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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Oct 06. 2022

슘페터 앞: 기업가 이론의 선행자들

G. Campagnolo and C. Vivel (조영필 역)

Gilles Campagnolo and Christel Vivel (2012), Before Schumpeter: forerunners of the theory of the entrepreneur in 1900s German political economy – Werner Sombart, Friedrich von Wieser, Euro. J. History of Economic Thought 19:6, 908-943.    


     

      

1. 서론     


아마도 '창조적 파괴'라는 문구가 기업가의 이론에서 지배하는 정도로 경제학 분야에서 지배적인 어떤 지정 문구도 없을 것이다.*1) Joseph A. Schumpeter가 그것을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줬는지 여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또 다른 학자도 이 개념의 창시자로 식별될 수 있는데 그는 Werner Sombart이다.*2) Schumpeter가 Sombart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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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논문에서 참조하는 ’창조적 파괴‘의 독일어는 ’schoepferische Zerstoerung‘이다.

*2) Reinert(2006)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경제학 전문가의 견고한 믿음에 반하여,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는 슘페터가 아니라 Werner Sombart(1863-1941)에 의해 경제학에 도입되었다는 것을 한층 주장한다. 알다시피 그는 아마도 Nietzche로부터 가장 많이 영향받은 경제학자이었다 (Backhaus and Drechsler 2006: 56).’ 우리는 슘페터를 단지 추종자로 기술하는 주석들(Appel 1992: 259-62)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오히려 그의 선행자들의 역할을 강력하게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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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00년대 오스트리아와 독일 학계에 비슷한 배경을 가진 또 다른 저자가 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망각 속에 잘못 남겨진 Friedrich von Wieser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기업가정신에 대한 관심으로 유명하지만, 몇몇 연구(아래 적시된)를 제외하고는 좀바르트와 비저에 관한 학계의 빈 틈은 슘페터에게 주어진 관심에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후자의 사회경제학을 강조한 학자들조차도 (특히 Shionoya 1997; Ebner 2005) 어떻든 전자의 선행자들을 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Ma¨rz 1991; Streissler 1994; Chaloupek 1995) 무시했다.     


사소하지 않으면서, 중요한 탐구가 최근 기업가정신에서 갱신되었다(Arena and Dangel-Hagnauer 2002; Chiles et al. 2007, 2010). Sombart와 Wieser에 대한 사례를 다시 열어보는 것은 따라서 Schumpeter의 출처로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도 의미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기업가적 행동에 대한 훨씬 덜 알려진 연구는 Say, Schumpeter, Knight, Hayek 및 Coase 의 경제 이론과 동등한 반열에 놓여져야 하며, 또는 19세기 독일어 경제학 문헌의 틀 내에서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던 다른 저자들과 함께 다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주요 사상 흐름의 창시자들 (그의 <자본론Das Kapital>에서 혁신에 관한 장들(chapters)은 그 주제에 관한 주요 원천으로 남아있는 Karl Marx, 독일 역사학파 내에서 이러한 견해를 반복한 Wilhelm Roscher와 오스트리아 경제학파(Wieser가 일반적으로 통합되는)를 설립한 Carl Menger) 및 Karl Heinrich Rau(그의 Grundsa¨tze der Volkwirtschaftslehre는 1826년 이후에 7번 재편집됨)와 같은 성공적인 교과서 저자 또는 1855년 Lehre vom Unternehmergewinn을 저술한 훨씬 덜 알려진 Hans Karl von Mangoldt가 있다.*3) 우리가 연구하려고 선택한 저자들은 슘페터와 관련하여 흥미롭고 동시에 그런 점에서 (그리고 다른 많은 관점들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불충분하게 연구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연구가 좀바르트와 비저의 언급을 주저하면서 수행되었는데, (He'bert and Link 1982 참조) 특히 함께 언급된다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에도 그렇다.*4) 그 유감스러운 건망증에 대한 이유는 항상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텍스트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것애서부터 주류 경제학자들을 일상적인 경로 바깥으로 몰아내는 '급진적 주관주의'(Wieser)와 같은 개념을 그들이 사용한 것 등에 쌓여 있다. 또한 그들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취했다는 일부 주장은 종종 그 저자들을 의심스럽게 만든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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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treissler는 Mangoldt를 위험-프리미엄, 기업가의 임금 및 기업가의 지대의 도입자로서 관심을 유도한다 (Streissler 1989, 5장: 30-3).

*4) Reinert(2006) 등의 문헌에서는 슘페터는 한편으로 좀바르트로부터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빌려왔고, 다른 한편으로 비저로부터 영웅으로서의 기업가에 대한 관점을 빌려왔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비저나 좀바르트가 슘페터의 관점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식의 어떤 의견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비저, 좀바르트 및 슘페터가 기업가에 대한 새로 연구된 분석의 공통의 기반과 연결되는 것은 매우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갱신된 분석에 따르면, 그들의 기업가는 혁신의 새로운 개념, 거대 기업 구조, 등 및 현대 고도 자본주의 틀에서 슘페터의 경제적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도 유사하게 근거한다.

*5) 좀바르트와 비저에 대한 오랜 경시의 한 이유는 1930년대 초부터의 국가사회주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근거없는 혐의이다... (그 나쁜 명성과는 완전히 독립하여) 망각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Wieser가 더 새로운 강력한 힘의 팽창에 대항하여 독립 기업가에게 제공되는 일부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근본적인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개입주의적 입장을 취했는데, 이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인들이 맹렬하게 죄를 묻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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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행한 상황은 좀바르트와 비저 양자에게 해를 끼쳤으나, 차라리 역으로 미국 학자들이 슘페터의 출처에 대해 눈멀게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어, 슘페터의 임기응변의 기지와 엄격한 평가에 대한 그의 진정한 탐구는 Harvard에서의 명성과 미국 경제 협회 회장(1948)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따라서 슘페터 '이전'에 위치하는 좀바르트와 비저의 작품을 새롭게 읽는 것은 우리가 좀바르트 와/또는 비저가 취한 입장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주제에 대한 그들의 전제가 기업가의 중요한 견해로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기업가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평가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기업가적 과정에서 주관적인 창조적 힘으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슘페터가 도입하기 전에도 말이 되는 것이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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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실, 비저의 책은 단지 1914년과 1926년에만 출간되어, 즉 슘페터의 Theorie 초판 이후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슘페터는 Vienna University에서 비저의 학생이었다 (1906년 그곳에서 그는 법학박사가 되었다). Streissler(1981: 66)는 그의 용어가 주로 그의 선생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쓴다. 그리고 좀바르트에 관해서는 그의 1909년 작품은 그의 Der Bourgeois에 앞서 나온 슘페터의 Theorie보다 앞선다. 또한 슘페터의 사고에서 관점의 전환(기업가를 경제 발전의 핵심에 두는 것에서 동일한 기업가를 '비인간적인' 성격으로 바꾸는 것)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다른 구성원이 즉 Eugen von Boehm-Bawerk가 수행한 역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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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주석가들에 의하여 거듭 거론되는 그 지정 문구 ‘창조적 파괴’는 이제 제쳐놓고, 좀바르트와 비저의 기업가적 창의성 분석은 그 후속 지면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방법논쟁'(Methodenstreit, 다른 것들 중 다음을 참조, Bostaph 1994; Hodgson 2001; Campagnolo 2010)에 얽힌 학파들(각각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속했지만, 우리는 190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전쟁의 시대, 정치의 민족주의 시대 및 이전 독립 기업가를 압도하는 수와 규모 면에서 산업 트러스트의 거대한 증가의 시대에 권력과 리더십 문제에 관한 그들의 공통점을 논의할 것이다. 이 시대는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 간의 충돌 시대일 뿐만 아니라 또한 기업가를 위협하는 관료의 증가하는 계급의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저자들이 소규모 기업의 경쟁적 틀에서 대규모 단위의 '트러스트화한' 자본주의(Konzerne)라고 부르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장단기적 과정에 대해 합의한 방식을 지적한다. 그것은 이전의 독립 기업가정신보다 경쟁이 덜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국가 관료제와 평행하고 영향을 받았다. 당시의 많은 관찰자들은 '기업가적 본질/속성'(die Unternehmernatur)을 비난했지만, 좀바르트, 비저 및 슘페터는 그것을 자유의 상징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슘페터를 뛰어넘기 위해 슘페터를 사용'하지만 (Becker et al. 2011: 20), 여기서 우리는 '슘페터 이전으로 돌아가서' 기업가를 자본주의의 동력 단위로 두는 보다 초기의 이론을 새로 조망하기 위해 슘페터를 사용할 것이다.*7) 실제로 '후진'은 역사가의 과제이며 우리의 방법은 Blaug(1962 [1996])가 정의한 의미에서 맥락적이고 '상대주의적'이다. 우리는 출처로부터 작업하며 만약 슘페터의 잘 알려진 텍스트가 대부분 그의 영어-사용 시대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의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실제로 그것들은 여기에 있다.*8) 우리는 또한 비저의 Theorie der gesellschaftlichen Wirtschaft( 1914a, 사회 경제학으로 번역됨) 및 자주 폐기된 Das Gesetz der Macht(1926a, 권력의 법칙으로 번역됨)을 조사한다. 텍스트 가용성에 관한 상황은 좀바르트의 경우 더 나쁘다. 그의 텍스트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읽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의 1909년 논문 'Der kapitalistische Unternehmer'('자본주의 기업가')와 장편 Der Bourgeois: zur Geistesgeschichte des modernen Wirtschaftsmenschen (부르주아: 현대 경제적 대리인의 개념적 역사)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다. 이것들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실로 그 간극을 메우고자 한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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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출판물의 날짜들은 뒤섞여 있어서..., 좀바르트와 비저가 슘페터적 기업가를 위한 길을 완전히 닦지 않았는지 여부는 정말로 궁금하다...

