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Q 립 2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May 06. 2023

미인박명

조영필

제대하고 부모님과 함께 경주의 시골에서 지내던 시절이다. 울산에 사는 큰형이 사회성이 부족한 어미개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 개는 이쁜 강아지를 두 마리 낳았다. 암컷과 수컷이었다. 암컷은 깡순이, 수컷은 깡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깡순이는 정말 이뻤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었다. 마침 그때 같이 기른 새끼 고양이에게도 무턱대고 사귀자고 다가가다가 눈에 상처를 입기도 하였다.


어느날 깡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깡순이는 일주일 후쯤 아버지가 찾았다.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운 근처의 우물턱이 없는 우물이었다. 부모님이 거기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그 주변의 모든 지형지물에 대해 알 수는 없었다. 평소에 큰 풀들로 덮여 있어서 거기에 그런 우물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조만간 산책을 하려고 하던 방향이었기 때문에 하마트면 나도 거기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는 깡순이를 밭둑 모서리 쪽으로 새로 심은 감나무 밑에 묻었다. 몇 년이 지나고서야 감나무에 감이 열렸다. 어머니가 감이 달다고 감을 가져다 주시는데, 깡순이가 생각 나 절로 눈물 지었다. 미인박명이란 이 사건에 대해 내게 떠오른 가장 정확한 단어이다.


Note:

아마도 1992년 무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퇴근의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