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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Aug 28. 2024

문학은 돈이 됩니다  

문학전문서점 고양 향동 '미스터 버티고' 

독립서점 주인이 쓴 칼럼을 읽다가 불쾌해진 적이 있다. 아이와 온 엄마가 책구경만 하고 안 샀다는 이유로 차림새부터 입술에 립글로스까지 '번들번들하다'며 자세하게도 묘사해 깎아내린 대목 때문이다. 


이윤을 내야 하는 서점주인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할인도 어떤 혜택도 없는 서점에서 책을 꼭 사야 할 이유 따윈 없다. 그렇게 따진다면 거기까지 간 사람이 쓴 경비든 가는 데 걸린 시간이든 이미 충분한 지불을 한 셈인데 서점에서도 그에 합당한 이득을 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 합당한 이득이란, 책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일 수도 있고 서점의 분위기가 주는 따스함도 있을 것이다. 또 희귀한 책이나 관심 있는 강좌 등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고양 향동에 있는 '미스터 버티고'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독립서점'이다. 서점은 작다면 작은 크기인데 가서 놀란 것은 어떤 서가를 보아도 그대로 빼서 사 왔을 때 소장용으로 손색없을 만큼 좋은 문학책들이 꽂혀있단 점이었다. 개중엔 중고책도 있고 독립출판 책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신간까지도 두루 갖춰져 있다. 작은 서점에서 이렇게 운영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여간 신경을 같지 않다. 


손님이 없는 시간, 책장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며 진열하고 배치를 바꾸는 주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만큼 진열된 책들은 자체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이런 정성이야말로 서점에서 책을 사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조예가 깊은 누군가가 진심으로 책을 추천하는 마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정성과 대비되는 무심한 매력의 소유자가 바로 주인장이다. 미스터 버티고 서점에 들어서면 정말 서점 이름처럼 주인이 카운터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온몸으로 '나는 손님 여러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눈길조차 안 주는 그 모습에 자꾸 말을 걸고 싶어 진다. 밀당이라면 그가 성공한 셈.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는 진짜 손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초등 고학년이 읽을만한 고전 좀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나는 주춤주춤 광범위하다 못해 맥락 없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취향도 모르는 아이의 책 추천이라니! 이건 나라도 싫어할 질문인데! 버티고 씨는 모니터 화면에 고개를 박고 있다가 음.. 하고 한참을 고민한 뒤 조심스레 이런저런 말들을 이어 나가신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란 말에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을 찾아서 건넨다. '은하철도 999'가 바로 이 책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란 설명을 곁들이며. 안 그래도 '은하철도 999'에 관심은 있었지만 영상이 너무 예전 방식이라 흥미를 잃은 아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추천이 있을까? 감사한 마음에 바로 품에 안고 '존 버닝햄'의 작품세계를 설명한 두꺼운 책도 눈길이 가서 집어 들었다. 알고 보니 절판된 책이었는데 인터넷 최저가보다도 더 싸게 주셨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존 버닝햄의 책을 읽고 또 읽었는데 그의 인생이 담긴 책을 이렇게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이럴 때 난 독립서점에 온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절대 큰 서점이나 인터넷상에선 느낄 수 없는 우연한 발견과 기쁨! 



맥주를 마시며 읽는 책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러나 걸어올 수 없는 위치에 사는 나는 이 장면을 상상만 할 뿐 현실로 만들지 못한다. 


미스터 버티고 사장 신현훈씨는 출판업계에 종사하다 책도 내고 지금은 서점을 운영하는 분이다. 그의 책 '버티고 있습니다'에 보면 그가 꿈꾸는 책방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그에게 문학이란 무엇일까? 묻지 않았지만 맥주를 함께 파는 것으로 보아 '힐링' 재질일 것이다. 내가 저녁에 쇼츠를 보며 맥주 한 잔 기울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대신 책을 읽으며 낄낄거리고 감동받는 사람이라니! 책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함께 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책방에서 술을 파는 이유는 따로 있다. 책에 써진대로라면 '작가와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서)



책방의 입구. 캠핑의자들과 책들이 놓여있어 오가는 어린이들이 잠시 앉아 책을 읽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반대편은 개울이 흐르는 예쁜 천변. 산책로다. 자동차소리도 없다.


 

지난주 교보에서 눈여겨보았던 책들이 여기서도 그대로 보인다. 신기하다. 핫한 건 누구에게나 핫해 보이나 보다. 사장님과 나의 취향 찌찌뽕.


오른쪽에 보면 도서관에서 매번 빌려보려다 실패한 '3분 철학'도 1,2,3권이 모두 있다. 사 오려다 참았다. 다음에 가야지. 


요즘 아이들에게 문학책을 읽히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재밌는데 '왜 안 읽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요즘 세상은 책보다 재밌고 자극적인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특히 문학책을 읽히고 싶은데 이유는 문학이 가장 돈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가장 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문학은 가장 쓸모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국어는 집 팔아도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문학이야말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당장은 도움도 안 되고 시간만 죽이는 것 같겠지만 차츰 그 안에 빠져들어갈 동안 사람의 인생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비문학이 못 하는 일이다. 


좋은 문학은 그 안에 인생이 담겨있다. AI가 못하는 일을 해내려면 그 '인생'이란 걸 알아야 될 텐데 문학은 우리 인간을 기계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줄 좋은 교재가 된다. 이 서점에 있는 좋은 고전들을 보노라면 내가 어렸을 때 대충 읽었던 것들, 지나쳐온 놓친 책들도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어진다. 한 줄 한 줄 아이들과 읽으면서 남의 인생을 엿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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