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각의 링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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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서적란에 [경제학자의 생각법] 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경제학을 테마로 대학을 다녔지만, 경제학적 사고방법이란 것이 무엇인지 도시 잘 모른다. 어떻게 그렇게 세상일을 가로축 세로축 찾아 놓고, 최적균형상태라는 것을 도출하는 것인지?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해서, '경제학'과 '생각법'이 함께 있는 '경제학자의 생각법'은 내눈에 확 뜨였다.


퇴근길에 전철역 앞에 서점이 있어, 그 책을 사러갔다. 비소설 신간에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도 함께 꽂혀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도 바둑책을 많이 봐서 굳이 이러한 책은 사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안봐도 내용을 훤히 다 안다, 또는 알겠다 거나,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한번 훑어보자는 심경으로 참새가 방앗간 구경하듯이, 책을 한번 꺼내 본다.


처음 펼친 부분이 바로 그 잉창치배 1회 대회 결승 장면이었다. 내가 이 것과 관련된 글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박치문의 관전기도 있고, 또 다른 기고가의 관전기도 있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또 있겠나, 그런데, 나는 또 이 책을 집어들고 그 부분을 보는 순간, 또 그 벅찬 환희와 감동의 현장 속으로 들어선다.

"이대로 끌려 다니다 끝날 것인가. 머릿속에서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돌을 던지고 편하게 쉬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는 사실 그 5국이 꽤나 평온하게 진행된 것으로 기억한다. 150수 언저리에서 끝난 바둑... 그리고 그 배경에는 중원 어딘가에서의 조훈현의 한 수, 그것이 이후의 모든 것을 결정해버린, 그러한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집중, 집중......, 나는 고요한 생각의 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타자가 보기에 당연했던 그 순간이, 본인에게는 얼마나 엄청난 자기 자신과의 투쟁의 결실이었는지, 그 육성의 감동은 또다시 나를 그 감격 속으로 추억 속으로 여행하게 한다.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돌아오는 전차길에서 나는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마저 다 읽었다. 그러고 보니, 바둑이 바로 경제이다. 가장 작은 것을 투자해서, 가장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것, 이게 바로 경제가 추구하는 합리적 효율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 양자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여, 최고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최적균형상태이다. 그 균형상태의 상황이란 것이 한 두 차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2015.07.04, 사이버오로 게재)



20쪽~: 이대로 끌려다니다 끝날 것인가, 머릿속에서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돌을 던지고 편하게 쉬라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집중, 집중......, 나는 고요한 생각의 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저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 것이다.


23쪽~: 바둑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한 수 한 수마다 목숨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는 곳, 바로 바둑판 위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 해결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근성만 있으면 된다...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포괄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해결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일 수는 없다... 혹은 양보와 타협을 하거나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목표로 옮겨가는 것 역시 일종의 해결책이다...

... 스스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바둑이 내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문제는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실수도 기회도 모두 내가 만든다. 그만큼 승리는 짜릿하고 패배는 아프다. 하지만 그만큼 더 성장한다.

삶은 그 자체로 시련이다. 오로지 생각하는 힘만이 그 시련을 의미있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30쪽: 역사를 보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믿고 수용한 자들이 아니라 의심하며 질문한 자들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본 자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33쪽: 바둑 기사에게 자신만의 '류'는 일종의 자아다. 바둑을 어떤 식으로 놓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35쪽~: "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에게 답을 주겠느냐. 그 답은 네 스스로 찾아라."...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상의 작은 선택마저도 남들의 생각을 물으며 눈치를 보아야 한다.

나는 진짜 행복은 단단한 자아에서 온다고 믿는다.


38쪽~: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끈질긴 탐구심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른 생각'은 그냥 떠오르지 않는다.

창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나 문제나 결핍 등에 예민한 사람이 한다... 창의력의 실체는... 의문이 생기면 '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에 있는지도 모른다.

"왜?"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때다.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집중하여 생각해야 한다.


54쪽~: 생각은 행동이고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다.

생각은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 원칙과 도덕이 쌓이고 쌓여 습관처럼 몸에 배여야 언젠가 큰 선택을 할 때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1쪽: "답을 주는 건 스승이 아니야. 그냥 길을 터주고 지켜봐주는 게 스승이지."


64쪽~: 우리는 서로 감정표현이 없었다. 녀석이 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며 내 얼굴을 살피는 것만 해도 대단한 축하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속마음이야 어떠하든 창호와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나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창호는 한두 시간 바둑알을 만지다 잠자리에 들었다. 창호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벅찬 날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는 고통과 기쁨이 동시에 찾아든 매우 힘든 날이었다.


79쪽: 이길 수 있다면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85쪽: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것, 꿈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영토확장일 것이다.

아직도 정복해야할 영토는 무한히 남아있다.


87쪽~: 흙탕물에서 뒤엉켜 싸워보니 짜릿했다. 마치 권투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이종격투기를 하는 것 같았다.