*8) 우리는 거의 슘페터의 초기 기간만을 다룰 것이다. 슘페터의 후기 견해를 가장 잘 요약한 것은 자신의 말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7년 판의 131-4페이지에서 그에 의해 평가되듯이)일 것이다. (거의) 슘페터의 초기 텍스트가 모두 영어로 번역되어 수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Becker et al. 2011). 우리는 원본 독일어 텍스트에 대해 논의하지만 존재하는 경우 사용 가능한 영어 번역을 독자에게 참조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한다.

*9) ... Campagnolo는 거의 방문조차 하지 않은 기록 보관소, 즉 현재 오사카 시립대학(일본)에 위치한 좀바르트 도서관을 탐색했으며 1929년 좀바르트가 일본인에게 판매한 것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특별 컬렉션'에서 자료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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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슘페터의 기업가 개념과 그의 선구자들과의 관계, (2) 좀바르트와 비저의 유사점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 건설의 주춧돌로서의 기업가, (3) 슘페터, 좀바르트 및 비저 간의 차이. 표 A1과 A2는 이 문서의 프레임워크를 보여준다. 독자는 그들을 각각 섹션 2.1, 2.2 및 3.2와 관련하여 조사하기를 원할 수 있다.      


                      

2. 슘페터의 기업가 개념 : 좀비르트와 비저로 돌아가기     


텍스트들을 주의 깊게 읽고 검색하여도 슘페터가 좀바르트와 비저를 동시에 언급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왜 그럴까?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그들의 견해에서 생각했던 많은 유사성을 감안할 때 : Campagnolo and Vivel 2011 참조) 우리는 슘페터가 비저에 대해 더 우호적이었고 (거의) 좀바르트에 대해 항상 더 비판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슘페터는 좀바르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Der Moderne Kapitalismus)을 '종종 실체가 없는 광채로 전문 역사가들을 놀라게 했다'(우리가 강조함)라고 말하면서, 그 자료는 전적으로 '고물(second hand)'이라고 주장했다 (Schumpeter 1954: 816).*10) 반대로 숨페터는 비저에 대해 그의 순수 경제학과 그의 사회학에 대해 호의적으로 인용하면서, <Das Gesetz der Macht>를 엄청나게 중요한 세 가지 기획의 하나로서 Veblen의 <유한계급론(Theory of Leisure Class)>과 Pareto의 <정신과 사회(Mind and Society)>에 이어 강조한다 (Schumpeter 1954: 795). 위에 인용된 주석가들 (Shionoya 1990, 1997; Ebner 2005)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회-경제학'의 계보를 강조하는 데 정당화된다. 그러나 슘페터가 개인적으로 접촉했었던 좀바르트와 비저가 그의 기업가 개념을 크게 예고했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다 (Ma¨rz 1991: 58, 저자 강조). 실제로 Chaloupek은 '좀바르트는 혁신이 시스템의 주요 원동력이라는 슘페터의 견해 또한 공유한다'고 올바르게 평가했지만 (Chaloupek 1995: 136) '좀바르트는 항상 새로운 생산 프로세스의 도입에 대해 이야기하고 거의 새로운 제품의 도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ibid.)고 또한 강조했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바와 같이 그를 '창조적 파괴'뿐만 아니라 기업가정신에도 관련시키는 것이다. Diamond는 '슘페터에게는 새로운 창조가 먼저 오고 그 다음이 낡은 기술이 파괴된다'며, 이는 좀바르트가 창조적인 파괴를 언급한 것과는 다르다고 하며 반대 입장이다 (Diamond 2007: 176). 우리는 좀바르트의 진실이 이 두 입장 사이의 어디에 있다고 본다. 비저와 관련하여 Streissler(1994)는 증가하는 대규모 단위의 생산에 의해 독립 기업가의 파괴를 강조할 때, 숨페터는 그의 선배에게 더 많은 공을 돌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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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슘페터가 항상 좀바르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언급되어야 한다. 그는 더 이른 시기에는 좀바르트의 바로 그 동일한 작품의 세 번째 권을 검토할 때와 같이 때때로 좀 더 부드럽게 비판적이었다 (Schumpeter 1927). 전체적으로 좀바르트의 스타일은 슘페터의 눈에 비해 엄격함이 많이 부족하여, 그것은 수용하기에는 슘페터 자신이 작업이 힘든 차원이다. 슘페터도 좀바르트의 묘사가 자극적이라고 열광적으로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르크스의 분석이 더 진지하다고 (그리고 어느 정도 호감을 사기 힘들다고) 말했다. 슘페터는 이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동일한 아이디어에 대해 일생 동안 연구했다[...], 좀바르트는 인상을 기록하였다. 마르크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좀바르트는 관점을 전파하고 운명을 따르도록 내버려 둔다. 마르크스에게 답은 관심 대상이고, 좀바르트에게 그것은 질문이다'(1927: 227–8, 우리의 번역). 바로 그 관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묘사된 관료화된 자본주의가 혁신의 중심 역할에 대한 마르크스의 강조(실제로 『자본론』 13장과 22장에서 발견되는)보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좀바르트의 작품에 나타난 견해에 훨씬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특히 그의 초기 단계(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에서 좀바르트 자신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의 연구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는 여기서 우리의 주제는 아니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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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학자들조차 둘 중 하나의 관계(Schumpeter와 Sombart, 또는 Schumpeter와 Wieser)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유럽의 1900년대 '교차로'의 틀에서 세 사람 모두가 자본주의와 기업가정신에 대한 그들의 초기적이며 다소 유사한 설명을 구성한 경제학 진화의 역사적, 제도적 충동을 공유했을 때, 그 삼자 관계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 이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슘페터가 그에 따라 변화하는 상황에서 세 가지 전환점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어떻게 수정했거나 적어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조정했는지 지금 상기해 본다.     


(1) 1911a, Theorie der wirtschaftlichen Entwicklung*11)의 첫 번째 (독일어) 판에서, 거기에서 슘페터는 경제적 동학에서 기업가의 핵심 역할을 강조했다.

(2) 1920년대에 슘페터는 반자동 및 관료적 절차의 일부로도 다른 사람들이 달성할 수 있는 기업가적 기능을 도입하여 개별 기업가를 점차 '비인격화'했다. 그 중추적인 순간은 그의 Theorie(Schumpeter 1926a 및 b)*12)의 제2판과 'Unternehmer'(Schumpeter 1928a, 2011년 영어판 출간, 1928b)에 관한 에세이 그리고 'Der Unternehmer in der Volkswirtschaft von heute' (Schumpeter 1928c, 초판; 1929년에 출판되었지만 제2판을 1928d라고 한다; 영어판: 1928e)*13)에 설명되어 있다. 변화가 슘페터의 관점에 있든,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그의 인식에 있든, 또는 대규모 단위의 부상이 기업가의 기능에 얼마나 분명하게 영향을 미쳤을지 여부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으며 후속 페이지에서 신중하고 상세한 방식으로 논의된다.*14)

(3) 슘페터는 미국, 특히 하버드에서 가르쳤을 때 마침내 기업가의 경제학 이론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한 지적인 이동은 망명과 동시에 일어나, 더군다나 그가 기업가 연구의 리서치센터에 들어갔을 때로 시점을 잡을 수 있는데, (그리고 그러한 진술은 자연히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을 요구할지라도) 1920년대에 이미 잠재되어 있었다. 슘페터의 분석은 이전보다 훨씬 더 학제적이고 경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혁신 자체에 분명히 초점을 맞췄다. 다시 말해서, 슘페터는 선배들이 그린 기업가의 생생한 초기 현실 지향적인 그림에 엄격함을 부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통찰력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스타일을 책망하고 사물을 제시하는 그들의 방식에서 점차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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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11년판의 2장과 7장 참조, 이 저작은 2002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그때에도, 단지 부분적으로...)

*12) 첫 영어판은 <경제발전이론>으로 1934년에 나타났다.

*13) Becker and Knudsen 번역: <기업가>(2003과 2011: 227-60). 동일한 사람에 의해 번역된 두 번째 책 <오늘날 경제에서 기업가>는 1927년 9월의 연설에서 기원한다. 슘페터에 의한 두 개의 다른 논문들이 존재한다: 1927년의 <기업가적 기능과 노동자의 관심>과 1929년의 <기업가의 경제학과 심리학>. Becker and Knudsen만이 그것들을 언급한다 (2011:38, n. 7).

*14)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각주 6) 슘페터 사상의 관점 전환은 뵘바베르크와 관련될 수 있다. 그는 60페이지가 넘는 리뷰 논문('Eine 'dynamische' Theorie des Kapitalzinses: Schlussbemerkungen', Zeitschrift fuer Volkswirtschaft, Sozialpolitik und Verwaltung, 22: 1–62)을 출간했는데, 곧 같은 저널에서 슘페터의 답변이 이어졌다. Boehm-Bawerk는 다시 한 번 대답했다. 이 교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주제에 중요하지만, 그 경로를 탐색하고 기업가에 대한 뵘바베르크의 견해를 통합하는 것은, 그것이 자본 이론에 대한 외생적 발전을 포함하기 때문에, 독일어권 세계에서 기업가 이론의 뿌리에 대한 우리의 분석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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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다음 학자들이 보여주듯이 점진적인 방향 전환이 변화하는 시대와 일치하는 전지구적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Streissler 1981; Samuels 1982; Ma¨rz 1991; Swedberg 1991; Stolper 1994; Shionoya 1997; Becker and Knudsen; Knudsen 및 Swedberg 2009, Becker et al. 2011). 그러나 그들 모두가 보여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지금 논의할 세 가지 주요 주제와 관련하여 슘페터 이전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즉 좀바르트와 비저이다. 그 세 가지 주제는 기업가의 성격, 경제 과정에서 그 기능의 역할과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한 개념의 진화이다.      


    

2.1. 기업가, 성격 또는 기능?     


