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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an 31. 2023

뱃사람 신밧드 이야기 모음

최근 신밧드 이야기에 대해 놀라운 바가 있어 한번 조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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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엔 알라딘도, 신드바드도 없었다.


‘천 하룻밤의 이야기’란 뜻을 지닌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기원했던 이야기가 아랍어로 번역된 후 바그다드,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이야기에 살이 붙는 길고 복잡한 여정을 거치며 그 원형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천일야화는 아랍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실제 과거 아랍 세계에서는 정작 그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무명 작가들이 방언 형태의 아랍어로 쓴 서민 문학에 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수적인 무슬림 지식인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마술, 귀신, 남녀 간 사랑 이야기가 윤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아랍 세계에서 하층 문학의 하나로 무시당했던 천일야화가 일약 세계적인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은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스트였던 앙투안 갈랑(1646~1715) 덕분이었다. 1670년 그는 프랑스 사절단의 통역사로 오스만 제국을 방문하여 약 5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중동의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문학 번역에 관심이 많았던 갈랑은 우연히 ‘뱃사람 신드바드의 7가지 여행’과 ‘알프 라일라와 라일라(천일밤)’라는 두 개의 아랍어 이야기 필사본을 구입했다. 그가 구입한 ‘알프 라일라와 라일라’는 14, 15세기경 작성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일야화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다.


갈랑은 ‘알프 라일라와 라일라’를 번역한 후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란 제목을 붙였다. 원래 이 작품은 1천 하룻밤 동안 지속되는 이야기가 시리즈처럼 계속 진행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입한 천일야화 아랍어본에는 281일 밤에 걸쳐 진행되는 40개의 이야기만 들어 있었다. 갈랑은 천일야화의 분량이 부족하다고 여겼던지 ‘뱃사람 신드바드의 7가지 여행’ 이야기를 천일야화의 시리즈에 슬쩍 끼워 넣어 합쳤다. 그런 뒤 1704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천일야화 프랑스어 번역 시리즈 7권을 차례로 출판했다.


... 출판사는 오리엔탈리스트인 프랑수와 페티 들라크루와로부터 아랍 이야기 몇 편을 입수했는데, 사실 그 이야기들은 천일야화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는 그 이야기들을 갈랑이 갖고 있었던 다른 아랍 이야기와 마음대로 합친 후 천일야화 시리즈 8권을 출간했다.


바로 그 무렵 갈랑은 한나 디압이라는 정체불명의 아랍인을 만났다. 그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온 마론파 소속의 그리스도교도 아랍인이었는데, 프랑스인들의 사교 모임에 참석하여 아랍의 민담을 들려 주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1709년 갈랑은 친구를 통해 한나 디압을 소개 받았고, 파티에 참석하여 그가 떠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나 디압이 갈랑에게 입으로 전해 준 이야기 가운데에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과 ‘알라딘과 마술램프’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두 이야기 역시 천일야화와 전혀 무관했지만 갈랑은 후속 시리즈에 넣기로 결심했다. 갈랑은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마음대로 개작하고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맞게 윤문을 가한 후 천일야화 시리즈의 마지막 4권을 더 출간했다. 그 결과 갈랑의 프랑스어판 천일야화 시리즈는 1704년부터 1717년까지 총 12권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천일야화는 유럽으로 처음 소개되었을 때부터 마음대로 이야기가 편집되고 개작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갈랑의 번역 시리즈 가운데 그나마 아랍어 원본에 근거를 둔 것은 7권까지였고, 나머지 8권부터 12권까지는 천일야화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오리엔탈리스트였던 리처드 버턴(1821~1890)이 갈랑의 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어판 천일야화 번역에 도전했고, 그 결과 1885년부터 1888년까지 16권의 천일야화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출처 : 김정명의 이슬람 문명기행, 한국일보, 2019. 5. 11.)



신드바드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황금의 땅' 동남아시아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신드바드의 모험은 손오공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신드바드의 신드(Sindh)가 서북 인도, 정확히는 오늘날의 파키스탄 한 지역을 뜻하며, 이것이 ‘힌두’의 어원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신드바드는 고향인 아라비아반도 소하르에서 인도를 향해 배를 타고, 모험길에 나섰다.


