 많았다. 따스한 주인장께 책 추천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다.  


나도 아이들을 양쪽에 끼고 책을 읽어줄 때 반응이 열광적인 날이면 이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 사장님도 그런 소중한 마음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신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하는 사장님 얼굴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그림책에 진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취학 어린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이 서점엘 가서 한 번쯤 프로그램에 참여해 봤으면 좋겠다. 특히 부모가 어떻게 책을 읽어줘야 될지 잘 모르겠다거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 사장님께 살짝 비결을 여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림책을 많이 봐서 그런 걸까? 사장님은 순수하고 밝고 맑고 따스했다. 길 건너 주변 다른 독립서점까지 추천하며 "주차시간 필요하시면 혹시 더 넣어드릴까요?" 묻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아이들에게 책이 얼마나 좋은 건지 온몸으로 각인시켜 줄 것 같았다.


그림책은 서로 다른 작가들이 보내는 수많은 좋은 메시지들이다. 그런 좋은 생각들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냐의 문제는 독자 몫이기도 하지만 그 독자가 아직 어리다면 '전달자'의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본다. 그래서 읽어주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양육자가 사랑으로 읽어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살면서 알았다. 그럴 때 '사르르 그림책방'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한 번의 좋은 경험으로도 아이는 책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 기회가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arrr_picturebook


프로그램 예약

https://linktr.ee/sarrr_pictur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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