일반적으로 슘페터는 기업가를 '비인격화'하고 조작적인(operative) 기업가적 기능을 도입함에 따라 그의 <경제발전의 이론(Theory of Economic Development)>의 첫 번째와 두 번째(독일어) 판 사이에 그의 이전 견해 중 일부에서 약간 벗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 행동과 개인의 범주에 대한 슘페터의 이중 표현은 그런 식으로 다소 친숙하지만, 특히 정치학의 수준에서 (여기에서는 논의하지 않을 것이나, 슘페터가 과학적 탐구에서 베버적 ‘가치-자유’를 상찬한 것을 단순히 상기해볼 수 있다) 다양하게 해석되기는 한다. 이제 이 '이중성'은 비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며, 젊은 슘페터의 독자는 두 범주의 사람들 사이의 구별을 즉시 인식할 것이다. 그것은 ‘대중(masses)'과 '리더(leaders)'인데, 대중은 많으며, 비조직화되어 있으며, 스스로 행동할 수 없고, 리더는 그러한 대중을 통제하고 지시함으로써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

     

이 '엘리트의 이론(theory of elites)'에서 비저가 다른 곳에서 '역사의 위대한 인물'(Wieser 1926a: 37)로 정의한 '리더'는 '대담한 기술 혁신가,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지식을 가진 조직가, 안목이 있는 은행가, 무모한 투기꾼, 트러스트의 세계를 정복하는 임원(directors)'(Wieser 1914b: 327)으로부터 그들의 전체적인 위상이 떠오르는 기업가이다. 이들을 ‘지도자(Fuehrer)’이라고 하며, 이는 '대중 위에 서 있는 지도 능력을 가진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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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지도자(leader)'라는 용어는 여기에서 논의된 모든 텍스트에서 발견되는 용어인 Leiter 또는 Fuehrer에서 번역되었다 (Schumpeter의 경우 1911년보다 1926년의 경우가 훨씬 적다. 이전 섹션에서 상기한 것처럼 점차적으로 관점을 변경하여, 그러한 양상은 상당히 2차적인 주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 번역은 불가피하게 손상되어 나중에 Fuehrer라는 용어가 대부분 정치적으로 이해되게 되면서 폐기되었다. Streissler(1986)에 의해 입증된 바와 같이 비저는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 사이의 혼란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비저가 'Fuehrer'이라는 용어를 거의 강박적으로 사용한 것은 비엔나의 Schottengymnasium의 그의 유명한 기념문집 'Arma virumque cano'(Wieser 1907)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국민과 그의 지도자(Fuehrer)'로 끝나는 연설이며, 그리고 '지도자와 그의 국민'을 요구하는 청년 세력에 대한 깊은 믿음의 표현이다(Ibid.: 345). Das Gesetz der Macht의 문구는 명목상 무솔리니와 프리모 데 리베라를 기원할 뿐만 아니라 (1926a: 509) 몇 Fuehrer가 독일인을 위해 올 희망과 존경을 표시하기 때문에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정치 사건은 비저를 정치적으로 훨씬 더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 말하여진 것에 대해 어떤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Fuehrer라는 단어는 정치가 아닌 기업 및 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만 나타나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Becker and Knudsen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1928b: 260, n. 77). 그들이 한 것보다 더 명확하게 우리는 단순히 예를 들어 비저의 1926년 작품 섹션 3, Fuehrer und die Masse(1926: 65–70)에 관한 섹션 또는 Die wirthschaftliche Fuehrungsorgane und Massenorgane(1926a, 476 et sq., Die kapitalistische Unternehmung으로 시작하는)은 Fuehrerprinzip의 초기 정의로 적합한가? 그들의 명백한 사회경제적 내용을 감안할 때(Arma virumque cano에는 모두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다른 종류의 텍스트임), 대답은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부정적이다. 어휘가 다른 분야로 쉽게 옮겨갈 수 있다고 해도 - 비저가 항상 피하는 것은 아니며 위에서 말한 동정을 표하고 그 이유로 나중에 배척을 당하더라도 그 전이가 일어나지는 않아야 한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더욱이 같은 시기에 막스 베버도 당시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해 논의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용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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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리더라는 중요한 역할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중의 역할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고, 그것은 그들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대조는 슘페터 이론의 초판(독일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두 번째 판에서는 사라진다. 그러나 대중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실험할 의향이 없다', '시도할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다', '문제에 대해 생각할 힘과 여유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위해 확립한 기반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라고 일관되게 말해진다 (Schumpeter 1911c: 412–3). 이러한 유형의 '정적(static)' 개인 유형 행동은 Walras적 의미의 균형을 향해 끌리는 일상적인 비즈니스의 루틴에 잠겨 있는 변하지 않는 경제를 특징으로 한다. 노동자(layworkers), 직원, 그리고 '단순한 관리자' 또는 '임원(directors)'은 합리성이지만 창의성이 없는 '자동현상(automatism)'(Schumpeter 1926c: 62–3)과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이 '낮은 수준의 합리성'을 통해 자동화된 결정이 일어나고 가능하다. '합리적'이라는 용어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슘페터가 기업가적 역할이 잠재적으로 관료의 과업으로 축소되는 것으로 간주한 그 Theorie의 두 번째 판에서 도입되었다. '대중'과 관련해서, 그들은 욕구와 욕망의 단순한 만족(ibid.: 70), 아마도 '쾌락주의적 적응'(ibid.: 71)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반면, 관료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오늘날 경제에서 기업가와 국가> (Schumpeter가 그의 에세이의 두 번째 판에 추가한 섹션(1928d: 243–7; 1928e: 278–83))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재미있는 개념은 대중과 관료 양자는 유사하게 혁신이나 독립에 대한 어떠한 취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두 번째 유형의 개인은 '경제에서 새롭고 독립적인 행위자'(Schumpeter 1911c: 406),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오래된 것을 파괴하고 대담한 계획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기업가이다 (ibid. : 409), 그리고 그의 행동은 판단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특정 능력에 달려 있다. 기업가는 경제 과정에서 새로운 조합을 수행하고 새로움을 도입하여 불확실성을 가져온다.     


[기업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고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게 남아 있고, 여전히 다른 것들은 넓은 범위 내에서만 확인할 수 있으며, 일부는 아마도 '추측'만 될 수 있을 것이다 (슘페터 1926c: 64).     


그의 Theorie의 두 번째 판에서 슘페터는 두 종류의 위험을 발견했다. 하나는 기술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적인 것이다 (최종 실패의 경우 두 번째는 채무 불이행이라고도 한다). 많은 유형의 행위자가 실제로 위험을 감수하기 때문에 '경제적 위험'은 기업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이윤은 그 자체로 '위험 부담'을 보상하지 않는다. 기업가의 핵심은 위험한 이윤이 아니라 '행동'이다. 슘페터는 기업가를 '행동하는 사람'(Mann der Tat)으로 정의한다 (Schumpeter 1911c: 413). 행동 계획 이상으로 그리고 생산적인 조합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이윤은 그러한 계획을 보증하는 데서 나온다.   

  

그러한 구분은 이미 좀바르트와 비저에게서 나타났는데, 이들은 기업가를 '더 날카로운 지성과 더 민첩한 상상력을 가진 소수자[...] 더 열린 눈과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수자'로 간주했다 (1911c: 413). 기업가적 자질은 첫째로 '수많은 새로운 조합을 인식'하는 능력(Ibid.) 그리고 둘째로 '리더'가 되는 능력으로 먼저 설명된다. 비저는 행위자의 행동이 강박과 '자연적 통제'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자연적 통제는 Freiheitsmaechte에 대한 영어로 다소 서투른 번역인데, 자유의 힘 또는 잠재성이 더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원의와 더 정확하게 일치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 번역의 부족 또는 누락은 해로운 것으로 판명된다).     


이윤의 근원과 관련하여 비저는 기업가의 소득이 관리 또는 기타 집행 업무와 관련된 급여와 투자된 자본에 대한 대가로 받는 이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자체로 기업가적 이윤은 모든 보상에서 가장 마지막에 오는 구성 요소이다. 그 기원은 기업가정신에 대해 기업가에게 지급하는 특정 지불이며, 순이익 흐름(매출에서 모든 차변을 뺀 금액)에서 공제되며, 다른 모든 기능이 지불되고 났을 때이다. 따라서 위험 감수에 대한 일종의 보상은 아니다. 기업가적 리더십의 법적 지위에서 오는 소득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비저와 좀바르트는 슘페터에 의해 그리고 훨씬 후에는 Israel Kirzner와 같은 오스트리아인들에 의해 추종되었다. 따라서 위험 프리미엄은 여기에서 핵심이 아니며 이것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이 Menger와 함께 시작하기 위해 양심적으로 이를 제쳐놓은 이유이다 (Streissler 1989: 27).*16) 그러나 비저는 좀바르트와 달리 현대 비즈니스에 공존하는 다양한 기능을 구별하여 분업 과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두드러진 경제적 기능의 폭발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비저는 기업가적 이윤의 정의를 비즈니스 관리와 같은 다른 경제적 기능과 연결했다. 3.2절에서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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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들이 옳고 그름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들의 초점은 기업가의 중심, 즉 행동에 관한 그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위험은 부작용으로 온다. 피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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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Schumpeter는 The Theorie의 초판에서 기업가에 대한 일종의 심리학적 분석을 Sombart-Wieser 스타일로 제공했다. 나중에 그는 그것을 훼손할 것이지만 슘페터는 실제로 '의지의 수고'와 '정신적 자유'의 미덕을 계속 강조했다. 모든 행동의 근원이 있다. 강한 의지 없이는 어떤 행동도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 힘을 동기라고 하며, 사회 내에서 동기는 '이해와 권력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배양되고 훈련되고 규율되고 집단화되어야 한다' (Wieser 1914b: 19). 그들의 힘과 집중도는 인간이 자유롭게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내적 특성에 달려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여기서 통제 부족의 의미에서 가정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반면 제약은 개인의 자유에 영향을 주는 제한, 억압적인 지배의 한 형태(합법적일지라도)와 체계적으로 동의어이다. 그러나 제약은 따라서 외생적인 것으로도 이해된다.   