‘바깥세상을 알고 싶어서’ 떠난 그는 미지의 세계에서 7번의 모험을 한다. 모험 중 세 번째는 식인종들의 섬에 난파했다가 도망치는 이야기이다. 신드바드의 이야기는 물론 <천일야화>에 실린 허구이지만 이 식인종의 섬이 오늘날의 니코바르 제도를 모델로 했다는 주장도 있다. 니코바르 제도는 안다만 제도와 함께 아라비아, 인도에서 동남아로 들어가는 초입에 해당한다. 11세기에 인도 촐라왕국에 점령당한 이후, 인도계 언어를 쓰고 행정적으로 인도 연방에 속한 섬들이지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동남아에 가깝다. 인도네시아 서북방의 아체에서 불과 150㎞ 떨어져 있고, 미얀마에서도 190㎞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1천㎞나 떨어져 있는데도 인도 연방인 니코바르 제도는 단적으로 동남아의 역사, 문화적 성격을 암시한다.


증기선이 개발되기 전까지 배를 이용한 지역 간의 이동은 제약이 많았다.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선박을 만드는 것도 망망대해에서 항로를 제대로 찾아가는 것만큼 중요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기 전까지 가장 안전한 방법은 근거리 항해였고, 되도록 육지 가까이 항해하다가 적당한 항구에 내려 물과 식량을 보충하고 배를 수선해 다음 목적지에 가는 식으로 장거리 항해를 했다. 인도, 스리랑카에서 동남아 방면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 바로 이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였다. 신드바드가 외국에서 물건을 사다 팔며 이문을 얻기 위해 항해를 한 방식도 이런 근거리 항해였기에 니코바르 제도가 그의 모험담 속 배경이었다는 주장이다. 신드바드 역시 바닷길 교역의 일원이었던 셈이다. 이미 9세기에 쓰인 중국과 인도의 여행기에 안다만 제도에 식인종이 산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신드바드가 니코바르 제도에서 난파했다는 추정은 비단 식인종 때문만은 아니다. <천일야화>에는 신드바드가 여기서 단향 등을 구해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남아는 아랍과 중국에서 귀하게 여긴 값진 향료와 염료의 산지이기도 하다.


신드바드의 배는 왜 인도에 머물지 않고 동남아로 향했을까?... 이국인들에게 동남아는 일찍이 “황금의 땅”으로 알려졌다... 흔히 동남아의 고대 문명, 동남아의 역사시대는 인도인들이 기원전 2세기부터 대거로 혹은 간헐적으로 이주함으로써 시작됐다고 한다. 이를 ‘동남아의 인도화’라고 한다. 조르주 세데스라는 프랑스 학자가 처음 주장한 ‘인도화’는 고대 동남아 문명에 미친 막대한 인도의 영향을 말해준다.


인도 사람들은 왜 제 나라를 떠나 앞다퉈 배에 올랐을까? 이 시기는 인도에서 전쟁이 빈번했던 때이다. 오늘날의 중국 간쑤(감숙)성 치롄(기련)산맥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월지족 일부가 흉노에게 밀려 박트리아와 페르가나 지방으로 이주하자 그곳에 살던 샤카족이 다시 간다라 지방으로 쫓겨났다. 석가모니가 이 샤카족 출신이다. 월지의 한 부류인 쿠샨족이 기원전 1세기에 쿠샨 왕조를 세우는 것으로 유목민족의 연쇄 이동은 일단락되었다. 이는 먼저 거주하고 있었던 인도인들의 동남아 이주를 촉진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서쪽으로, 아라비아반도 방면으로 가지 않고, 동쪽 동남아로 방향을 잡았던 것일까? 북방에서 이주하는 유목민족의 압박도 컸고, 인도의 지리, 지형, 정치적 요건들도 관계가 있지만 무엇보다 동남아에 대한 환상이 컸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인도 고대 문헌에는 동남아에 ‘황금의 땅’(수완나부미, Suvarnabhūmi), 혹은 ‘황금의 섬’(Suvarnadvīpa)이 있다고 했다. 팔리어로 쓰인 석가모니 본생담(本生譚) 중의 <마하자나카 자타카>(Mahājanaka Jātaka)와 상좌부 불교 성전 <마하 니데사>(Mahā Niddesa)가 그것이다. 또 구나디아가 지은 인도 고대 서사시 <브리하트카타>(Brihatkathā)에도 동남아로 향하는 뱃길과 함께 수완나부미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인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83~168)는 로마와 고대 페르시아의 지명사전을 바탕으로 <지리학>(Geographike Hyphegesis)을 저술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동남아 어디를 황금반도(Golden Khersonese)라고 지칭했는데 훗날 학자들은 이를 말레이반도, 혹은 수마트라라고 비정했다...


