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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Oct 11. 2022

슘페터의 경제학체계와 사상

강명규

강명규 (1983), 슘페터의 경제학체계와 사상, 경제논집, 제22권 제4호, pp. 453-474.




I. 서론


454/ ... 슘페터의 평생의 학문적 관심영역은 순수경제이론과 자본주의체제론과 경제학사의 세 분야에 걸쳐 있음을 간취할 수 있다. (주4: M. Bronfenbrenner (1982), Schumpeter's Contribution to the Study of Comparative Economic Systems, in Schumpeterian Economics, ed. by H. Frisch, p. 95.)


455/ 슘페터는 『경제발전의 이론』 첫머리에서 「사회사상은 하나의 통일적 현상이다. 이 커다란 흐름 속에서 경제적 사실을 억지로 적출해 낸다는 것은 연구자의 질서를 세워가는 수완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경제적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추상이며, 이는 현실을 사고상 재현하는 기술적 필요에서 부득이 행하게 되는 수많은 추상 중 최초의 것이다. 어떤 사실도 그 밑바닥의 근원까지 완전히 또는 순수히 경제적인 것은 없다.」고 말함으로써 경제이론의 추상성과 사회현상의 통일성을 명시했을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기법상 추상적 이론분석의 불가피성과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적인 사회사상가라고 하면 흔히 추상적 경제이론을 포기하거나 이에 비판적 입장으로 변신해 버리기 일쑤인데 슘페터가 양자 간의 모순 없이 체계를 형성한 비밀은 무엇인가?...



II. 정태적 균형이론-파라다임의 계승


... 시장경제의 제도적 유형에 있어서 인구·욕망·자원·기술 등의 여건이 일정하다면 모든 재화의 가격과 수량에 관한 확정적인 균형치가 존재하고 또 이같은 균형치의 체계(system)를 성립시키는 경향이 현실적으로도 작용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 슘페터의 확신이다.


457/ 이같은 자동조정적 성질을 가진 경제체계에 기업가에 의한 기술혁신이 발생하여 경제가 동태적으로 발전하고 그 발전과정에서 균형이 파괴되고 혁신이 발생하여 경기가 순환되는 메카니즘을 분석한 『경기순환론』에 있어서도 이 순환운동의 시발점을 어디까지나 균형 또는 「균형의 근방」에 둠으로써 균형→혁신에 의한 「균형파괴 →혁신의 효과소멸」에 의한 새로운 균형상태 형성이라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슘페터는 정태적 균형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혁신에 의한 동태적 발전과정을 내포하고 있는 경기순환의 모형에 있어서도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비경제적 요인에 의한 설명방법을 일체 배제하고 순수한 경제적 요인의 자체적 운동에 의해 야기되는 경제적 현상으로서 파악하려는 균형론적 방법의 일관성을 고수하였다.


458/ ... 『사회과학의 과거와 장래』(1915)에서 이론적인 근대사회과학의 탄생과 그 발전을 자연법을 모태로 전개하면서 특히 19세기의 역사주의와의 대결을 거쳐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진전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는 입장을 볼 때, ... 『경제분석의 역사』를 경제사상사와 엄격히 구별하려고 했던 의도나... 등을 미루어 볼 때, 슘페터체계에 있어서 균형이론을 중심으로 한 이론경제학이 보편과학으로서 확신되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슘페터와 케인즈가 탄생한 1883년은 경제학사상 오스트리아학파와 독일 역사학파 사이의 방법논쟁을 일으킨 멩거의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의 방법에 관한 연구』가 발간된 해였다. 경제학의 연구에 이론적 접근이 주냐 역사적 접근이 주냐 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불모의 논쟁이었고 그 결과 이론적 연구의 독자성을 주장한 오스트리아학파에게 판정승이 돌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단아 슘페터가 활동하기 시작한 1910년대까지도 독일 경제학계에서는 여전히 역사학파, 제도학파의 세력이 강력해서 순수이론의 연구는 미미한 상태였다...