  

비저는 인간이 행동을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 내에서 행동할 때 통합하는 내적 제약(완전히 결정론적이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희생자일 뿐만 아니라 변화의 주체(agents)이기도 하다 (3.1절 참조). 그리고 '강력한 의지'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힘에 해당하며, 그것은 슘페터에 의해 다음 용어들로 기술되었다: '자신에게 자금을 제공할 은행가를 설득하거나 감동을 주는', '다른 생산자들을 그의 분점으로 끌어들이는' (Schumpeter 1926c: 68). 기업가들은 다른 행위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리더십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찾거나 창조하는 데 있지 않고 사회 집단에 인상을 주어 그것을 [즉, 집단]에 끌어들이는 것'(Ibid.: 67). 이것은 Theorie의 초판의 7장에서 (Backhaus에 의해 별도로 번역됨, Backhaus 2002 참조) 특히 강조되며, 점점 더 증가하는 계층구조(hierarchy)의 지배적 주제에 따라 리더의 역할은 원래 속성에서 더 멀어진다. 후자(hierarchy)의 주제는 '상위 및 종속 시스템'에서 처음 예고되었고(Schumpeter 1911c: 418) 그리고 그때 지도자의 개인(person)과 연결되었다. 그것은 비저에게서 나온 반면, 그 기능의 '비인격화'는 비엔나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멀어졌는데, 비엔나에서는 그 기능을 사회적 계층 내에서 지위를 지정하는 일반적인 단어로 'Fuehrer'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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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런 양상에 관한 주 15와 주 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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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슘페터의 기업가적 기능 및 기타 경제적 기능     


지금까지 우리는 대개 슘페터의 Theorie의 1911년판과 1926년판을 비교했다. 그것들을 좀바르트와 비저의 텍스트와 연관시키는 것은 훨씬 더 빛을 발하고 관점을 새로 고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실제로 기업가적 기능은 이전에 슘페터가 강조한 개인적 성격 분석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이전의 관심이 과연 그의 '선배'들에게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까요? 사실, 슘페터는 1928년부터 기업가의 '초인(superhuman)' 본성을 점차 경시하고*18) 그것을 '해체'했다. 여전히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등장하는 유형은 다른 유형의 행위자가 실제로 당면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처럼 더 기능적인 개체가 된다. 그의 새로운 설명에서 슘페터는 기업가를 '생산적인 서비스의 소유자와 소비자 사이의 중개자... 서로 다른 그룹의 ''생산수단 공급자들'' 사이의... 노동자와 지주 사이의 중개자'로서 보여준다 (Schumpeter 1928e: 241). Becker and Knudsen은 슘페터의 균형 분석에 대한 증가하는 관심이 그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Beckeret al. (2011: 13–5)에서, 슘페터는 Walras적 분석을 지지했기 때문에 1920년대 후반에 이 아이디어를 채택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비저의 초기 저작은 기업가가 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도 수행한다는 생각과 사실상 이미 유사하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라는 잘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계통을 따라) [Wieser 1914b: 155]).*19) '사회계급'에 대한 언급을 거부한 좀바르트와 달리, 비저는 실제로 '새로운' 계급, '산업 부르주아지의 중간 계급' 또는 '자본주의적 기업가와 화폐화된 자본주의자들'의 계급을 지칭하는 표현을 만들었다. 슘페터의 용어는 좀 더 기술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Schumpeter의 주요 업적은 그에 앞서 도출된 기업가의 현실 지향적인 그림을 엄격한 경제 분석의 프레임워크로 포함시킨 것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점을 숙고할 때 Sombart와 Wieser를 연구하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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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리는 인간유형에 대한 니체 철학의 인간유형과의 유사를 강조하기 위해 초인간superhuman의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 비록 슘페터는 결코 니체를 인용하지 않았지만, 주석가들은 그 아이디어(초인)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고 주장한다 (Backhaus and Drechsler 2006 참조).

*19) Campagnolo 2002, 2010 – part 3; Campagnolo and Lagueux 200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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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적 기능을 정의하기 전에도 숨페터는 기업가의 측면에서 '순수한 관리 업무'를 분리함으로써 '심리적 측면'을 줄였다. 관리자적 기능은 기업의 조직에서 ‘단순한 조정 지위뿐만 아니라, 통제, 대표 및 규율 유지 등의 기능’으로서 이제 보여진다 : 행정적 과업 (1928e: 240).*20) 법적으로 말하면, 관리자는 '임원'으로, 개인 기업가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경영하여 취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운영의 법적 대리인은 상품 생산 소유자이거나 수령한 돈의 채권자 및 지불해야 하는 모든 금액의 채무자일 수 있다. 기업가가 노동자의 고용주(Arbeitgeber)이기도 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노골적으로 비저의 탐구에서 뒤따르며 오늘날에도 공용어 독일어 사전에서는 Arbeitgeber를 '기업가(entrepreneur)'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번역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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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기서 번역가들이 독일어 Leiter를 영어 ‘manager’로 선택한 것은 부합되지 않는다 – 주석 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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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적 행동은 또한 슘페터가 후기 저작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발전시킨 '트러스트화된' 경제로의 또 다른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이전의 경제 리더십 개념에서 축소되었다. Becker et al. (2011: 15)는 슘페터는 기업가를 '비인격화'할 때 독일 역사학파의 영감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Schumpeter가 Sombart와 Wieser가 매우 열광했던 유형학적 접근을 경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아주 옳다. 그러나 슘페터에 대한 독일 학파의 영향은 그 '유형론적' 접근 방식에 국한되었는가? Roscher와 그의 추종자들의 견해는 여기에서 당시 독일 문헌에서 기업가 이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업가의 임금 개념(Unternehmerlohn)은 이미 Roscher의 Grundlagen der Nationaloekonomie의 195에 나타나고 (Roscher 1854: 400) Streissler는 이것이 오늘날 영어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그 단어의 기원이라고 덧붙였다 (Streissler 1989: 25). 그러나 비저의 관점이 '선행자들 없이는 결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Wieser의 이론]은 틀림없이 그 이론의 역사에서 기업가적 역할에 대한 상대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견해'임을 훨씬 더 강조하도록 이끈다 (ibid.: 22).*21) 실제로, 일반적인 범주가 비저와 좀바르트를 각각 오스트리아 학파와 독일 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설정하더라도, 그들은 실제로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분석을 공유했는데, 이는 경쟁 시장의 발전과 더 많은 경쟁으로의 전환에 평행하는 것이며, 비록 이것이 더 큰 생산자가 독립 소유주를 몰아내는 것임에도 그러하였다. 기업가적 기능은 이에 따라 등장하고 변화했으며, 이는 학계의 논쟁을 넘어서는 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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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 우리의 목적은 이 이론의 계통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그러한 견해들이 실로 가졌었던 영향을 상기하면서 그러한 문제를 떠난다. 그러한 문헌이 얼마나 만연했는지는 재인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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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숨페터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유형론을 그리는 것을 전혀 자제하지 않았다. 여전히 1928년에 그는 '오늘날 경제에서'(1928e: 246 sq.) 다양한 (4개의) '실제' 유형의 기업가를 신중하게 구별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러한 유형을 기능과 관련시켰지만 여전히 유형학적 접근 방식이다.*22) 슘페터는 또한 1928년 소사전에서 기업가Unternehmer 항목을 또한 썼고, 그는 기업가에 대한 역사적 개요로 그의 텍스트를 시작한다. 후자(기업가)는 어떻게든 사라지지만 기업가적 기능은 기업가적 역할을 정당화하는 제도적 및 역사적 상황에 내재된 행위자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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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 유형학은 다음과 같다. (1) ‘공장 소유자와 상인’, (2) ‘산업의 현대의 대장’, (3) ‘관리자(manager)’ 류, (4) ‘설립자founder(촉진자promoter)’, 종종 ‘지도자(leader)’인데, 그의 보수가 고정되지 않고 클 수 있다. 우리는 독자에게 Campagnolo and Vivel 2011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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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의 후기 저작에서 주로 더 큰 생산 단위와 관련된 기업가정신에 관심을 두면서 기업가적 활동과 제도적 구조는 더 얽히게 되고 자본주의의 진화는 새로운 제도적 구조를 촉진한다. 따라서 슘페터는 19세기에 개인 규모의 '스타트업'이 특징인 경쟁 경제와 독립적인 기업가 소유자를 효과적으로 퇴거시킨 카르텔로 구성된 '트러스트화된' 경제가 부상하는 것을 대조했다. 그리고 그것이 비저의 교훈이었다! 기업가가 이제 '거래중개자(broker)', '중개자(middleman)'(1928e: 267)로 행동했다는 사실은 '생산 및 상업적 기술의 결정적인 진보는 큰 단위를 필요로 한다'는 한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에 동일한 진화에서 파생된다 (Ibid.: 274).     


이러한 맥락에서 기업가의 기능은 부분적으로 '기계화'되고 심지어 어느 정도 관료(또는 엔지니어)에게 맡겨질 수 있기 때문에 변경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또한 부분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더 큰 산업의 부상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기술 및 상업적 진보가 큰 단위 내에서만, 말하자면, 트러스트들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 그 이유이다‘(Ibid.: 274). 슘페터의 마음에는 이 견해에 대한 대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기술, 집단 및 개인을 상대하는 데 대한 자신감,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는 기업가가 수행해야 할 몇 가지 작업이 남아 있다 (ibid.: 275). 따라서 '순수한' 기업가적 판단보다는 평판 영향과 정치적 또는 행정적 기술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업가, 선택 방식과 함께 진화하는 기업가의 본성(die Unternehmernatur)이다. 따라서 Schumpeter는 Wieser와 Sombart의 초기 유형을 사용하여 새로운 기업가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그는 또한 혁신을 핵심으로 강조하면서 그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은 다시 좀바르트와 비저의 텍스트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일치했다.       