아마도 수완나부미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타이 방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방콕 국제공항의 이름이 수완나부미(수완나품)이다... 타이가 수완나부미를 공항 명칭으로 차용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에 처음 불교가 전해진 곳이 수완나부미이기 때문이다. 불교 경전 <밀린다팡하>(彌蘭陀王問經)와 스리랑카의 역사서 <대사>(大事, Mahavamsa)에는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아소카)왕이 소나와 웃타라라는 두 승려를 보내 동남아에 불교를 전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즉 황금의 땅, 수완나부미는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곳이다...


... 8세기의 인도 문헌 <사마라이차카하>(Samaraiccakaha)에는 수완나부미에서 금이 잔뜩 섞인 모래로 벽돌을 만들어 배에 싣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는 금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별다른 처리 없이도 사금을 안전하게 인도로 가져가기 위해 고안한 방편이었다.


중국 고대 사서 <진서>(晉書)에는 동남아 최초의 고대국가 푸난(扶南)이 말레이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으며, 각지에서 나오는 금에 세금을 매겼다고 썼다. 푸난은 캄보디아에서 타이, 말레이반도 인근까지 동남아 대륙부를 지배한 강대한 나라였다. <남제서>(南齊書)에는 푸난 사람들이 금으로 팔찌를 만들어 차고, 은그릇을 썼다고 나온다. 수완나부미라는 이름이 여기 나온 것은 아니지만 황금이 많이 나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동남아 현지에서는 인도의 고대 문자들이 종종 발견된다. 타이 끄라비에서 발견된 3세기께의 도구 중에는 인도 남부 타밀 문자로 새긴 금세공 장인의 이름 ‘페룸파단’(Perumpadan)이 확인됐다. 인도의 11세기 문헌에서는 수완나부미에서 가져온 금을 은이나 구리가 섞인 정도에 따라 붉은 금, 백금으로 다르게 분류하여 쓰기도 했다. 금에 대한 집착은 금을 발견하고 순도 높은 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술 발전을 낳았다. 그 첫째 조건인 ‘금의 발견’이 수완나부미에서 가능했다면 너나없이 동남아로 향하는 배를 띄우지 않았겠는가? 신드바드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금은보화의 유혹 탓이다. 수완나부미는 모험가의 환상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이상향이었다. 금으로 비롯된 동서교류는 동남아가 동서로 ‘열린 지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출처 : 강희정, 한겨레, 2020.10.17.)



뱃사람 신밧드

Amitabh Vikram Dwivedi (조영필 역)


뱃사람 신밧드는 가상의 인물이자 일곱 이야기의 영웅이다. 각 이야기는 그의 항해 중 하나를 기술한다. 종종 Scheherazade의 천일야화에 포함되지만, Sinbad의 이야기는 별도로 시작되었고, CE 8세기 후반 또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Sinbad란 이름은 페르시아 출신일 수 있는데,  압바스조 칼리프 시기(Abbasid Caliphate, 750-1258 CE) 동안 Basra에 살았다. 그는 상인이자 선원으로서 대개 인도를 향해 동쪽과 남쪽으로 일련의 장대한 항해를 떠났다. Odysseus를 연상시키는 Sinbad는 수많은 모험과 재앙에 직면한다. 종종 그의 배는 침몰하거나 좌초된다. 그는 그의 모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거인, 유령, 반인, 그리고 대부분이 그를 노예로 만들거나 죽이려고 하는 다른 괴물들과 함께 그의 모험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Sinbad는 항상 자신이 직면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고 적을 한 수 앞서거나 이기고, 각 이야기는 Sinbad가 부유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해피 엔딩으로 해결된다. 수세기에 걸쳐 전해진 신밧드의 이야기는 유사한 항해 모험 이야기에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 신밧드는 만화책과 36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첫 번째 항해에서 아버지가 남긴 돈을 탕진한 신밧드는 무역을 통해 부를 되찾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 신밧드의 배는 아름다운 섬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지만, 알고 보니 거대한 물고기나 고래였다. 물고기는 깊은 바다로 잠수하고 Sinbad는 떠 다니는 나무 상자에 올라 자신을 구하는데, 그 상자는 해안으로 표류한다. 홀로 남겨진 신밧드는 그 지역 통치자의 애마를 초자연적인 공격으로부터 구하여, 그에게서 피난처를 찾아 어느 날 그의 배가 도착할 때까지 지역 상인 및 선원들과 함께 일한다. 그는 그의 물건을 되찾고 신밧드는 부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항해에서 Sinbad는 아름다운 섬에서 선원들에게 실수로 버려졌습니다. 이 섬은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계곡을 차지하는 거대한 새와 거대한 뱀의 서식지이다. 신밧드는 뱀을 먹는 새 중 하나를 기만하여, 그 새가 그를 그 새의 둥지로 다시 데려가게 한다. 거기에서 그는 다이아몬드로 자루를 채우고 집으로 향한다. 세 번째 항해에서 Sinbad와 그의 승무원은 거인을 만난다. Homer's Odyssey의 Polyphemus와 마찬가지로 거인은 Sinbad의 승무원을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오디세우스처럼 그들은 거인의 눈을 멀게 하여 탈출한다. 그의 승무원 중 몇 명이 더 거인의 아내가 던진 돌에 의해 죽었지만 Sinbad는 이를 그럭저럭 수습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부자가 된다.