459/ ... 슘페터는... 이론경제학은 철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같은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단정하고, (주12: 『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일역) 제5부 제1장 참조.) 경제현상 중 정밀한 취급이 허용되는 영역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정학적 교환이론을 선정하여 가격·가치·화폐에 관한 제문제가 그 대상이며 그 추구하는 바는 이들 소여의 경제적 수량들 사이의 상호의존관계의 해명수단으로서의 균형이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주13: 슘페터가 멩거계통의 뵘·바베르크(Boehm-Bawerk)의 문하에서 생장한 오스트리아학파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치귀속이론을 제외하면 오늘날 그를 오스트리아학파로 분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이 왈라스류의 일반균형이론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강명규, 「신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사상의 계보」, 『경제사학』, 제4호, 1980.)



III. 동태적 발전이론-개방체계


그러면 슘페터는 순수이론과 순수하지 않은 이론을 어떻게 소화하여 거대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나? 그는 『경제분석의 역사』의 도처에서... 분석기술과 비전(vision)을 구분하여 전자에 못지 않게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사회의 경제상태에 관한 모든 포괄적 『이론』은 두 가지의 상호 보완적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별개의 요소로 되어 있다. 첫째는 그 사회상태의 근본적 특징에 관한... 이론가의 관점이 있다. 이것을 이론가의 비전이라고 하자. 둘째는 이론가의 기술이 있다. 이것은 자기의 비전을 개념화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명제 또는 『이론』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용구이다.」 (주14: "Science and Ideology," American Economic Review, March 1949.) 라고 하여 비전과 분석용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슘페터는 비전을 분석적 노력에 소재를 제공하는 「과학 이전의 인식행위(a prescientific cognitive act)」라고 정의하고 있다...


460/ 그러면 왈라스적 일반균형이론의 순수모형에서 시발한 슘페터가 창출해 낸 비전은 무엇인가? 그 대표적인 것이 혁신(innovation)이론임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혁신론의 비전이 투시해 낸 지평선에는, 첫째 경제발전이론과 경기순환이론 같은 동학적 차원의 경제문제뿐만이 아니라, 둘째로는 자본주의론·사회주의론 같은 역사적 분석과 사회학적 분석까지 포괄하는 체제론적 차원의 문제도 가시권을 넓혀 사정권내에 들게 하고 있다.


슘페터의 순수경제학적 과제는 그 경제발전의 비전을 개념화하여 이론모형을 구축함에 있지 경제과정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우선은 그 논리적 생성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있었다...