   

3. 혁신가이자 자본주의의 초석으로서의 기업가     


Journal of Institutional Economics에서 Geoffrey Hodgson(2006)은 베르너 좀바르트의 1929년 텍스트인 Economic Theory and Economic History의 일부를 번역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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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Hodgson은 역사주의에 관한 그 자신의 초기 저작(2001)에서 자료를 취하여 편집자 소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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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바르트는 자본주의 시대를 세 시기로 나누었다. 먼저 1500년에서 1760년 사이에 지속된 '초기 자본주의'가 있었다. 이 초기 기간은 전자본주의와 '수공예' 사고방식이 특징이다. 그 뒤를 1760년부터 1914년까지 '높은' 또는 '완전한' 자본주의가 뒤따랐다. 1차 세계 대전은 국가가 선진국 경제에 더 광범위하게 개입하기 시작한 '늦은' 또는 '조직화된' 자본주의의 시작을 표시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이러한 여러 단계는 이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 경제 이론의 차이를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111쪽).     


 그런 다음 Hodgson은 (Prisching 1996)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좀바르트에게 기업가는 언제나 "자본주의자 발전의 발동기(motor)"이다 (Prisching 1996)' (Ibid.). 이것이 바로 슘페터 이전의 슘페터적 기업가, 우리가 찾고 있는 바로 그 아이디어를 특징짓는 것이 아닐까? 이 개념은 실제로 기업가적 기능이 다른 기능과 체계적으로 연결되기 전, 그리고 슘페터가 1928년(Hodgson이 소개한 Sombart의 파편 이전 해)의 텍스트에서 자신의 분석을 당대의 경제에 적용하는 것을 마치기 전에 나타난다. 따라서 이 저자들이 어떻게 수렴하고 발산했는지는 두 사람 모두 경제 발전의 이전 경제적 단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예: Schumpeter 1928e: 231). 사물을 설정하는 그들의 방식은 초기 독일 역사주의(우리가 Roscher와 관련하여 이전 섹션에서 언급한)의 상당히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시대 간에 여러 경제적 시스템(소위 Parallelismenbildung)과 연관하여 그리고자 했던 평행의 구축을 비난하기보다는 차라리, 비저와 좀바르트는 그것들을 그들의 그림에 통합했다.     


슘페터는 역사학파, 즉 좀바르트를 역사에 대해 다소 '개략적'인 것으로 간주했지만*24) 자신의 경제 이론은 역사적 기술과 관련지었다. 예를 들어 슘페터는 통계적 역사와 기업가의 '가족 역사'가 여전히 저개발되어 그것들의 활용이 억제되는 것이 결코 소환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1928e: 271). 그 틀에서, 오스트리아의 교훈은 (방법논쟁 동안 Carl Menger에 의해 지지되었고 나중에 Wieser에 의해 재발견된) 사회-역사적 사실로부터 이론을 도출할 수 없고 (예를 들어, 이력 이야기에서 도출되는 기업가정신의 이론),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고 단지 규정했다. 1920년대 이후, 슘페터가 개인 기업가에 대한 언급을 포기하고 기능 측면에서 용어를 채택했을 때, 관심은 좀바르트와 비저에 더 가까웠던 기업가에 대한 초기의 더 넓은 개념에서 기업가의 전통적인 그림 너머의 한층 발전된 관점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좀바르트와 비저는 '기업가에 대한 최초'인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후자(슘페터의 기업가)의 초기 초상화인 것이 더 진실에 가깝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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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주석 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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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좀바르트와 비저는 기업가의 '최초'인가?     


좀바르트-슘페터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가장 유용한 출처 중에 좀바르트(1909)의 Der kapitalistische Unternehmer, 특히 'Der Streit um den Begriff 'Kapitalismus'' 및 'Feststellung des Begriffes 'Kapitalismus''라는 제목의 섹션이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 '자본주의자' 및 ‘자본’이라는 단어가 (Sombart 1909: 689–93) 정의될 뿐만 아니라 (Ibid.: 693–8), 자본주의 행위자의 동기도 평가된다 ('Die kapitalistische Motivation und ihre Objektivierung' (ibid.: 695–708)). Wieser의 경우 우선 순위를 주장하는 데 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 점을 논하는 것이 더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가 실제로 특히 슘페터를 위한 틀을 설정했다고 주장한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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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는 또한 우리가 이 장에서 어떻든 도발적인 제목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 우리는 선행에 대한 반응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 실로 비저의 Theorie der gesellschaftlichen Wirtschaft는 슘페터의 저작 보다 2년 늦게 출판되었다 (이미 우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리고 비저의 Arma virumzue cano (Wieser 1907)는 일반적 리더십에 대한 사회학적 요소(특히, Spencer의 일반사회학을 참조하여)를 포함하나, 어떤 엄밀한 경제적 관점은 없다. 이제 이것이 왜 이 저작에 관한 주석(주석 15 참조)이 비저에게 지도자(ein Fuehrer)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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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난 김에 독일 학계의 경제계에서 지배적이었던 논쟁이 자본주의 논쟁이었으며 오스트리아의 전통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비저와 슘페터가 다소 관련이 있는) 경제의 핵심에는 집단적 실체가 아니라 대리인, 자유롭게 행동하고 행동의 결과를 감수(책임)하는 사적 개인: 한마디로 기업가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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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Menger의 Kollektivbegriffe에 대한 부정을 좀바르트와 막스 베버에 연계하는 것에 관하여서는 Campagnolo (2010: 181, 2011: 3부, 방법논쟁 탐구)를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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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바르트의 견해는 모든 기업가는 정복자, 조직가 및 상인의 세 가지 유형의 조합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1909년과 1913년의 그의 텍스트에 설정된 이 유형은 모든 기업가에게 적용되지만 시간 순서로 펼쳐진다. 정복자 (der Erhoberer), 그 다음 '조직가' (der Organisator 또는 '관리자') 그리고 마지막이 '상인'(der Haendler)이다. '기업가'라는 호칭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프로젝트를 달성하려는 열망과 끊임없는 의지를 나타낸다.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기업가는 결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잠재적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기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위험은 이전 섹션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행동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정복자로서의 기업가는 또한 그 자체와 그에 수반되는 위험을 위해 행동을 즐기는 플레이어와 가장 가까운 성격이다. 기업가는 그것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정복자와 플레이어 모두 신속하고 올바르게 대응해야 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명확한 선견지명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Sombart 1909: 746). 그들은 바로 '영리한 사내'이다 (Ibid. : 748).     


조직가'(Sombart 1913[1920]: 71)와 관련하여 필요한 능력은 '사람을 적성에 따라 판단하고 군중 중에서 적성이 추구하는 목표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을 한 번에 보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가는 이전의 ‘원정 지도자’에 상응하는데, 그들은 동행하는 사람들로부터 최상의 것을 얻는 방법뿐만 아니라 '협상하는 방법, 즉, 다른 사람이 그의 의사에 따라 제안을 수락하거나 특정 행동을 수행하거나 간섭을 자제하고 또 단순히 특정 주장을 추진하고 가능한 반대를 거부함으로써 성취하는 것을 결정하도록 다른 사람과 문제를 논의하는 것 또한 아는 것과 같다' (ibid.: 73, 우리의 강조). 그런 의미에서 좀바르트는 유대인과 복음주의 이주민을 높이 평가했다 (ibid.: 753-4). 이들 집단 모두는 '인간과 사물뿐만 아니라 최대한의 유용한 효과를 내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가는 압력을 받고 성공한다. 이제 그 압력은 강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최대이다. 유대인과 위그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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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Sombart가 유대인들에게 헌정한 책(Die Juden und das Wirtschaftsleben 1911)이 종종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각주가 필요하다. 그것이 반유대주의적으로 분류된 것은 먼저 그들의 편견을 정당화할 근거를 거기서 발견하는 국가사회주의자들에 의해, 그리고 다음으로 한 저명한 과학자의 견해를 인종주의에 긍정적인 특징으로 전환하는 승리한 민주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해. 양측은 두 번째 측(민주주의자들)에게는 명백하지만, 또한 나치(그들의 교리는 좀바르트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 잘 이해되었다)에 관해서도 매우 분명한, 반대되는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좀바르트를 비난하는 것을 종료했다는 것을 주의하시오. 사실 좀바르트는 이주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집단인 유대 민족을 높이 상찬했다. 1911년에 그는 미국 유대인 역사 학회의 해당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참고 전기(Lenger 1994) 또한 좀바르트의 친-유대주의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 이유를 알 수 있고 마지막으로 Franz Oppenheimer가 지속적인 영향이 1911년 텍스트에 대해 반대 효과임을 지적했을 때 오펜하이머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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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로, 비저 기업가의 설득의 개인적 심리적 힘을 염두에 두는 한편, 대규모 자본주의 기업가, 특히 그들이 (주류 경제학의 표준 경쟁 구조에 반하여) 가격 형성과 제품을 훨씬  많은 수의,  나은 품질과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능력에 발휘할  있는 영향에 매료되었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며 비저 이를 예상했다. 모든 자질에 대해 개인 기업가는   기업과 Konzerne 내에서 다양한 기업가적 기능으로 분산된다. 실제로 좀바르트, 비저 및 슘페터 사이의 유사점은 너무 많아서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할  있도록 정리 테이블을 제공한다 (Schumpeter 공통점이 포함된 부록 참조).      


    

3.2. 좀바르트와 비저 기업가적 자질에 대한 유사점     


비저와 좀바르트 모두 기업가 유형을 구축하는 근거로 인적 요소에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기업가정신의 종류를 평가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을 고려했다. 기업가적 기능에 대한 연구로 전환할 가능성을 생각하는  필요한 조건은 인류 경제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기업가에게 공통적인 사물에 대한 초기 정의에 있다.  복잡한 분석에는 위험 탐색, 일부 사람들의 역할 수행 지도, 고객 만족, 규정 도입, 주어진 환경 내에서 규범  관행 수립과 같은 개념 식별이 포함되었다. 리더/기업가는 특히 환경에 적응해야 하므로 환경을 수정하는  기여한다. 좀바르트와 비저 필요한 자질을 나열했을 뿐만 아니라 창업 기간과 방식의 특정 다양성을 결정하고 특성화했다.     