네 번째 항해에서 식인종이 신밧드와 그의 선원들을 붙잡아 이상한 식물을 먹인다. 그 식물은 그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그들을 식인종이 먹기 전에 살을 찌우도록 게걸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신밧드는 위험을 인식하고 식물을 피하고 탈출한다. 다시 근처 왕국에서는 환대를 받았는데, 그는 왕이 그에게 선물한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다. 그러나 아내가 죽자 신밧드는 현지 관습이  살아남은 배우자를 죽은 배우자와 함께 매장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신밧드는 이 운명에서 벗어나 무덤에서 나온 보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다섯 번째 항해도 처음에는 신밧드가 자신을 등에 짊어지게 만드는 "바다의 노인"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다. Sinbad는 그를 취하게 만들고 탈출하여 코코넛 거래로 부자가 된다.


마지막 두 이야기에서 Sinbad는 Serendip(스리랑카)을 방문한다. 여섯 번째 항해에서 그는 그곳에서 난파되지만 지역 왕에게 다시 깊은 인상을 남겨, 그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일곱 번째 항해를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 신밧드는 해적들의 공격을 받고 그들은 그를 붙잡아 어떤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넘긴다. 이어, 상인은 신밧드에게 그의 자유의 비용으로 500개의 코끼리 상아를 약속한다. Sinbad는 코끼리 무덤을 발견하여 그 상아를 획득함으로써 이를 해결한다.


아마도 그 시대의 실제 상인과 선원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신밧드의 이야기는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을 따라 있는 사회와 문화, 그리고 당시의 무역 네트워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위에서 언급한 코코넛, 상아, 보석 외에도 Sinbad는 이국적인 목재와 향신료, 특히 장뇌, 계피, 정향, 후추, 현대 시대까지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상인들을 끌어들일 백단향 제품을 찾았다. 현대에, Sinbad에 대한 수십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추가 독서:

Haddawy, Hussain. 2008. Sindbad: And Other Stories from the Arabian Nights.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Hardy-Gould, J. 2005. Sinba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Meisami, Julie Scott, and Paul Starkey. 1998. Encyclopedia of Arabic Literature. London:

Routledge.

 

(출처 : Amitabh Vikram Dwivedi, 'Sinbad, the Sailor', The Sea in World History: Exploration, Travel, and Trade[2 volumes], Stephen K. Stein(ed.), pp.158-160.)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다만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구전된 수많은 이야기가 엮인 것으로 추정된다. 9세기 이전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구전된 설화들에 10세기 이후 이집트 등지의 전통 설화가 더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크게 9세기 바그다드 주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본, 13~14세기 카이로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본 등 2개의 판본이 있는데, 시리아본이 이집트본에 비해 짧고, 이야기 수도 적다.


18세기 초반 프랑스 학자 앙투안 갈랑이 4권으로 된 시리아의 필사본을 유럽 사회에 번역 소개하며 ‘아라비안나이트’란 이름이 생겼다. 영국 탐험가 리처드 버튼이 1885년 이집트본을 근간으로 한 영역본을 출간하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한국일보, 2017. 3. 11.)



1600년대, 프랑스의 동양학자였던 갈랑은 아랍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그곳에서 보고 경험한 여러 책을 집필하고 번역하는 가운데, 말년에 천일야화를 한 권씩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가 번역한 아랍어 원본이 바로 2백 몇 십일 밤에 불과한 14세기의 불완전한 필사본이었다. 그는 제목처럼 1,001일에 해당하는 나머지 이야기들이 민간을 떠돌고 있을 거라고 여기고는 부족한 밤을 채우기 위해 그것을 구하려 했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몇몇 따로 수집된 이야기들을 천일야화의 일부라고 굳게 믿고 자기의 책에 첨가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가장 유명한 <알라딘과 요술램프>,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의 이야기들이다.


