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 놀이동산 사파리에 간 적이 있다. 아프리카 초원처럼 열심히 꾸며놨지만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며 본 맹수들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야행성 동물임에도 '손님접대'에 동원돼 쉬지 못하거나 같은 자리를 맴돌며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들. 자유를 박탈당해 무기력한 삶은 좁혀진 활동 반경만큼 쪼그라들어있었다.
크건 작건 동물원을 혐오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저 구경하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훔치는 행위는 얼마나 야만적인지. 이렇게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 살며 동물을 관찰하는 방법이 과거 수준에 멈춘 것도 참 아이러니다.
동물원은 혐오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자연스레 '탐조'라는 단어를 듣자 끌렸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나 전선에 앉은 새들, 산책하는 강아지들까지 모든 주변 동물들 삶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당연하다.
종종 들르는커피숍이 있는데 하루는 거길 지나다 플라스틱 통에 먹이가 담겨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이름하여 '버드피딩(bird feeding)'. 그러고 보니 참새 무리가 항상 거기 진을 치고 있었는데 커피숍 앞 작은 테라스에 앉아 보노라면 비싼 디너쇼 부럽지 않았다. 작은 참새들은 날아다니며 먹이를 먹다가 내 얼굴과 마주치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의에 어긋날까 나도 갸웃. 작고 작은 몸으로 먹고살겠다며 포르르 날아드는 모습이 어찌나 짠하고 대견하던지. 새를 지켜보는 일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손가락을 횃대처럼 내밀면 촥 하고 착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내가 백설공주도 아닌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난 탐조란 세계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됐다.
그렇게 가게 된 '탐조책방'은 수원 서호공원에 붙어있다. 제법 큰 호수를 끼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대학교 캠퍼스 같단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낡아 더 운치 있었던 곳. 내가 여태껏 다녔던 독립서점과 너무도 다른 위치라 신기하고 재밌었다. 새들을 보기 이보다 더 좋은 책방위치가 있을까?
탐조책방은 2층의 한 공간을 쓰고 있었다. 이 앞쪽은 넓디 넓은 주차장. 유료지만 너무 편했기에 좋았다.
입구부터 가득한 새집들. 과사처럼 생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방이 나온다.
탐조책방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샷. 함께 간 가족 모두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찾아간 날이 추석 당일이었는데 다행히 1시부터 5시까지 문을 여신다고 하기에 시댁식구들을 총동원해서 나들이했다.(가주신 여러분, 특히 중1 시조카에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주머니를 털어 부엉이 모양 시계를 득템 한 3학년 딸과 조카는 새에 대한 관심보다 사실 아기자기한 물건에 넋이 나가 있었지만 이런 공간을 와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계를 잠깐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탐조 입문자들을 위한 코너. 내가 물어볼 것도 없이 초보가 보면 좋을 책들을 잘 보이게 전시해 두셨다.
맞은편엔 그림책, 도감, 원서 등이 가득하다.
인공새집 분양 사무소
매우 탐나는 쌍안경. 다음에 갔을 땐 쌍안경 구매를 질러 보리라.
탐조가 나의 어린이들에게 스며들길 바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진짜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랄지 자연을 바라보며 내가 치유되는 과정을 배울 수 있어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동물원처럼 내 영역으로 끌고 와 그를 내 입맛에 맞게 가두는 게 아니다. 탐조처럼 그저 그의 삶을 그대로 두되 그가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지켜보고 헤아리는 일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거다.
탐조책방에 있는 망원경으로 바깥을 관찰하는 아들.
오늘 내가 산 책들. 이제 쌍안경만 사면 되는건가.
책방에선 흥미로운 탐조활동도 함께 한다. 새를 그려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작가들과 대화도 갖는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다시 여기 와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집에 와서 찬찬히 사온 책들을 둘러보는데 참 좋은 책들을 추천해 주셨단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명함을 보니 '생태문화기획자' 라고 써졌다. 어쩐지 멋져보여 혼자 조용히 그 직함을 읽어 봤다. 앞으로 더 세상을 이롭게 하는 프로그램들이 대표님 손에서 태어날 것이다. 나도 그 곳을 채우는 한 사람이길 바란다.
오늘 산 책 '1일 1새 방구석 탐조기'를 쓴 방윤희 작가님 책날개에 있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