그의 Theorie der gesellschaftlichen Wirtschaft Das Gesetz der Macht에서, 비저 슘페터 나중에 크게 반향을 일으킬 개념을 제시했다. 오늘날까지 경제학의 '이단적' 조류가 혁신의 역할을 강조하고 제도의 역할을 재건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기업가적 '정신' 대한 비저 초기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적합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도덕하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고 '공산사회주적' 관점에서 다소 영감을 얻은) 그의 개인주의에 대한 옹호와 함께, 기업가정신의 정신은 당시 크게 비판을 받았다. 개인주의적 경향은 결속과 전통을 위험에 빠뜨릴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때로는 실제로 그럴 수도 있음) 이러한 고발은 오늘날까지 존재해 왔다. 19세기 , 부분적으로 그러한 비판의 결과로 미국의 록펠러와 카네기, 독일의 발터 라테나우와 베르너 지멘스는 그들의 신조(: Carnegie 1889) /또는 자서전(Carnegie 1920) 출판하려는 충동을 느꼈다. 부끄럽지 않게 자책하는  책들은 일반 여론에 대해 자기 정당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책들의 저자는 그러한 글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지만, 그것은 기업가의 주관적인 동기를 분석하기 위해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실제로 좀바르트 'Der kapitalistische Unternehmer'(1909:700– 8)에서  영향을   전체로 담는데 여기에서 그는 Carnegie Gospel of Wealth(1889, 독일어 번역: 1905), Rockefeller(1902)  Rathenau Reflexionen(1908) 고려한다.     


좀바르트, 비저 및 슘페터 공유한 다른 견해는 기업가의 개념을 기업가가 자본주의 발전의 '엔진'으로서,  , 슘페터가 말했듯이 ‘일을 완수하는’ 'Mann der Tat' 역할을 위한   Weltanschauung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사업가(businessamn)'라는 용어는 아마도 'wirtschaftender Mensch' 최고의 영어 번역일 것이다. 이는 기업가정신의 기능이 나중에 오는 거대한 트러스트에서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가 되는 독립 기업인 '사업(businesses)' 부상으로 기업가 활동이 구체화 된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논문에서 우리가 검토하는 모든 텍스트는 실제로 기업가의 독특한 도덕적 미덕,  상상력, 판단 능력, 억제할  없는 행동 의지, 변화를 추진하고 경제에 새로움(혁신) 가져오는 명확한 선견지명을 주장한다. 기업가는 결단력 있고 완고하며 의지가 강하므로 개인 환경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로 작용한다. 좀바르트 기업가의 '활력의 근원(lifeblood)' '행동하는 즐거움을 창출하고 기업가에게 행동 지향적인 내적 힘을 제공하고 기업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기에 충분한 대기업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으로 식별한다 (Sombart 1913 [1920]: 217, 섹션 'der moderne Wirtschaftsmensch' 또는 '현대 경제적 인간'). 기업가는 또한 끊임없이 움직인다:     


진정한 기업가는 결코 고요하지 않고 항상 긴장된 상태에 있는 용수철과 같은 내적 긴장 메커니즘,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난로 옆에서 쉬기 위해 진짜 고문처럼 보이게 만드는 내적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Ibid.).     


기업가는 말하자면 '본질상' 상상력이 풍부하고 혁신적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들의 현명함은 계획을 세울  그들을 구별하고 표시한다. 왜냐하면 실현되는 과정에서 장기 계획이 있어야만 사업이 이루어지고 계획 실행은 마치 하나의 공통된 의지에서 나온 것처럼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은 여기에서 핵심이며, 모든 기업 활동의 원천은 완고함이다. 비저 기업가가 비즈니스를 관리하기 위해 '기업가적 사고와 기업가적 의지'(Wieser 1926b: 349) 결합하여 경제를 '이끈다(head)' 말했다. 결국, 그들의 힘은 자신의 독특한 성격 주위에 이러한 에너지를 모은 결과와  프로젝트에서 노동자를 일하도록 설득하고 은행가가 돈을 빌려주는 것을 믿도록 설득한 결과로 온다.     


거기에 조직 능력의 본질이 있다. 사람들이 기업가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동시에 그것이 그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일임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좀바르트 '자본주의자 기업가가 갖추어야  경계(alertness), 통찰력  지성' 자질을 나열한다 (1913: 189–90). 좀바르트 이러한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경계' 기업가가 유리한 순간(고대 그리스인이 καιρός(기회)라고 부름) 포착하기 위해 빠른 계획, 간단하고 준비된 판단, 끈기 있는 사고, '무엇이 필수인지에 대한 확실한 감각' 의미한다.

    

∙'통찰'은 기업가가 '상태의 모든 세부 사항과 복잡성을 고려'하면서 서로를 즐기면서 자신의 종류를 인식하고 각각을 자질/결함에 따라 대우하기 위해 소유해야 할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식의 종류를 나타낸다.     

∙'지성'은 여기서 기업가가 발명적이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이를 ‘프로젝트’로 번역할 수 있는 자질로 이해된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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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Campagnolo and Vivel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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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바르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계속 강조했다(1913, passim).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 Schumpeter 기업가가 환경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대안 중에서 선택하는 직관적인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평행선을 밀었다. 이것은 실제로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대안 중에서만 선택하는 다른 '정적 사람' 대조적으로 역동적인 기업가의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비저 '현재 거래에서 새로운 상황을 포착하는 빠른 [기업가적] 인식'(Wieser 1914b: 324) 강조하여 위에 나열된 '도덕적 자질' 반영한다.     


훨씬 나중에 그 정의가 첫 번째 주요 연구(Kirzner 1973)에서부터 경계에 초점을 맞춘 Israel Kirzner의 기업가정신 이론을 또한 표시할 것이라는 것을 덧붙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에서 우리는 슘페터와 관련된 이전의 논쟁을 고수하므로 이제 슘페터가 좀바르트와 비저 이후에 재발견한 측면과 함께 기업가적 기능의 초기 특성화로 넘어간다.          



4. 기업가정신의 '정신'과 기업가적 기능     


4.1. 기업가는 변화의 주체이자 (자발적인) 희생자이다.     


슘페터가 언급하기 전에도 좀바르트는 기업가정신을 기술과 관련지었다: '매일 새로운 발명을 가져오고 기술 및 경제 조직에 대한 새로운 기회와 요구를 창출하며, 이는 자본주의 정신에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개발 요구를 모두 제공한다' (Sombart 1913: 308). 더 많은 성장과 함께 기술 진보(또는 기술, 두 단어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지정하지만 사용법이 합쳐짐에 따라)는 '모든 경제적 문제에 대한 기업가의 선택하는 유형들'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조직이 새로운 기술 발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성장함에 따라 더 큰 요구 사항을 충족해야 하는 기업가를 훈련시키는 것은 기술이다. 왜냐하면 새로 발명된 모든 장치는 응용 프로그램에 이전에 존재했던 것보다 더 큰 더 복잡한 하드웨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Ibid.: 307).     


따라서 기술은 기업가정신에 피드백을 주고 그 본질을 수정하고 본질적으로 합리화한다. 그런 관점에서 좀바르트는 막스 베버를 만난다.*29) 이런 점에서 슘페터는 나중에 와서 우리가 이전 섹션에서 보여주듯이 원래는 좀바르트와 비저에 있었지만 원래는 자신의 저작물(1911년 이전, 심지어 Theorie의 독일 최초의 판본)에는 없었던 아이디어를 동화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합리성은 계산의 정신(Berechnung)으로서 기존의 한계까지 확장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대리인이 더욱 의식화되고, 그러므로 기술, 특히 현대 기술의 영향 하에 더욱 합리적이 됨'(Sombart 1913: 309–10)에 따라 기술의 만연한 영향력을 향해 확장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하여 성공적인 기업가를 풍요롭게 한다. 성공은 차례로 풍요롭게 하려는 생생한 열망(솔직히 말해서 탐욕)을 강화하지만, 탐욕은 자본주의의 핵심에서 충분하지 않다. 오직 새로운 기술 진보만이 지속적인 자기 성장을 자극한다. 그것(지속적인 자기 성장)이 없는 탐욕은 나쁜 도덕의 신호일 뿐이다. 왜냐하면 도덕은 실제로 여기서 단두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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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Sombart(1909)의 논문은 Edgar Jaffe와 Weber와 함께 공동편집한 Archiv fuer Sozialwissenschaften und Sozialpolitik의 새 연재물 속에 출판되었다. 우리는 이 교재가 이 주제에 관해 슘페터의 어떤 저작보다도 이전이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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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기술적 변화가 결국 도덕을 포함한 가치 체계를 사실상 수정하고 새로운 물질에 부여된 가치(소위 물질적 가치)의 상당한 증가를 수반하는 태도를 유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Ibid. : 313). '인공 세계, 인간 발명과 불활성 물질의 산물'은 그 과정이 일어나는 '기존 세계'의 희생을 댓가로 치른 '창조적 파괴'의 결과이다. 따라서 좀바르트는 그 개념을 예고했다. 그리고 비저의 <Das Gesetz der Macht>에서 기술 변화에 반응하는 기업가는 경영 방식을 바꾸고 '봉급 및 임금 노동자의 군대'를 이끄는 발전의 바로 그 원천으로 볼 수 있다. 기업가는 사업을 조직화할 때 '발견자이자 발명가로서 행동'하고 (Wieser 1926b: 347), 그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구축한다. 그 목적을 위해 '위대한 기업가는 시대의 변화하는 요구 사항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유로운 마음과 끊임없는 삶의 의지가 필요하다.'(Ibid. : 348). 이런 식으로 Streissler(1986: 82–3)는 비저가 특히 혁신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슘페터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30) 그리고 이는 1940년대 이후 슘페터가 강조하는바, 대기업에서 일어나는 기술적 과정으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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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Streissler(1986: 90)는 또한 Wieser의 혁신 개념에 대한 Herbert Spencer의 영향을 지적한다. Elliot(1980)는 Schumpeter와 Marx 사이에 평행선을 그리고, Schumpeter의 창조적 파괴 개념이 이미 Marx의 저작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다른 관점을 채택한다.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마르크스는 자본론(13장과 22장)에서 혁신의 중심 역할을 실제로 강조했지만, 그것이 그가 개념과 슘페터의 유일한 단어를 발명했다고 추론하기에 충분한가? 그것은 적어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실, 마르크스는 (혁신, 기술 진보 및 다학문적 분석과 관련된 개념에 대해) 영향력이 있었고 우리가 여기서 연구하는 저자들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라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어쨌든 그 점은 다른 연구를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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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주요 문제는 기업가가 자신의 행동 계획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최종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성장하는 대중 실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Wieser 1914b: 165). 의도하지 않았지만 효과적인 경쟁 프로세스의 결과는 사회 제도가 반드시 원래의 기업가적 행동 계획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그들의 예기치 않은 (비자발적은 아니지만) 결과는 '수많은 개인의 협력이다. 그들 중 각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독립적이지만 각각은 소수의 다른 사람들과만 접촉한다' (Ibid. : 166). 따라서 기업가의 영향력은 초기 충동을 훨씬 넘어 기업가의 손에서 부분적으로 기여한 환경으로 사물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사회제도가 이미 '준-하이에키안'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자연발생적 질서’의 감각에서 인간 행동의 예기치 않은 산물로서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제 프로젝트에 주입된 열정은 바로 좀바르트가 '자본주의자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정신은 '두 개의 (공존하는) 영혼'을 결합함으로써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의 인상적인 발전을 이끌어냈는데, 이들 두 영혼, 즉 '기업가의 영혼과 성장하는 중산층의 핵심은 자본주의자 영혼 내에서 그들의 통합을 형성한다' (Sombart 1913: 192). 좀바르트의 1909년 논문(1909, VII: 725–39)의 한 섹션은 실제로 기업가의 정신을 핸들러(trader – 1909년: der Haendler, 1913: der Bourgeois)의 정신과 관련하여 '핵심 조합'으로서 명확히 평가한다. 이런 의미에서, 종종 조롱을 받는 '부르주아 정신'이라는 다른 단어는 본질적으로 자본 절약을 의미하는 반면, '상인 정신(trader spirit)'은 첫눈에 판단하는 것을 의미하고 명확성과 활력이 부여되고 선견지명(어느 것이 가장 잘 팔릴 시장정이 있는 상품일지 추측하기 위해) 또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창시자 Carl Menger에 의해 이러한 관점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인 'das Absatzfaehigstes'와 관련된다 (Campagnolo 2010: 366, n. 40 참조). '기업가정신'과 '부르주아 영혼'의 합류는 마침내 모두 계산과 활동, 역동성과 시장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직관을 구현한다.     