461/ ... 이 비전은 혁신기업가의 창조파괴적인 혁신활동이 야기시키는 불균형화과정과 비혁신기업가의 이에 대한 수동적인 적응활동에 의한 정태화내지 균형화과정이라는 이면적인 과정으로서 진행하는 비연속적 발전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 경제과정의 본질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또 지도자의 선도적 행동을 기축으로 해서 전개되는 사회발전이라는 사회발전 일반에 관한 그의 비전의 경제영역에의 적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경제주체의 특수한 행동유형이라고 하는 사회학적 요소를 자본주의라고 하는 역사적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초점을 맞춘 매력있는 비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슘페터의 이같은 사회학적인 분석은 실은 그가 독일 역사학파를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그로부터 배운 절반이론적이며 절반역사적인 제도론적인 고찰, 즉 제도화된 사실에 관한 이론적이며 동시에 역사적이기도 한 분석의 성격인 것이다. (주16: 이와 같은 성격은 "Gustav von Schmoller und die Probleme von heute," Schomollers Jahrbuch, Vol. L, 1926에 잘 노출되어 있다.) 앞서도 지적한 경제학연구에서 이론적 접근과 역사적 접근의 우열을 둘러싼 방법논쟁의 종점에 쌍방의 학통 속에서 베버(Max Weber)와 슘페터라는 위대한 두 사람의 이단이 나타나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방법론적 주장을 함으로써 이 논쟁의 종막을 고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즉 베버가 역사가의 입장에서 이론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이론과 역사의 종합적 사회과학체계를 시도했듯이 슘페터는 이론가의 입장에서 이같은 접근을 시도한 사회과학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에서 정밀이론이란 어떤 가설에 입각하여 경제수량간의 상호의존관계를 해명하는 균형이론임을 명시하고 있음은 전기한 바와 같다. 따라서 정밀한 순수경제이론은 정학에 있어서만 가능하고 여타의 제문제는 모두 「동학」에 속하는 것으로 우선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 결과 종래 경제학에서 다루어져 온 많은 문제들이 순수이론의 「여건」으로 취급되어 이론경제학에서 배제되고 경제이론은 단순히 제수량간의 운동법칙을 해명하는 「교환의 논리학」으로 전환되며 잔여의 모든 문제는 이른바 「동학」의 영역으로 넘김으로써 순수이론의 철저한 정화작업을 관철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학이론의 정화에 의해 제거된 문제군에 관해서 슘페터는 전저(『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말미의 「이론경제학의 발전가능성」(제5부 제5장)에서 아래와 같은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 모든 것은 동학의 대상이 되는데 그 첫째의 과제는 정학체계에서 배제된 경제사상 중 자본형성·자본이자·기업가이윤·경기순환 등이며 이것들은 정학이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의 동학적 문제군은 정학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새로운 계기 내지 전제를 도입함으로써 이를 확대하여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제사실을 포함시키고 있다. 즉 「경제상의 대변동과 비교적 장기간」, 「세계시장을 둘러 싼 대투쟁」, 「사회계급의 존재 및 생성의 경제적 측면」, 「정학이 설명하는 이외의 수많은 종류의 가격형성」, 「기타의 사회적·윤리적·국민적인 제 영향」 등이 그것이다.


462/ 이같은 항목들을 보면 거기에는 경기변동·경제발전·제국주의·사회계급·독점=트러스트의 가격형성·국민정신·인간행동의 동기부여양식으로서의 가치체계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간취할  있다. 이들 문제군에는 통상적 경제학의 범위를 벗어난 경제사회학에 속하는 제문제가 포함되며 슘페터 이미 초기단계의 동학적 과제 속에 경제사회학적 고찰을 예정했고 이같은 연구를 실천해갔던 것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위에 열거한 동학적 문제군의 거의 전부가 「경제발전 일반」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것을 투시하고 있었다. 따라서 슘페터의 동학적 경제이론의 핵심은 일차적으로는 경제발전의 이론에 집중되었던 것이며 이를 위한 비전이 형성되어 있었다.


슘페터의 발전이론의 특색은 시장기구의 순수이론에 기업가행동=혁신에 관한 새 가설을 도입함으로써 동태적 경쟁경제의 작용을 정식화하려는 데 있었다. 이리하여 여타의 변동이론이 경제변동을 여건의 변화 내지 체계외적 변화에 의해 유발된 과정으로 보고 이들 요인의 해명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하여 슘페터는 기업가를 주축으로 하는 발전메카니즘의 내재적 요인을 분석하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발전메카니즘의 분석에 의해 정태조건에서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기업이윤·자본·신용·이자 및 경기순환 같은 제현상이 표출되고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기업가혁신에 입각한 경제의 자생적 발전과정에 있어서 기업가의 혁신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자본과 신용의 역할, 이것이 성공되었을 경우 기업가의 수중에 들어가는 기업가이윤, 그 파생적 현상으로서의 이자, 그리고 혁신발생의 군생성과 비연속성에 의한 경기순환의 발생 등 모든 발전과정에 수반되는 제요소와 그 귀결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IV. 역사적 동학이론의 체계