8세기 경에 페르시아어로 된 <하자르 아흐사네>라는 이야기집이 있었다고 한다. ‘천 가지 이야기’라는 뜻으로, 한 도서 사서의 책 목록에는 이 책에 대해 하룻밤 동침한 처녀를 날마다 죽이던 왕이 현명한 처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고 악행을 멈추게 된다는 줄거리가 설명되어 있다.

(출처 : mvq.co.kr, 2021. 6. 22.)



천일야화는 아라비안나이트라고도 한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6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전해지는 1001일 간의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천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8세기 말경 아랍 어로 번역돼 나왔다. 이후 이라크 바그다드, 이집트 카이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계속 덧붙여져 15세기경에 완성됐다.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인도의 설화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 왔는데, 작자는 한 명도 알려져 있지 않다.


천일야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페르시아의 샤리아왕은 아내의 바람을 목격한 뒤 모든 여자를 증오한다. 왕은 밤마다 여자들을 불러들여 잠을 자고 아내로 만든 뒤 다음날 살해하는 일을 반복했다. 백성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하자 노재상의 딸, 셰에자라드는 스스로 왕에게 간다. 셰에자라드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자신의 동생인 디나르자드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셰에라자드는 디나르자드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샤리아왕이 들어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셰에자라드는 이야기의 절정이 되는 부분에서 내일 얘기하겠다며 이야기를 끊고, 왕은 다음날 이야기를 듣기 위해 셰에자라드를 살려뒀다. 이런 식으로 1,001일 간 이야기가 이어진다. <알라딘과 마술램프>,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도적> 등은 천일야화의 대표작이다.


<천일야화>를 널리 알린 것은 프랑스 동양학자인 앙투안 갈랑이다. 갈랑은 1704년 천일야화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유럽에 처음 소개했다. 천일야화는 발간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작인 <알리바바와 40인의도적>과 <알라딘과 마술램프>는 원본에 없던 내용이다. 갈랑이 프랑스어 번역본을 쓰면서 새로 삽입했다. 1885년에는 영국인 R.F. 버턴이 완역한 <아라비안나이트>가 발간되면서 대중화된다.

(출처 : jmagazine.joins.com)



신밧드라는 명칭은 페르시아어 인 "신드 바드"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신드 강가의 제왕"을 의미합니다. 신두(Sindhu)는 인더스 강 (Indus River)의 페르시아 변종으로 현재 파키스탄에 있는 선원이었음을 나타냅니다.


호머의 위대한 고전 " The Odyssey" 및 신 고전 그리스 문학의 다른 이야기에서 신밧드의 많은 모험과 오디세우스의 모험 사이에는 많은 현저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Sinbad의 제 3의 항해"에 나오는 식인종 괴물은 "The Odyssey"의 Polyphemus와 매우 유사하며, 배의 승무원을 먹기 위해 사용했던 뜨거운 철 냄새로 눈이 멀어 같은 운명을 맞게 됩니다.


또한, "Fourth Voyage" 동안 Sinbad는 산 채로 매장되었지만 Messenian Aristomenes의 이야기처럼 지하 동굴에서 탈출하기 위해 동물을 따라 간다. 이러한 유사점과 다른 유사점은 신밧드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민속의 인물임을 가리킨다.


Sinbad는 부분적으로 페르시아 모험가와 Salliman al-Tajir라는 이름의 상인인 "Soloman the Merchant"를 기반으로 할 수 있습니다. BC 775년경에 페르시아에서 중국 남부까지 항상 여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세기 동안 인도양 무역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면, 상인들과 선원들은 이 3개의 위대한 몬순 회로들 중 하나를 여행하여 그 회로들이 만나는 노드에서 서로 만나고 거래를 하게 됩니다.


Siraf는 전체 항해를 완료하기 위해 서부 아시아에서 첫 번째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Siraf는 아마도 그가 실크, 향신료, 보석 및 도자기로 가득한 보금자리로 그것을 집으로 만든 경우 특히 자신의 시간에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신밧드 이야기가 만들어 졌던 사실적인 기초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만 에서 많은 사람들은 신밧드가 바하 항구에서 현재 이라크에 있는 항해를 떠난 소하르 (Sohar)시의 선원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습니다. 그가 페르시아인이 된 인도식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출처 : ko.eferrit.com)



이슬람 사회에선 상인들은 단순히 존경만 받는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모델로 통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Maurice Lombard가 그린 이슬람 상인의 모습... 롱바르의 묘사는 유명한 작품 <천일야화>에 나오는 신밧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미천한 짐꾼(... 신밧드)이 신밧드를 처음 만나러 가는 장면을 통해 짐꾼의 눈에 비친 신밧드의 모습을 보도록 하자. (출처: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년, pp.497-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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