패배의 아픔에 절대로 무뎌지지 않는 투쟁정신, 어떻게 보면 이것이 계속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훗날 정상에서 내려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있었기에 나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94쪽~: 반집승은 창호가 발견한 나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새로운 '류'란 이기는 '류'다. 그것은 상대방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허점을 파고들면서 탄생한다.


101쪽~: 나는 고수가 갖춰야 할 싸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를 강력한 경쟁자로 인정한다면 최선을 다해 나를 격파해주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


104쪽~: 승부의 첫째 조건을 뭐니 뭐니 해도 기백이다. 표정도 자세도 행동도 자신만만해야 한다.

상대방이 그의 바둑을 두듯 나도 내 바둑을 두면 되는 것이 아닌가

고바야시와의 대국은 지독한 수읽기의 연속으로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지만, 나는 그 긴장의 순간들을 나 자신을 믿으며 견뎌냈다.

겉으로는 고요해보이지만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승부.

자신감은 든든한 배경, 탄탄한 실력, 멋진 외모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일종의 자기애, 최면이기도 하다... 자신감은 이렇게 백화점에서 간단하게 사올 수도 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감을 기를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시험과 테스트에 도전하는 것, 수없이 면접을 보는 것,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 낯선 일에 도전하는 것, 더 어려운 업무를 수행하는 것 등. 이런 경험을 반복해야만 더 노련해지고 영리해진다...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수없이 져야 한다. 따라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117쪽: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다.


118쪽~: '반외팔목'이라는 말이 있다...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불공평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다 똑같다. 누구나 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 벽을 뛰어넘어 높이 올라간다. 더 이상 누구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 당당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다 가졌다가 다 잃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한탄하고 절망한다면 승부는 거기에서 끝난다. 그러나 계속 게임을 할 의지만 있다면 승부는 계속된다.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없다며 괴로워할지 몰라도 판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다. 그러니 아직은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152쪽~: 썩은 사과로 주스를 만들면 그 주스는 '썩은 사과 주스'다... 수읽기를 방해하는 건 욕심이다.


167쪽: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시간제한이라는 압박 속에서 많은 일을 성취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의 과제들을 수없이 치르다 보면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지, 데드라인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바둑은 결정을 못하고 초읽기 시간을 넘기는 것보다는 차선의 수라도 놓는 것이 낫다고 가르친다.


174쪽~: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프로 기사들이 승부사로서 다소 공격적인 성향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품성이 좋은 이유는 어려서부터 복기를 통해 꾸준히 자아성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에 올라서기까지 수많은 천재들에게 짓밟혀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 안에 그런 어슬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77쪽: 내가 전혀 몰랐던 것,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상대방을 통해 알게 된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경험이다. 생각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계기에 의해 사고의 틀이 와장창 깨지면서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잠시 혼란은 느끼게 되지만, 그것을 잘 소화하고 나면 더 높은 차원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이면, 이처럼 머릿 속에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열린 마음이 우선이다... 경쟁과 미움만 앞세우면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더 질문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182쪽~: 기보를... 놓아보고 분석하는 행위는... 이런 아이디어가 있었구나... 또 다른 이유는 실수를 찾기 위해서다.

그날 둔 바둑은 현재의 내 실력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잘못된 게 있으면 지금 고치고 넘어가야 한다.


187쪽: 복기는 극복하고 흘려보내는 의식이다. 오늘 바둑을 망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둔 돌은 무를 수가 없다.


220쪽: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선생님의 '레거시'다. 선생님이 나에게 남겨주신 유산, 바둑에 대한 사랑과 그 곧고 깊은 정신세계를 기억할 뿐이다.


246쪽: "나이 마흔에 바둑을 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이 끝이었다. 바둑은 슬픈 드라마이다."


248쪽: "나의 두뇌는 50이 넘어 더 명민해졌다. 판을 짜는 안목은 바다처럼 넓어졌고, 수를 읽는 능력은 계산기처럼 정교해졌다. 두고 봐라. 내 지적 능력은 앞으로도 황야를 달리는 들소처럼 거침없이 발전할 것이다."


253쪽: 오직 산을 오르는 데에만 집중하다보면 이상하다 싶을 만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등산을 통해 날마다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모든 잡념을 비우는 습관이 바둑에도 일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260쪽: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은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그냥 멍하게 있어도 좋다. 다른 아무것도 없이 온전히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정적의 시간이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263쪽~: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고독할수록 자유롭고 고독할수록 강하다... 우리는 더 많이 혼자 있고 더 많이 외로워야 한다.


(2015. 07. 04)



감상:

나는 성장기 내내 그의 대국과 관전기를 보면서 자랐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다시 강자의 기운을 받는 기분이다. 오늘 또 재독하면서 <반외팔목>을 깨닫는다. 우리는 여전히 8집을 더 갖고 있다. 게임을 할 의지만 있다면, 승부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