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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an 03. 2023

서양선교사 출판운동으로 본~상업출판과 언문의 위상

마이클 김

마이클 김 (2010), 서양선교사 출판운동으로 본 조선후기와 일제초기의 상업출판과 언문의 위상, 열상고전연구 제31집.




조선말기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방각본 상업출판의 흔적은 영원히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들의 출판활동에 관한 사료들을 살펴보면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전파를 위해 조선인들의 언어생활과 그 당시의 출판문화를 깊이 파악했으며 기독교 서적을 유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선교사들은 1890년대에 본격적인 출판활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은 신활자본 고전소설이 성행했던 1910년대보다 최소한 20년 이전부터 꾸준히 서민 독자층을 대상으로 서적을 대량 출간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1. 조선예수교서회의 출판운동


선교사들이 진행했던 출판운동은... 성경의 번역과 출판에 몰두했다... 1890년 6월 25일에 공식 출범했다. 조선예수교서회는 독립신문이 인쇄되었던 삼문출판사(Trilingual Press)에서 서적을 인쇄했으며...


일제말기에 출간된 자료는 조선의 성경 배포율을 세계 각국과 비교하는데 조선이 얼마나 특수한 출판상황이었는지 바로 나타난다.


신약성서의 배포를 보았을 때 조선은 세계 12위이며 비유럽 언어 중 두개만이 이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조선어와 관련된 수치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간략본(Portions)에 관한 것으로 이는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 중국어 116,091,720, 2위 영어 28,557,726, 3위 조선어 17,675,641. 총합계로는 (성경, 구약서, 신약서, 간략본) 조선이 세계 5위이고 여기에 독일과 프랑스가 앞선다.


... 특히 간략본(portions) 판매량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상당수 책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팔렸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2. 선교사 서적판매의 초기 자본축적


조선인들의 서적구매력이 유난히 강하다는 지적은 여러 선교사 출판자료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3. 조선후기와 일제초기의 전국 서적유통망


조선기독교서회의 경우는 25년간 총매출의 80% 이상이 조선의 지방에 파견된 서적 행상인들 혹은 권서들의(colporteur) 판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조선에서 최초로 기독교 서적 행상인이 활동한 사례는 1883년 만주에서 존 로스의 성경번역을 도와주다가 조선으로 건너온 서상윤이었다.


조선인들 중에서 돈을 거의 본적이 없거나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서용대 권서는 많은 책을 쌀, 콩, 완두, 보리, 밀, 기장과 꼬추와 교환했다... 그는 여성 10명 중 3-4명이 서적을 구입하지만 남성들 중에서는 10명중 1명만 구입한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10명 여성 중 1명만 읽을 수 있었는데 근래에는 3-4배가 언문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Report of the Korea Agency for the year ending December 31, 1913, 9.)



4. 선교사 출판물의 한문과 언문 비율


1899년 경우 <성경문답>의 언문판은 4,114부가 출판되고 매진되었지만 한문판은 3권만 출간했고 670권이 재고에 남아있었다... 조선후기에 한문서적의 유통은 매우 소수이었다고 보여준다.


한문서적의 제한적인 수요는 결국 조선에서는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인구가 극소수이었고 조선후기에 상업출판시장의 수익을 올리려면 언문으로 책을 출간했어야 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 선교사출판으로 본 언문의 위상


책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선교사들은 일찍이 조선의 Diglossia(이중언어) 현상에 주목했는데 더 많은 서적을 판매하기 위해서 언문서적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언더우드는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인들은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한다고 오해하기까지 했으며... 선비들의 말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결국 선비 독자층과 서민 독자층들의 언어생활이 완벽하게 분류(리)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이중언어 현상은 조선후기의 출판문화에도 반영되었다. 아펜젤러... 는... 묘사한다.


조선에서처럼 한 종족이 나머지의 삶에 대해 이렇게도 무지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언더우드는 성경을 널리 보급하려면 반드시 언문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데 언문의 언어적 위상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정착하기 전에 이미 언문 출판시장이 전국에 펼쳐져 있었으며 언문서적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언문서적의 내용이 대부분 저속하며 지적 가치가 전무하다고 여기는 반면 거기에 존재하는 지식공백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고 여겼다. 아펜젤러의 전기에는 선교사들이 언문을 발견한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선교사들의 경의를 자아내는 크나큰 보물이 기다리듯 있었던 것이다. 금덩이와 보석이 가득 찬 동굴을 발견한 이야기 속 알리바바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언문글자를 발견한 순간만큼 기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에 이중언어가 존재했기 때문에... 지식을 전달하는 서적들은 한문으로만 제작되었고 통속적인 소설은 주로 언문으로 전달되었다... 바로 여기에 선교사들이... 새로운 서적 상품을 개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6. 맺음말


전국을 순회하는 서적 행상인들이 파견되었는데 그들이 발견한 서적의 수요와 구매력은 조선후기에 상업출판이 이미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은 언문의 잠재력을 파악했었으며 그들은 여러 출판활동을 통해서 언문의 언어적 위상을 상승시켰다는 면도 확실히 있다... 근대 한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이 기여하는 부분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선교사 출판운동으로 인해 언문은 점차 체계화 되었으며 1910년대에 신활자본 언문 출판물이 등장할 때까지는 언문시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방각본 언문 소설들은 서민들이 즐기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지만 조선사회에 내재된 편견 때문에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개화기에는 국문과 국한문의 도입이 시급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한문이 도입된 이후에도 일제시대 동안 선교사들은 꾸준히 언문서적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조선후기에 형성된 언문시장은 역시 고유의 위력을 유지했고 전 세계에 드문 기독교 서적판매 실적으로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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