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운전을 오래 하면 졸립다. 이런 때 옛날 부르던 노래를 부르면, 정신이 들기도 한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노래 중에 〈모모〉란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르다가 오래된 의문이 여전히 남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니스'라는 단어 때문이다. 나는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니스'라는 소리는 혹시 '미소'를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여 이 노래를 녹음해서 몇번이고 다시 돌려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조금 시일이 지나서 서점에서 악보집의 가사를 찾아보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니스'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 책 어디에도 '니스'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 그 누구도 '니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내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내 뇌리의 망각 속에 몇십 년이고 묻혀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는 멋진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옛 의문이 상기되자 마자 운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아이폰의 사파리로 검색하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니스는 그 유명한 지중해의 도시 Nice라는 사실을... 또 알게 되었다. 김만준의 노래 〈모모〉는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의 '모모'가 아니라,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라는 사실을...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는 이웃의 하밀 할아버지가 Nice에 관하여 이야기해 준다. '나는 그곳에 있다는 미모사 숲이며 종려나무들을 무척 좋아했고,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날개를 파닥인다는 흰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했다.'*
나는 김만준의 〈모모〉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모모'가 아닐 줄은 정말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노래의 처음에 나오는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다'의 노랫말이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주제와도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릴 적의 의문을 하나 해소하고 나니, 나의 뇌세포는 또다른 의문 하나도 해결해달라고 고개를 든다. 그것은 〈허바허바 사장〉이라는 간판에 얽힌 의문이다. 1970년대에 영등포역에서 여의도를 바라보면 이 간판은 〈로얄 사장〉과 함께 높은 건물 옆에 크고 길다랗게 걸려 있었다. 어릴 적에는 왜 사장님이 자기를 자랑하려고 이렇게 간판을 내거는 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 어느 순간 홀연 '사장'이 회사 '사장(社長)'을 뜻하지만은 않겠구나, '사장(寫場)'이라고 한자를 조금 달리 쓰면 사진관을 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그렇게 의문은 해소되었으니 하며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허바허바'라는 재미있는 음상도 무슨 뜻인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욕심인 줄 알지만 한번 찾아본다.
영어에서 hubba-hubba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시 병사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향해 내지르던 감탄사이고, 다른 하나는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double time, hurry up'(빨리빨리)의 의미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 단어가 주일미군을 통해 일본어에 유입되면서 ハバハバ(早く早く)라는 외래어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의 우리나라에서는 지게꾼에서부터 초등학교 아이와 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허바허바'라는 영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고 보니 왜 사진관의 이름을 〈허바허바〉라고 지었는지를 알 수 있다. ‘허바허바’는 빠른 필름 현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특히 급하게 사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구(appeal)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고 궁금함이 많은 사람에게 인터넷 세상은 가히 허바허바 알려준다.
*blog.yes24.com/yang412 처음처럼님의 블로그를 참조. 로맹 가리(출생명 : 로만 카체프)는 포스코 시니발디, 샤탕 보가트, 에밀 아자르 등 여러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1956년 샤탕 보가트의 [하늘의 뿌리], 그리고 1975년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으로 한 작가에게 한 번밖에 수여되지 않는 공쿠르상을 두 번 받았다. 로맹 가리는 1980년 의문의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의 사후 6개월 뒤 그의 유서가 발간되었다. 거기서 그는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동일인임을 밝히며, 평론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평소 그의 본명(로맹 가리)의 작품을 혹평하였던 프랑스 문학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나무위키 : [로맹 가리])
**나무위키 : [허버허버(외래어)] 참조. 이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허바허바'는 일차적으로 일본에 유입된 외래어이고, 그것이 이차적으로 한국에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도 덧붙이고 있는데 허바허바의 유래 언어가 '파푸아 토착어'라는 전거이다.
