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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Oct 27. 2022

초하한계 - 중국장기 상치

조영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장기를 처음 보게 될 때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우리나라 장기의 왕(장군)은 초왕과 한왕인데, 이는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이 천하를 다툰 초한전을 모사한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초한전이 일어난 곳인 중국의 장기 상치에서는 왕(장군)의 기물이름이 고작 장(將)과 수(帥) 입니다.* 즉 구체적인 왕이라기 보다는 그냥 일반명사화 한 것이지요.


*왕이 장군으로 다운그레이드 된 것은 북주의 무제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는 장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신하들이 장기를 두면서 왕을 쉽게 죽이는 것이 보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제는 장기말의 왕을 장군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장기와 중국 상치와의 연관성에 대해 의심이 들 무렵, 저는 상치의 장기판을 가르는 그 강물이 그냥 단순한 강물이 아니라, 거기에 초하한계(楚河漢界)라는 글자가 씌여져 있는 강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즉 초와 한 이라는 두 글자를 통해 무언가 두 나라의 장기가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말입니다. 한국장기에서는 왕(장군)의 기물이름에 그것이 남아 있는데, 중국상치에서는 장기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다음 제가 할 일은 그렇다면, 이 초하한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개의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중국 하남성 옛 북송시대의 수도개봉시에서 서안쪽으로 가다가 황하주변에 싱양(滎陽)시가 있다. 이 시 북쪽 광무진(廣武鎭)이라는 곳에  한패2왕성(漢覇2王城)이라 불리는 유적지가 있다. 즉 한(漢)나라의 유방(劉邦)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대치하여 천하를 다투던 곳이다. 지금은 이 곳이 문화유적지가 되였는데 황하 물에 파여 무너질 위기에 처하였다. 우리들의 장기판에 양 쪽 말의 붉고 푸르게 쓰인 초한(楚漢)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세월에 따라  황하의 강물줄기가  원래는 동서로  흘러갔는데 지금은 남북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때문에 유방의 성벽이 큰 물 줄기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산사태가 자주 일어난다.

지난11월2일부터 12월8일 사이에 지방 주민들이 본 바에 의하면 220m나 산사태가 일어나고 아주 심할 때는 하루에 26m까지 떨어져 나간다. 이 한 왕성의 서쪽은 이미 황하 물결에 떨어져 나가 9m만 남았다. 앞으로 이러한 속도라면 얼마 안가서 황하의 물결이 유방의 성을 통째로 무너트릴 것이다. 그리고 동쪽에 800m거리에 있는 항우의 성도 보존하기가 어려워 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초한 한계(楚漢限界) 라는 유적지를 계속  지키고 보존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2003.12.10 신화사)
참조: www.daduchina.com

河南省的滎陽市是眾所周知的中國象棋之都。象棋棋盤上的「楚河」、「漢界」就在該市的廣武山上。「楚河漢界」這個名稱,據傳始於「楚漢相爭」。西元前二○四年,劉邦和項羽兩軍在此對壘。西元前二○三年,劉邦憑著豐富的糧草作後盾,揮師出兵攻打楚國,項羽則因糧盡兵潰,迫於無奈提出「中分天下,割鴻溝以西者為漢,鴻溝而東者為楚」的停戰議和要求。從此便有了「楚河」、「漢界」之說。後人為銘記這次戰爭,且象棋又是模仿戰爭而來,因此就在象棋棋盤上打上了「楚河」、「漢界」。至今在滎陽市廣武山上還保留了兩座遙遙相望的古城遺址,西邊那座叫漢王城,東邊的叫霸王城,傳說就是當年的劉邦、項羽所築。兩城中間,有一條寬約300米的大溝,這就是人們所說的鴻溝,也就是象棋盤上「楚河」、「漢界」。


허난성의 싱양시는 중국의 상치 수도로 잘 알려져 있다. 상치 판의 "초하한계"는 이 도시의 광무산에 있다. "초하한계"라는 이름은 "초와 한의 투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원전 204년 유방과 항우의 군대가 이곳에서 대치했다. 기원전 203년 풍족한 식량과 풀을 바탕으로 유방(劉邦)이 초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항우는 천하를 둘로 나누어 홍구 서쪽으로는 한나라로 그 동쪽으로는 초나라로 하자는" 휴전을 제안했다. 그 이후로 "초하한계"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후세사람들은 이 전쟁을 기억했고, 상치는 전쟁을 모방한 것에서 나왔기 때문에 상치판에 "초하"와 "한계"가 표시되었다. 지금까지 싱양시 광무산에는 지금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고성 유적이 있는데 서쪽은 한왕성, 동쪽은 패왕성이라고 한다. 전설상으로는 그때 유방과 항우가 축조하였다고 한다. 두 성 사이에는 폭이 약 300m 인 큰 도랑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홍구라고 부르며, 이것이 바로 상치 판의 "초하한계"이다.
참조 www.pumb.org


(2009.11.22. [쓰지 않는 배: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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