그러나 기질은 기업가적 활동에 충분하지 않다. 모든 부르주아가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정확하고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ibid.: 196). 따라서 기업가정신의 특수성을 더 잘 파악하려면 '부르주아'가 기업가로 바뀌지 않을 때 무엇이 빠져 있는지 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예를 들어, 피렌체, 제노바, 롬바르디아, 스코틀랜드 또는 유대인 은행가(1913[1920]: 126)는 좀바르트가 경계심의 질에 중점을 두었을 때 좀바르트에 의해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기업가로 실제로 보여졌다. 은행가들이 구축한 정보 출처의 네트워크가 그들에게 런던, 파리 등과 같은 유럽의 주요 도시와 다른 교환 장소의 다양한 기존 조건을 신속하게 알 수 있게 해준 것은 사실이다 (Bagehot의 표현에 따르면 북부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로부터 이름을 딴 ‘롬바르드 거리’가 나중에 영국 은행의 유명한 중심지가 되었으며 대부분의 유럽 도시에는 종종 마을의 유대인 지역 또는 그 마을의 게토ghetto에 위치한 '은행 거리'가 있었다).    

 

돈에 대한 취향(어떤 의미에서 탐욕의 긍정적인 측면)이 기업가를 이끌기 위해 등장했으며, 수리 능력이 향상되고 검약 습관이 깊게 유지되어 장부를 세심하게 관리하고 안전하고 건전한 회계 규칙을 만들었다 (Sombart 1913: 123). 마지막으로, '공정 거래'라는 자본주의적 기업 윤리는 일종의 '계약과 계약에 대한 충실도로 만들어진 도덕'(Ibid. : 1)으로 나타나는 반면 종교적인 요소는 (다시, 특히 유대인과 위그노의 경우에) 배버의 관점에서와 같이 좀바르트에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좀바르트는 그것을 조금 다르게 보았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사업의 합리화.

(2) 거액의 저축을 하려는 의지.

(3) 비즈니스 윤리, 그리고 결국에는 수리에 대한 습관과 애호.     

따라서 기업가적 행동은 '경제적 행위의 합리화'였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관습적인 종교 관습의 결과보다 더 많은 지출과 수입 사이에 합리적인 관계를 설정한다' (ibid.: 128). 기업가들은 (부르주아처럼) 자발적으로 돈을 저축하지만, 강요를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탐욕'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여기서 종교와의 관계는 예를 들어 예정론에 대한 믿음과 베버의 저작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에 유리한 행동과의 사이의 연결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      



4.2. 기업가적 정신과 기업가적 기능의 유형     


이제 위에 표시된 요소에서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하면서 여기에서 연구한 저자에게 나타나는 기업가적 정신의 유형을 넘어서서 살펴보겠다. 이제 그들의 작업에서 몇 가지 명백한 허점을 강조할 것이다. 첫째, 좀바르트는 혁신적 정신을 명시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추론에서 투자 라인을 적어도 부분적으로 놓쳤고 비저가 보다 일관된 구조를 제시했지만 위험 프리미엄을 포함하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그들의 실수조차도 기업가에 대한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들이 구축하고 이후에 참조한 개념적 프레임과 일치한다. 또한 슘페터가 나중에 자신의 저작을 통해 그들의 저작을 관통하는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온 자신의 길을 잘라낸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세 명의 저자 모두 기업가의 유형과 덕목이 서로 다르지만 특별히 주의할 가치가 있는 유형과 미덕을 구축했다.*31) 기업가들도 주위에 남자들을 모으기 전에, 사실 군장, 지주, 성직자, 정치가들은 이미 그렇게 했고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지만 기업가들은 같은 종류의 도덕적 자질/미덕을 가진 신참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보였다. 특정 기업가적 행동의 유형은 역사적 설명만큼 규범적 설명처럼 기능한다 (Ekelund 1970). 군장, 지주, 성직자, 정치가 또는 기업가를 연구하든/말든 간에, 사람들은 그들의 자질에서 시작하여 시간 내에 존재하고 그리고/또는 일어날 일만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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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를 통해 우리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적하기 위해 부록, 즉 표 A1과 A2를 그릴 수 있었다. Campagnolo and Vivel(2011)도 참조하시오. 표 A2에서 표의 회색 셀은 실제로 분기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실제로 Sombart, Wieser 및 Schumpeter에 따라 기업가의 일종의 펜 초상화 모음으로 끝난다 (마르크스, Rau 또는 Roscher에 대해 달리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슘페터가 그 문제에 대해 좀바르트와 마르크스에 대해 잘 말한 것처럼 각 저자는 자신의 이론과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자본의 논리에서 피착취자와 함께 착취자 – 좀바르트에서 인간은 자본보다 우선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본질, 즉 좀바르트의 비교적 부수적인 것' (Schumpeter 1927: 238, 우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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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바르트, 비저 및 슘페터는 기업가적 활동 자체가 역사를 통해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음을, 즉 여러 인간유형에 경제적 합리성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입증했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틀은 '초인적인' 자질이 어떤 식으로든 성취를 이룬 혁신가와 관련이 있다는 니체의 견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32) 좀바르트는 그 성격이 기업 형태를 가져오는 방법을 분석했다. 비저는 자본주의의 동학이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순환에 대한 아이디어도 거기에서 나왔다. 기업가정신이 진화함에 따라 내부 도덕적 메커니즘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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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주석 2와 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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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같은 종류의 사람이 다른 기능(기업가, 금융 투기꾼 또는 산업 임원)을 수행할 수 있다면, 자본주의와 함께 분업이 성장하고 다양한 단계에서 새로운 기업가적 행동을 가져옴에 따라 기업가적 기능이 '원시적' 형태의 사업에서 자본주의의 전성기 (좀바르트의 Hochkapitalismus)까지의 모든 역사적 틀에 스며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좀바르트가 전쟁의 정복자, 지주, 교회나 국가 관리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가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기업가적 행동 및 기능 유형은 예를 들어 똑똑한 조직 패턴 및 리더와 함께 프로젝트를 달성하라는 요구와 같은 자본주의 벤처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어떻게 경제적 기능이 현대 기업 내에서 자율적이 되는가?     


사실 세 명의 저자 (Weber가 여기에 추가될 수 있음) 모두 기업 규모, 노동 분업 및 관료제의 경이적인 증가를 논의하기 위해 경제 기능을 분리했다. 좀바르트(1913)의 저작은 훨씬 더 큰 의미에서 '기업'(사업)의 정의를 유도하는 기업가 유형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는데, 왜냐하면 ‘그 실행이 많은 사람들을 단일 의지로 움직이는 지속된 협력을 요구하는 장기 계획의 어떤 실현이기 때문이다' (Sombart 1913[1920]: 71, 우리의 강조). 좀바르트는 기업가의 '원시적' 스타일과 '현대적' 스타일의 활동을 구분했다. 비저는 매우 유사하게 반영했으며 (Mitchell 1917; Roche-Agussol 1929, 1930) 슘페터는 최근 문헌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그 뒤를 따랐는데, 그를 관련시키는 동일한 양상은 그 '연상의' 오스트리아인들과 더 밀접하게 관련시켰다 (Gloria-Palermo 2002).     


