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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각의 링

카카오톡 바둑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바둑을 두지 않은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나는 바둑TV가 제일 재미있다. 하지만 우리집 TV로는 바둑 채널을 볼 수가 없다. 그것은 집사람이 교육정책상 공영 채널 외 타채널을 시청할 수 없도록 아무런 금전지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몇년만 더 기다리면 막내도 대학을 가니, 그때는 마음 놓고 바둑 채널도 볼 수 있게 되려니 하였다.


올 가을 벌초 다녀오는데 사촌동생이 알려주었다. BTV라는 앱이 있는데 요금제에 따라선 TV 시청을 공짜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역시나 가능하였다. 앱을 설치한 후 틈틈이 바둑TV를 보고 있는데, 프로가 바둑을 해설해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견물생심이라, 자꾸 남들 바둑 두는 것을 보니, 나도 두고 싶어져, 몸이 근질거린다.


우연한 기회에, 카카오톡 바둑앱을 설치하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장기는 둘 만하다고 생각하였지만, 바둑은 핸드폰으로 두기에는 SIZE가 아무래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왠 걸 꽤나 둘 만하였다. 참 디자인적으로 잘도 만들었다. 처음에 카카오톡 바둑 들어가면 10급 수준의 바둑 프로그램과 대결하라고 한다. 일종의 테스트인데 그걸 거치면 9급인가를 인정해 준다.


그런데 몇판 두다 보니 내 실력을 제대로 찾으려고 하면 너무나 많이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참에 설정에 인위적으로 자기 급수를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자기의 희망 급수를 설정하려면, 골드라는 것이 6개가 있어야 한다. 앱 시작할 때, 처음에 골드를 6개 주는데, 설정 기능을 모르고 먼저 바둑을 두다가 골드 하나를 소진한 터라 아차! 싶었다. 그러나 골드를 하나 채우려면 골드를 사기 위해 쌈지돈을 털어야 한다. 결국 돈으로 급수를 사느니, 차라리 실력으로 바둑을 둬서 급수를 올리기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그후 무슨 노동처럼 9급에서부터 계속 바둑을 두어 승급을 하게 되었다.


2주간 계속 두니 6단까지 올라왔다. 약 70판 둬서 9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끝에 개가를 올린 것이다. 카카오바둑 최고급수는 7단이다. 7단까지 왜 올리지 않았는가? 두어보니, 역시 6단 부터는 상대가 만만치 않아 급수를 올리기 쉽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상대할 고단자 풀(Pool)이 아직 카톡 바둑에선 많지 않아, 대국신청을 아무리 해도 대국 성사가 잘 안되어 허탕치곤 한다. 답답해서 안 들어가던 오로바둑에 들어가 기보를 보고 있는데, 오히려 이곳에선 대국신청이 많이 온다. 가끔씩 상대해주다 보니 얼떨결에 10년 전에도 못 올렸던 7단이 되고 말았다.


카카오바둑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대국에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시간 규칙이다. 7분에 30초 3회이다. 7분이라면 짧은 시간이지만, 오로 7단들이 통상 제안하는 5분 에 20초 3회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왜 고수들이란 사람들이 바둑에 시간을 들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즉물적으로 뚝딱 두는 바둑을 자꾸 두어서 무엇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짧게 생각하고서도 7단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기초가 단단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2주라는 단기간내 9급부터 6단까지, 다양한 실력의 사람들과 바둑을 두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소위 내가 하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엄청나게 깊이있는 바둑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왠만한 정석과 행마는 다 알고 있었다. 실력의 차이는 대체 무엇으로 인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대충 모양으로 두는 느슨함과 한 수 한 수에 이유를 부여하는 엄밀함의 정도 차이일 것이다. 그것은 대세관과 사활에 대한 수읽기의 차이이다.


그밖에는 그리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 모든 바둑 팬은 다 같은 바둑팬이고, 프로의 해설을 들으면 누구라도 그정도는 이해할 수준은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프로의 바둑에 대해 비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고수와 하수간의 실력차이는 외견상 그리 크지 않았다. 카카오톡 바둑에서 비록 승부가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운인지? 또, 실력이 있다면, 그것이 어느 정도의 차이인지? 대국하는 순간에 그 누가 제대로 알 수 있으랴!


다만 또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겉모습만으론 또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도... 그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정도의 내공을 닦아왔는지 쉽게 알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게 아닐까? 표시나지 않는 얼굴을 들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모여서 웃고 떠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퍽으나 다행스럽게도...


2015.12.02 사이버오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