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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Sep 25. 2024

스릴러의 고장에서 태어난 나는

추리소설 전문서점 신촌 '미스터리 유니온'

내 입으로 말하긴 뭐 하지만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꽤 험악한 곳이다. 험준한 산맥이나 협곡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 이야기다. 살인은 보복이나 치정, 유기 같은 어마무시한 비화를 품은 곳. 종교로 치면 온갖 사이비와 비 사이비가 포화상태로 공존하는 곳. 논두렁 깡패부터 제대로 된 갱스터들까지 활개를 치던 곳.


잠깐, 절대 지역비하의 뜻 따윈 없다는 걸 아셔야 한다. 대한민국에 그런 곳이 어딘지 너무 궁금하겠지만 일단은 익명의 어떤 도시라고 해두자. 그런 도시에선 어른들끼리 나누던 썰이 뉴스 뺨치게 공포스러운 법이다. '00 유원지에 토막시체가 유기됐다더라'같은. 순간, 놀던 어린이들(나와 친구들)의 행동이 일순간 멈췄으니. 우린 그 말을 주워듣고 시체를 찾는다며 작대기 들고 유원지 탐방에 나서곤 했다. 술래잡기 대신 시체 찾기라니! 지금 생각해도 꽤 오싹한 유년시절이다.


그때 내 영혼에 찍힌 스릴러의 인장이 아직까지 선명해서일까. 나는 항상 그런 것들에 끌려왔다. (#사이코패스 아님 #살인자 아님 #변태 아님 주의) HBO의 강력한 미드나 오금저리는 태국의 귀신영화들, 고딕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가풍이라긴 뭐 하고 지역풍을 제대로 맞은 어른이 된 것이다.


아이들 키울 때도 성향은 어딜 가지 않아 책 빌릴 때 유독 그런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어주었고 자연스레 무서운 이야길 너무 무서워하면서도 즐겨 듣는 리틀 호러 마니아들로 키워냈다.


https://www.wendybook.com/book/detail/6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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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060999

https://www.wendybook.com/book/detail/170772

https://www.wendybook.com/book/detail/1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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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러라기보다는 호러가 한 방울 들어간 유머코드의 책들이지만 이 정도면 어린이들이 부담 없이 즐기기엔 적당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호러, 스릴러 같은 장르는 사람의 상상력에 기대는 면이 많다. 읽는 사람이 플롯을 따라가며 머릿속으로 많은 것들을 떠올려야 공포가 극대화된다. 그런 면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에게 이 공포란 소재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소재도 드물다.


아이들이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좀 더 촘촘하게 짜인 공포나 스릴러를 들이밀어야 했는데 첫 시작은 역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였다. 애들이 열광 수준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즐기는 편이었는데 흥미를 놓칠세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 등을 코스요리처럼 내줬다. 물론 내 작전이 항상 먹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참 자주도 찾아오는 아이들의 독서 슬럼프. 그래서 스릴러 사랑이 시들해진 틈을 타 찾아간 곳은 추리소설 전문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이었다. 주기적으로 이렇게 약을 쳐줘야 책을 보는 아이들이다. 슬프지만 세상엔 책 보다 재밌는 게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니까. 억지로 읽어라 읽어라 해서 읽게 하는 건 하수요, 이거 내가 읽는 줄도 모르게 빠져 읽게 만들어야 고수라 할 수 있다. 우린 후자로 향해 나아가야 한다. 


책장이 어두운 나무로 되어있었는데 이마저도 분위기와 참 잘 어울렸다. 좁고 세로로 긴 구조의 책방엔 작가별로 추리소설이 가득 자리 잡고 있다. 


책방이 골목에 있던 탓에 아이들과 찾기 조금 힘들었지만 그마저도 단서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 재밌었다. 아이들에게 각자 원하는 책 한 권씩 골라 사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고른 건 역시 눈에 띄는 책들이었다. 마음 같아선 재밌고 (글이 긴~) 책을 골랐으면 했지만 이렇게 서점에 올 때 아이들이 고른 걸 무시하면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무조건 서점에서의 추억은 즐겁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너그러움을 바닥부터 끌어올린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388521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애가 고른 책. 1권은 이미 읽었기에 이 책을 골랐단다. 비닐이 씌워져 있어 사자마자 얼른 뜯어 차에서 열심히 읽는 모습.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918856

첫째가 두 번째로 고른 책은 이 책이다. 안타깝게도 서점에 1권이 없어서 이 책을 추천받아 샀다. 짧은 이야기를 읽고 퀴즈를 푸는 건데 스토리가 흥미로워 큰애가 며칠째 이 책만 보면서 나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989500

나는 영국, 시골, 마녀, 중세, 저주 같은 걸 좋아한다고 말하자 사장님께서 자신 있게 추천해 주신 '피의수확'. 아직 읽는 초반인데 역시 흥미진진하다. 두꺼운 편이지만 책장이 넘어간다. 가지 단점은 밤에 혼자 읽다 자면 악몽으로 직행할 있다는 점이다. ㅋㅋ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591122

이건 아이들을 위해 미리 구입해 둔 책이다. 역시 사장님 추천인데 SF에 호러가 살짝 가미된 소설이다. 평도 좋고 오늘 우리 집에 온 중3에게 살짝 추천했는데 '아주 재밌다'는 평을 내놓았다. 반절쯤 읽었기에 빌려주고 다 읽으면 돌려달라고 했다. 중3 친구는 책 평가에 깐깐한 편인데 재밌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미스터리 유니온'에서는 심야독서회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무서운 소설을 모여 무섭게 읽는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재밌을 듯하다. 아쉽게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지난여름에 끝났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을 노려보다가 흥미로운 책으로 진행하면 신청해 볼 작정이다. 


서점에 직접 찾아가 구입하면 좋은 점은 역시 내 취향을 말하고 적절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것들 모두 대성공이어서 이번 방문은 무척 만족스럽다. 아이들이 다시 스릴러 책을 집어든 것도 참 고마운 일. 


쇼츠에 중독된 책 안 읽는 자들(특히 어린이들)이여, 미스터리 유니온으로 오시라. 전두엽을 두근거리게 할 스토리들이 가득합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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