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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ug 12. 2023

아우토반의 기억

조영필

90년대 영업사원 시절 선배들은 88고속도로를 타면서 이것이 바로 한국의 아우토반이라고 하면서 즐거워하였다. 사실 서울 어느 곳에서 모임이 있더라도, 88을 타면 접근성이 뛰어났고, 또 귀가하기도 좋았다.


그러다가 독일의 아우토반을 가게 되었다. 이곳은 속도가 무제한이었다. 당시 나의 차 BMW2.0은 철옹성과도 같은 차이었는데, 최고 시속 260Km이었다. 차를 아우토반에 진입시키고 발을 살짝 액셀에 얹어놓으면, 190Km까지는 그냥 갔다. 이제 1차선으로 진입하려면, 약간 더 액셀을 밟기만 하면 되었다.


아우토반의 1차선은 독일차 벤츠, BMW, 아우디 3사 차종의 세상이었다. 가끔 볼보가 그 라인에 진입하려 하면, 다른 독일차들이 쫓아내려고 난리를 친다. 특히 아우디가 그 선봉이었다. 당시 벤츠는 50대, BMW는 40대, 아우디는 30대의 차라고 하였으니, 젊은 아우디 운전자들은 스웨덴의 차가 독일 아우토반의 1차선을 점거하는 것을 결코 용서하려 하지 않았다. 200Km가 넘는 속도에 차를 바싹 뒤에 대고 붙으니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2차선으로 차를 물릴 수밖에 없다.


아우토반의 1차선을 달리려면, 최소 200Km 이상을 달려야 하고 220-240Km가 보통의 속도 수준이다. 저쪽 산등성이에 있던 뒤의 차가 찰나에 내 차 바로 뒤에 나타난다. 운전자로서 200Km란 그 속도에 도달할 때, 차가 살짝 공중에 부양한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때부터 속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차는 지면에 더욱 찰싹 달라붙는다. 독일차의 안정감과 기술수준은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1차선을 220Km로 달리며 벨기에의 미팅 장소로 달려가고 있는데, 모스크바사무소장 선배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아우토반을 달린다고 하였다.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니 중요한 전화가 아니면, 빨리 끊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선배는 선진국의 주재원이 부럽다고 하면서 자기도 아우토반을 타고 싶다는 둥 일부러 대화를 질질 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우토반을 타면서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로 30분 이상을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독일인 인턴과 업무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그가 나 대신 차를 몰겠다고 해서 나도 좀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맡겼더니, 정말로 260Km까지 밟아버렸다. 왜 그렇게 속도를 내느냐고 하니, 이 친구는 최고 속도가 있는데 왜 그 속도까지 운전해보지 않느냐고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네는 아직 총각이지만, 나는 한 가족의 가장이라고 얘기하면서 다음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나는 그 친구를 아주 좋아하였지만, 그때 이후로 절대로 그에게는 운전대를 맡기지 않았다.


아우토반은 톨게이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옆나라 프랑스만 하더라도 국경 넘어 파리까지 진입하는데 무려 6개의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요금을 물어야 하고 또 시속 120Km의 속도제한이 있었다. 독일에서 프랑스나 이태리로 넘어가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200Km를 달리다가 120Km를 달리면, 그냥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독일사람들에게 아우토반은 독일국가체계의 기본 인프라이다. 독일 전역이 3시간이내(600Km)의 생활권이 되니, 사람과 물자의 이동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인프라를 이용하는 요금 또한 공짜이니 이것이 바로 독일의 경쟁력이 아닐까 싶었다.


EU가 동부유럽으로 점차 확장되면서 다른 나라 국가(특히 네덜란드)의 화물차량들이 동부유럽으로 가기 위해 독일의 아우토반을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화물차들이 많이 이용하니 아우토반의 도로보수 문제는 가뜩이나 독일통일비용으로 부담이 만만치 않은 독일경제에서 아주 오랫동안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었다. 아마도 톨게이트 설치를 통한 도로보수 비용의 회수와 아우토반의 무제한 속도 유지의 주장간에 팽팽한 토론이 20년 넘게 전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들은 내가 독일에 있을 무렵 결론을 내었는데, 톨게이트의 설치 없이 이 난제를 해결하였다. 그것은 오직 상업용 법인 차량에만 도로 이용요금을 부가하는 정책이었다. 즉 물류회사의 등록된 차량이 아우토반에 진출입할 때, 아우토반의 진출입로에서는 차량의 회사코드를 스캔하여 이용금액을 매달 정산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를 개인 자동차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개인 자동차에게까지 의무적으로 코드를 부착시키게 하고 또 일일이 정산하려면,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개인 자동차가 도로 파손의 주범은 또한 아니기 때문이었다.


독일인들의 이러한 합리적인 해결방안은 우리가 아직도 독일의 아우토반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아우토반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은 가장 경쟁력 있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로서, 아우토반은 그들의 수준높은 차량을 대중이 검증할 수 있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속도는 제동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낼 수 없다. 무제한의 속도는 무제한의 기술과 함께 간다. 그 속에 깃든 차의 안락함과 신선한 디자인의 향기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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