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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연 Oct 16. 2024

세상의 아픔을 보듬는 책들

사회문제 고민하는 숙대 앞 책방 '죄책감' 

난 애들 체험학습 보낼 때마다 세상 걱정 다 짊어지는 편이다. 배가 가라앉으면 어쩌지? 터널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다리 붕괴, 숙소 화재, 하다못해 묻지마 칼부림까지.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나가곤 한다. 이런 '프로 걱정러' 엄마 탓에 애들은 잔소리폭탄을 들으며 컸다. 


"아무도 믿지 마라."
"어른이 도움을 요청하면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으니 도망가라"
"체험학습 가서 위험상황이 닥치면 선생님 지시보다 본인 판단이 우선이다" 


그렇다. 이건 모두 지난 세월 우리 사회에 있었던 참사들을 겪고 내린 결론이다. 신문사 있던 시절부터 주부로 사는 지금까지 나는 신문을 정독하며 사회를 혐오하게 됐다. 디지털 디톡스가 아니라 가끔은 뉴스 디톡스를 해야 될 지경이다. 


뉴스 디톡스가 필요한 사람은 우리 집에 또 있다. 아들은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었다.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어린이로 컸으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이, 미국에 가면 마약에 중독되고 필리핀에 가면 납치를 당하거나 멕시코에선 총 맞아 죽는 줄 안다.  


한 번은 회사 선배들을 만나 고민을 토로했더니 '어른 신문은 애들에게 너무 자극적'이라고 어린이 신문을 권했다. 맞는 말이었다. 뉴스나 다큐도 적당히 봐야지 이러다 병나겠다 싶었다. 정의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단계별로 보여주는 게 맞는 거다. 


구독하던 유튜브 뉴스 채널도 끊고 애들한테 세상의 험한 모습은 차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적당히 알려줘야 된다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무엇부터 알려줘야 될까? 세상이 잘못 돌아가는 구석이 있다면 적어도 이걸 알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될 텐데... 마음이 항상 무거웠다. 


독립책방 연재의 마지막을 책방 '죄책감'으로 정한 것은 내가 책방을 다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 있어서다. 지혜로운 사람, 세상을 바꾸는 사람, 세상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아이들이 크길 바라서다. 기자가 되려 결심했을 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작고 작은 힘으로나마 옳지 못한 것들을 들춰내 바로잡는 일을 하고 싶었다. 물론 거창하기만 했던 내 생각은 차츰 사회에 물들며 바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개미가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는 정도의 변화라 할지라도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내 아이들이 마음 편히 살다 평화롭게 노환으로 죽길 바란다. 온난화가 심해져 멸종되거나 방사능으로 암에 걸리지 않고, 전쟁으로 총 맞아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의 끝에 책방 '죄책감'이 닿아 있다. 이름이 참 무겁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름만큼 무겁지만은 않은 곳이다. 사회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책방 사장님은 성벽처럼 거대한 카운터(그렇게 폐쇄적인 카운터는 정말 처음 봤다) 뒤에 앉아 뭔가 사부작거리신다. 책방을 잘 들여다보면 사장님이 손님에 대해 궁금해하고 사실은 어떤 책을 찾는지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참 벽면과 평대에 전시된 책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독립책방에 갈 때마다 내가 공들여하는 건 이것뿐이다. 이렇게 책들을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도 고민해 본다. 인권, 페미니즘, 장애인 이야기, 사회 참사, 평화학 등 여러 가지 섹션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공포소설과 그래픽노블이 함께 한 책장에 둥지를 틀고 있던 점이다. 여쭤보니 사장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라고. 납득이 가는 건, 사회에 대한 책임감, 죄책감은 불안이나 공포란 감정과도 교묘히 맞닿아 있어서다. 


나도 마음이 혼란할 땐 더 큰 공포로 누르길 즐기기에 큰 공감이 갔다. (내가 유튜브로 가장 많이 검색하는 문장은 '공포영화 결말 포함 리뷰'다;;;) 겁보가 즐기는 공포물이라니 이해가 안 가시겠지만 그리고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난 그렇다. 공포소설 찾아 읽고 너~~~무 무서워하면서 잠 못 이루고 또 다른 공포를 찾아 사냥을 떠나는, 가학적인 공포마니아. 

 

책장을 가장한 거대한 카운터의 한 벽면. 


책방 죄책감의 입구 
애완용 동물이 아니면서 오래 산 동물들(보통 그럴 수 없으므로)의 독특한 얼굴들이 전시 중이다. 가망서사에서 펴낸 '사로잡는 얼굴들'이란 책의 일부다. 
책방 한쪽 벽에 새겨진 문구가 눈길이 간다. 




아이들과 세상 이야길 나누다 보면 참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르는 것보다 어두운 면이라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아이들에게 죄책감으로 다가가거나 공포로 자리 잡을 수는 있겠으나 어른인 내가 적절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죄책감도 공포도 아닌 책임감, 희망, 용기로 바꿔 심어줘야 된다는 건 알겠다. 


기자나 사회활동가, 국회의원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집 초등학생 어린이들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꼭 그런 직책을 가져야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틀렸다. 아들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좌절하고 미워하기보다는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 노력하고 적어도 고민하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우리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 작은 점들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 


무거운 이름과 진중한 큐레이션과는 정반대, 너무 밝고 귀여운 사장님이 매력적인 책방 '죄책감'


우리 아이들이 진짜 세상에 눈을 떠야 한다면, 그 강렬한 첫인상이 이곳이면 참 좋을 것 같다. 아이들 뇌에 각인되는 세상의 모습이 바르고 건강한 상(像)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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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께 '초등 고학년과 엄마가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책'을 추천받아 사 온 것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515229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57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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