따라서 좀바르트, 비저 및 슘페터 사이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들이 기업가라고 생각하는 준-동일한 자질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말하자면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가들은 전사와 해적, 지주(landlords)와 시골신사(squires), 예언자와 성직자에 이어 오랫동안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기업가들조차 (명백하거나 숨겨진 방식으로) 다양한 강제를 받는다 (Sombart 1913[1920]: 117). 가장 인상적이지 않은 다양한 유형의 강제는 좀바르트와 비저가 특히 국가 관료제 내에서, 특히 비저가 프로파일링한 새롭고 둔하고 낮은 유형의 피고용인 직업을 지적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고 동시에 가장 최근의 유형인데, 잠재적으로 기업가적 정신보다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관료는 비록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모든 기계를 구현하기 때문이다.*33) 따라서 이미 제시된 원시적 유형에 투기자, 상인 및 수공예자(또는 '장인')이라는 세 가지 현대적 형태가 추가되어 '기업 형태'라는 레이블이 지정되어야 한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부과된 제약 이상으로, 그들은 모두 내적인 형태의 강박, 즉 설득의 힘을 사용한다. 현대 비즈니스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 핵심은 외부 제약을 대체하고 증명의 부담을 배달 시간으로 연기한다. 그러나 '현대적'이든 아니든 관료제의 등장으로 효율성 증명의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 당국에 속하며, 이는 행동에 편향을 가져올 수 있고 실제로 자유로운 개인 기업가에게는 암울한 관점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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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Weber가 국가를 합법적인 폭력의 유일한 사용자로서 정의한 것은 그러한 역설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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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하게, '투기꾼'으로 알려진 유형은 기업가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은 예를 들어 기업가의 재정을 개선함으로써 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좀바르트와 달리 비저는 '수요와 공급 관계를 개선하는 방식에 의해 어떤 것을 기여하는 것은 결코 [그들의] 의도가 아니다'(1914b: 364)라는 점에서 투기꾼이 본질적으로 기업가와 구별된다고 믿었다. '투기적 기업가'는 적절한 창의적 노력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며, 투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목표 즉 주어진 사업(기업)의 긍정적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투기적(확실치 않은speculative) 행위는 '그 사업의 정신'을 이룬다. 좀바르트와 비저 (그리고 슘페터)는 또한 기업가를 일과 관련하여 업계의 리더로 볼 뿐만 아니라 소비 패턴(나중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광고주와 사업가가 알게 되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리더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자의 사업개시는 모험에 대한 눈에 띄게 두드러진 취향을 지닌 미래에 대한 자유로운 투기이다.     


이것이 바로 좀바르트가 (약탈, 농업, 정신적, 행정적 관행 이후) ‘사업'의 최종적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해 결정적인) 형태로서 산업적 기업(공장들과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고위험 투기)을 입증하는 이유이다. 그 사업의 리더는 상품을 생산하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장인'(Handwerker)이다. 좀바르트는 더 나은 번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영어의 ’manufacturer' 그리고 프랑스어의 ‘favricant'라 하는 것을 기술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한다 (1913[1920]: 132). 따라서 좀바르트는 그러한 사업개시의 설립자와 임원을 특별한 유형의 자본가로 간주하는데 그의 힘은 '동기 부여의 용어로, 제약 또는 공포를 대체하는' 희망에 달려 있다 (1913[1920]: 120). 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자본주의자) 기업이 확장되고, 상인은 소기업(장인형)의 점진적인 확장으로 인해 또는 상품 생산 분야에 상인이 스며드는 결과로 기업가가 된다 (1913[1920]: 122).     


비저는 자신의 유형과 용어로 '투기꾼'과 '촉진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34) 이는 기업가가 반드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종류의 유용한 기업가적 기능과 함께 그들의 성공에 대한 보장을 확실히 제공한다는 점 때문이다. 좀바르트와 비저는 미래가 대규모 회사에 속한다는 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활동을 가장 잘 분할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저는 '이상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통한 경제 기능의 분할 과정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좀바르트와 차별화했다. 아마도 이것이 슘페터가 비저를 더 긍정적으로 판단한 이유일 것이다. 종종 좀바르트와 비저의 텍스트 사이의 차이점은 실제로 미미하지만 슘페터는 스타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공하기 위해 정확히 분기된 지점에 개입했다. 예를 들면 비저는 좀바르트보다 더 많이 장인정신을 제쳐놓았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기업의 형태는 자본주의자 성장의 보다 초기 과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슘페터는 대규모 생산 단위와 부상하는 관료제 사이의 친족 관계를 강조하면서 적합하게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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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일어는 ’Gruend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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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내부 구조(별도의 기업가적 기능이 있는)가 전체 화폐 경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조직으로 정의할 때 (Wieser 1914b: 323), Wieser는 Unternehmung 활동(가장 큰 의미에서 사업의)의 일반적 경향의 예견을 가졌는데, 이는 큰 단위(산업 경제학) 대 더 작은 설립(일반적으로 'Sonderbetrieb'으로 지정되는 장인의 상점)을 향하여 연동된다. 비저는 그의 연구에서 그러한 '개별'(1인) 설립을 폐기함으로써 명시적으로 끝맺었다.*35) 그는 새로운 유형의 다중주체 생산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 다시 한번, 그 측면은 원래 슘페터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가 하버드에서 기업가적 학습의 연구 센터에서 일할 때 '대형 단위'를 분석하는 더 엄격한 틀에 동화되어 삽입되었다. 실제로 개인 기업가라는 초기 개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의 경제 관리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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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어 번역 ‘individual establishments’는 Sonder가 ‘particular’를 의미한다는 것을 태만하는데, 따라서, 비저가 독립 소기업이 종종 개인적 행위로 한정된다는 것을 의도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들은 specific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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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저는 관리자, 임원, 동료, 주주와 같은 새로운 조직 또는 트러스트의 다양한 경제적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간단히 말해서, 좀바르트의 기업가적 기능 유형론은 위태로운 활동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제공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비저는 대기업의 부상을 고려함으로써 그 유형론을 넘어섰으며, 마침내 슘페터는 전체 틀에 엄격함을 더해 중개자로서의 기업가의 가장 독창적인 측면을 확고하게 확립했지만, 또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시대가 실제로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그림의 시야를 어떻든 놓치고 있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공통의 토양에서 성장했지만, 각 저자의 스타일과 관점을 발전시킨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번성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슘페터는 의심할 바 없이 최후의 결정판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좀바르트와 비저는 각자가 그(슘페터)의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회고되어 나타난다.      


    

5. 결론     


비저와 좀바르트는 기업가와 기업가가 비즈니스에서 수행하는 기능에 대한 강력하고 정확한 정의와 유형을 설정했다. 사실, 그들은 때때로 비판적이거나 찬사를 받는 그들의 동료인 슘페터에게 그 제창자로서 널리 인정하는 기업가에 대한 현대 이론의 길을 닦았다. 비저와 좀바르트는 망각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다.     

비저는 좀바르트가 제공한 것 이상으로 더 큰 이해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자 기업가정신의 발전에 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이 페이지들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듯이 좀바르트와의 연결이 가장 관련이 있다. 후자(좀바르트)는 현대 기업가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역사적 유형의 '리더'의 유추로 시작되었지만 비저는 기업가적 기능이 비즈니스 형태의 진화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제도적 구조가 경제활동의 형태를 결정한다. 이것이 슘페터가 따라야 하는 방식이다. 비저는 대부분 기업 규모의 진화를 고려한다. 각 증가는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점차적으로 법적 소유권에 대한 참조가 되는 원래 기업가적 힘의 더 깊은 해체를 의미한다.*36) 같은 시대에 사상을 발전시킨 사회주의자들이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는 것이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러한 근거에 근거한다고 덧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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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덧붙여 말하자면, 이것이 또한 비저가 제도주의에 가장 가까운 오스트리아 경제학자로 보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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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와 같이 더 큰 생산 단위 내에서 기업가적 기능은 소유권 및 관리와 같은 기능에서 점차적으로 분리된다. 즉, 각각 (1) 지도자가 소유자로서 무제한의 권한을 가질 때, (2) 지도자의 권한이 위임받은 권한의 조건에 의해 제한되어 자신의 주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기업의 이론은 대리인 이론으로 바뀌며, 주식회사는 두 종류의 리더십(소유주와 관리자)을 결합하는 반면 기업가는 '비인격화'된다 (Wieser 1914b: 326–30 및 Schumpeter 1928: passim). 슘페터는 그 진화에 대해 경고했지만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했다. 나중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및 민주주의〉에서 슘페터는 특히 대규모 생산 단위의 '트러스트화된' 경제가 기업가가 말하자면 허공에서 녹는 것을 보는지 여부에 대한 이슈에서 그 견해에 특히 맞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가에 대한 동기 부여의 세 가지 원천은 실제로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 '사적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과 의지'; (2) '정복 의지: 싸우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성공의 열매가 아니라 성공 자체를 위해 성공하려는 충동'; (3) '창조하는 기쁨, 일을 끝내는 기쁨, 또는 단순히 자신의 에너지와 독창성을 발휘하는 기쁨'(Schumpeter 1926c: 71). 한편 개별 기업가를 특징짓는 기업가정신'은 대기업이나 국가 관료 내 각 계급으로 확산됐다. 기업가는 이제 단지 사업자 소유자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도 차례로 자본주의적 기업에 참여할 수 있다. 분업의 증가와 생산의 복잡성 증가로 인해 기업가적 기능은 분리되고 기업가적 특수성은 결국 거의 사라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원래의 기업가는 그의 유형이 정의되고 기업가적 행동과 관리적 행동이 구별된 후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점근적으로) 실제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좀바르트와 비저는 선배들이 하는 무언가를 했었다. 그들은 미래를 암시했다. 그러나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독재정권에 빠지면서 개입주의 정부의 대표적인 국가 리더십으로 가장 원시적인 '독재적 리더십'에 힘을 실어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람들은 구식 기업가들에게 시대는 지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비엔나에서 '그 시절은 끝났어'라고 말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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