이러한 설명을 음미해보면, 제2차세계대전이 1945년에 끝나고 미군이 일본에 진주하였을 때, 진주 미군의 영어 어휘가 일본에 유입되어 ‘하바하바’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하바하바’가 이미 그 이전에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분리된 한국에 유입되어 '허바허바'라는 어휘로 쓰여졌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아마 당시(1945-1953년 기간)에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한일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허바허바 사장]의 개업년도는 1943년설, 1946년설, 1954년설, 1959년설 등 다양하다 (조선일보, 2020.3.18., 이광표, 증명사진과 허바허바). 따라서 만약 ‘허버허바’ 어휘의 주일미군 유입설이 맞다면, '허바허바'라는 단어가 1943년에 한국에서 쓰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1943년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만약 1943년설이 맞으려면, 그 전에 이 단어가 유입되었어야 하고 그렇다면, 일본에 진주한 미군 유입 외래어가 아니라, 태평양 전쟁 당시 파푸아 토착어를 일본군이 채용한 외래어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나무위키 : [모모]를 참조하면, 〈모모〉는 1978년 제1회 전일방송 대학가요제 대상곡으로 김만준의 데뷔곡이다. 김만준 작사, 박철홍 작곡으로 되어있는데, 2015년의 박철홍씨 인터뷰에 의하면, 작사도 박철홍씨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1973년 원작이고, 1977년 차경아씨가 한국어 번역을 하였다. 이러한 시기적 연접성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와 김만준의 〈모모〉가 상호 울림이 있게 되는 배경이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은 1975년 발표되어, 그 해 콩쿠르상을 수상하였고, 한국에는 1976년 번역 소개되었다. 따라서 박철홍씨가 이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읽고 노래를 만들었을 무렵, 우리나라에는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동화가 소리없이 서점가를 점령하였다. 이렇게 김만준의 〈모모〉는 프랑스 작가와 독일 작가의 작품이 상호 침투되고 반추되는 가운데 그 어렴풋한 모호함으로 인해 더욱 인기를 누리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미스터리함이 희뿌옇게 남아 더더욱 아련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긴 부제가 붙어 있으며, 주인공 '모모'는 8살인지 14살인지 모를 고아원에서 탈출한 여자 아이이다 (나무위키: [모모(소설)] 참조). 이에 반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에 나오는 '모모'는 창녀의 자식으로 부모도 모른 채 남의 손에 길러지는 14살의 남자 아이 모하메드이다. 둘의 똑같은 이름 '모모'는 어떤 느낌일까?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적 음상으로 '모모'는 '某某(모모)'로서 즉, 아무개 아무개 또는 무명씨 정도로 느껴지나, 서양 사람들의 음상으로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미하엘 엔데의 우화 『모모』의 이면에 현대 경제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온켄이다. 그는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1986)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이 작품에 ‘시간이 흐르면 가치가 감소한다’는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이론과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창한 ‘노화(老化)하는 돈’이라는 아이디어가 묘사됐다고 간파했다...
미하엘 엔데는 자신의 주요 작품들에서 현대금융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담고자 했다.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1979)가 그러했고, 1990년대 독일에서 초연된 오페라 대본 <하멜른의 죽음의 춤>(1994)과 <병 속의 악마>가 그러했다. 오페라 대본 <하멜른의 죽음의 춤>에서는 중세 독일에 유행한 하멜른의 전설을 새롭게 해석해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본질을 그려내고자 했으며, 엔데의 마지막 유작인 오페라 대본 <병 속의 악마>에서도 이익이 이익을 낳는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했다.
화폐경제시스템의 ‘유한성’과 ‘마이너스(-)’ 『부의 연금술』을 집필한 스위스 경제학자 한스 크리스토프 빈스방어는 엔데의 유작 <병 속의 악마>의 작품 테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 오페라에서 중요한 점은 악마가 든 병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팔 때 반드시 샀을 때보다 싼 값에 팔아야 한다는 설정입니다.”
‘더 비싸게’가 아니라 ‘더 싸게’ 팔아야 한다는 작품 설정에서 새로운 사회와 경제에 대한 엔데의 사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 경제가 기반으로 화폐경제시스템에 ‘유한성’과 ‘마이너스(-)’라는 발상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모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혜의 거북인 카시오페아를 따라 호라 박사를 찾아가는 모모가 거센 맞바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뒷걸음을 치자 전혀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로이 열린다는 작품 설정이 그것이다. 성장 강박증이라는 나쁜 요술에 빠져 오직 플러스(+) 경제를 향해 눈 먼 질주를 하는 삶의 방식 대신에, (금융)사회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안(開眼)과 회심(回心)을 촉구한 대목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미하엘 엔데는 경제사상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가하는 돈’의 개념을 제기한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 ‘노화하는 돈’의 철학을 제시한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 이자가 이자를 낳는 돈의 연금술을 비판한 경제학자 빈스방어와 (여성 건축가) 마르그리트 케네디는 특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엔데는 특히 저축할 수 없는 화폐를 만든 실비오 게젤의 이론에 매료됐다. 실제 실비오 게젤의 이론은 1929년 대공황 이후 독일 슈바넨키르헨과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현실화됐다. 『엔데의 유언』을 집필한 저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들 지역에서 노동증명서 형태로 발행된 대체화폐는 실제 현실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뵈르글에서 유통된 노동증명서의 경우 화폐가 유통하는 속도는 평균 12정도였고, 체납된 세금도 모두 완납됐다고 한다. 시의 세금수입의 경우 노동증명서 발행 전보다 8배 증가됐고 실업도 해소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화폐는 독일 제국은행에 의해 사용금지 법령으로 저지되고 말았다. 오늘날 지역통화운동의 혁신적인 성공사례였던 셈이랄까.
(출처 : 더퍼블릭뉴스(http://www.thepublicnews.co.kr), 고영직, 2013.8.19.)
Note:
미하엘 엔데가 그의 화폐 시스템에 대한 성찰을 우화로서 〈모모〉를 집필하였다면, '모모'는 money에서 생성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의 '모모'는 그의 이름 '모하메드'의 애칭일 터이며 그 유명한 선지자의 이름에서 나왔을 것이다. '모모'라는 이름은 두 소설에서 서로 다른 원천을 갖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현대인의 시간 강박증을 우화로 표현한 것인데, [허바허바 사장]은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업의 명칭이다. 우연하게 함께 나열되었지만 서로 정반대의 내용인 것이 또한 이채롭다. 그리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에서 프랑스어 제목의 정확한 뜻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미래의 삶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여생(餘生, 남은 삶)의 뜻이다. 남은 삶,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아직도 나의 자유 의지에 의해 선택이 가능한 남은 삶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