463/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를 단순한 생산적 관리체계 내지 소유·분배의 경제체계로서 뿐만이 아니라 부르죠아적인 인간유형이나 생활양식으로 이룩된 전체적 문화체계로서 파악하려 한다면, 설령 자본주의질서의 경제적 측면만을 문제삼는 경우라 하더라도 베버의 말대로 그 분석은 협의의 「경제적」현상 이외에 「경제에 관계되는 현상」과 「경제적으로 제약된 현상」까지 포섭하여야 되기 때문에 (주18: Max Weber, Gesamelte Aufsaetze zur Wissenschaftslehre, 1922.) 결국은 문화적 사실에까지 파급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슘페터체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순수이론분석에서 여건의 설정은 일반적으로 분석의 편의상 부득이 행하게 되는 것으로서 순수정학이론은 인구·욕망·기술·사회제도 같은 것을 여건으로 삼고 이론적 분석은 이 점에 도달되면 정지된다...


... 슘페터는 경제기구를 운영하는 경제주체로부터 그 활력을 끌어내는 동기, 이윤원리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가치체계, 희소한 인재인 기업가계층의 보충과 배분, 계급간의 이동과 지도자(기업가)의 사회적 선택·도태의 방식 등을 둘러싼 제도적 제요인 등 이 모두를 여기에 관련되는 것으로 간주하여 고찰 범위에 넣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교란원인의 이론 또는 여건이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주19: J.S. Mill,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with Some of Their Applications to Social Philosophy, 1848, Book Ⅰ.) 이에 의해 비로소 경제과정과 사회적 과정의 관련을 분석적으로 기술하고 양자의 통합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464/ ... 『경기순환론』에서 슘페터는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시간에 있어서의 경제변동이기 때문에 궁극의 목적은... 단순환 공황이나 순환 또는 파동이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의 경제과정에 관한 추론된 (이념적으로 명백히 된) 역사이며, 이에 대해서 이론은 약간의 용구와 도식을, 통계는 단순히 자료의 일부를 제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주21: Business Cycles: A Theoretical, Historical and Statistical Analsis of Capitalist Process, 1939, Vol.Ⅰ, p. 320.)고 말함으로써 자본주의체제의 경제과정분석에 있어서조차 이론의 한계를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물론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될 대목은 슘페터체계에서 자본주의분석이 단순한 역사적 분석만이 아닌, 이같은 역사적 시간상의 경제변동을 「이론적으로 개념화된 역사」로서 파악하려 함으로써 역사적 분석과 이론적 분석의 접합을 시도했지 전자를 위해 후자를 포기하는 입장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V. 자본주의의 운명-체제변혁의 내재적 조건


466/ ... 슘페터가 자본주의라고 할 때는 단순히 시장기구나 사유재산제나 신용창출기구 같은 경제제도의 장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제도나 계급구조에서 사고방식, 가치체계, 생활태도에까지 이르는 하나의 문명이었던 것이다...


468/ ... 슘페터... 는 사회주의화를 야기시키는 요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고 있다.

자본주의가 극한적으로 발전할 때 (1) 혁신이 일상화되고 자동화되어 조직화된 결과로 발전은 이른바 관료기구의 전문가가 전담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혁신을 담당하는 기업가의 기능과 그 사회적 지위가 상실된다. (2) 합리성이 진전되기 때문에 도덕이나 규율, 관습, 제도의 면에서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전자본주의적 요소가 소멸된다. (3) 자본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지식계급이 발전한다. (4)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무력해지고 평등화·사회보장·정부개입·여가 같은 것을 선호하는 사고가 강화된다. 이상이 자본주의의 자기붕괴를 가져오고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는 비경제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470/ ... 그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하나의 포괄적인 문명이지 경제적 장치가 아니다...



VI. 결어


472/ 정책변수를 분석모델에 대해 외생화시켜서 나타내는 것이 정책론이나 실천론의 입장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사회경제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을 시도했기 때문에 이 입장에서 볼 때 사회는 그 자체의 모멘텀에 의해 움직이고 따라서 정책이나 실천조차 사회모델 속에 내생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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