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똥 역사

단군신화의 마늘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단군신화의 마늘(蒜)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마늘이 아니고, 달래나 무릇(石蒜, 鳥蒜)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이 경우 나는 단군신화의 구조주의가 걱정스럽다. 단군신화에서 각 신화소들은 모두 이원적 대립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쑥과 마늘은 하늘/땅, 동물/식물의 한 축으로서 또한 땅위/땅속의 대립물로서 이적(異蹟)의 촉매(매개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단군신화의 蒜(산)이 마늘이 아니고 달래나 무릇이라면, 단군신화의 구조주의적 매운 맛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달래나 무릇의 구근(球根)은 마늘에 비해 많이 작기 때문에 ‘땅속’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수용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만약 그처럼 쉽게 바꿔지기 어려운 것이라면, 단군신화의 성립연대는 마늘의 전래시기인 서한(西漢) 이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에 보급되어 재배도 되고 일상의 먹거리 요소가 되려면 적어도 동한(東漢) 이후(서기)로 늦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마늘이 이 마늘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단순한 사실 확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단군신화 속 웅녀가 먹은 것은 마늘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7.10.3)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 (三國遺事) 고조선 편에는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늘 신웅(神雄·환웅)께 빌면서 인간이 되기를 발원했다. 신웅은 신령스런 쑥 한 단과 마늘 스무 매를 주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마늘이 아니라 '달래'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삼국유사에 적혀있는 마늘로 번역된 한자는 蒜(산)"이라면서 "蒜은 달래, 파, 마늘, 부추 등 아린 음식을 다 이른다. 그러니 굳이 마늘이라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황씨에 따르면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이집트로 추정되며 대체로 조선 시대까지 '葫(호)'라고 많이 불렸기 때문에 '蒜'은 마늘보다는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달래산파, 산부추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자생 식물 중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 달래이므로 단군신화 속 '蒜'은 달래로 읽는 것이 좋다고 황씨는 주장했다.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은 '한국동양정치사상연구'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단군 시대에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마늘이 없었다”며 마늘로 알려진 식물은 무릇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늘은 서한 시대에 서역에서 들어왔다"며 명나라 학자 이시진이 엮은 책인 '본초강목'의 내용을 인용해 설명했다.


본초강목에는 "집에서 심는 산(蒜)은 두 가지가 있다. 뿌리와 줄기가 작으면서 씨가 적고 몹시 매운 것이 산(蒜)인데, 이것은 소산(小蒜)이다. 뿌리와 줄기 가 크면서 씨가 많고 매운맛이 나면서 단맛이 도는 것은 호(葫)인데, 이것이 대산(大蒜)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호(葫)는 마늘, 산(蒜)은 무릇이라는 것이 박 위원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달래는 매운맛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소산이라고 할 수 없다. 무릇은 큰 상수리 열매 정도 크기로 무척 맵고 아려서 날로 먹을 수 없다"며 산(蒜)을 마늘, 달래가 아닌 '무릇'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황식물인 무릇은 한자로 석산(石蒜), 조산(鳥蒜) 등으로 표기하며 쑥과 둥굴레, 잔대 등과 함께 10시간 이상 고아서 익혀야 먹을 수 있다. 박 위원은 "1946년 사서연역회(史書衍譯會)가 삼국유사의 첫 번역본을 내면서 '산'(蒜)을 마늘로 옮긴 뒤 수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지금이라도 마늘은 무릇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이원적 대립'의 세계에 살고 있다(김태경, 한겨레, 2011.6.27)


... 임봉길 강원대 교수는... 2008년 11월 ‘레비스트로스-구조주의의 논리체계와 방법론’이라는 논문에서 단군신화를 구조주의로 분석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단군신화에는 환웅·태백산·신단수·쑥·마늘·곰·호랑이·삼칠일·굴·백일·단군 등의 용어가 나온다. 이 용어가 단군신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신화의 요소를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소’라 불렀다. 이 신화소들의 관계에 따라 의미가 생겨난다.


먼저 하늘과 땅의 대립이다. 환웅은 천상이고 곰이나 호랑이, 쑥과 마늘은 지상에 사는 동식물이다. 따라서 우주적 코드로 볼 때 하늘/땅의 대립, 식물/동물의 대립, 동물학 코드로 볼 때 곰/호랑이의 대립이 발생한다.

곰과 호랑이는 둘 다 지상동물이지만 곰은 겨울잠을 자는, 즉 동굴 속에 들어가는 동물이고, 호랑이는 잠시 동굴에 칩거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땅 위의 짐승이다. 여기서 곰과 호랑이는 땅속/땅위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쑥은 지상의 잎을 사용하지만 마늘은 땅속에 있는 부분을 사용한다. 여기서도 땅속/땅위의 대립이 식물과 동물 모두에 짝을 이뤄 나타난다. 이를 표로 만들면 ‘하늘/땅 :: 땅위/땅속’이다.


왜 곰은 여인이 되고 호랑이는 실패했을까? 곰은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는데, 이는 인간이 여자의 자궁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것과 똑같다. 곰이 여성이 된 이유는? 천상의 신이 남자이므로 그의 대립물은 여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 분석에서 2개의 대립 항을 연결하는 하나의 중개 항, 즉 매개 항을 상정했다. 이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사고방식과 같다. 단군신화에도 매개 항이 나타난다. 태백산과 신단수는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데, 세계 여러 신화나 동화에서 산이나 나무가 같은 구실을 한다. 신화나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아줄이나 사다리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 항이다.


쑥과 마늘은 곰을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 항이고, 굴속(땅속)은 곰을 여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매개 항이다. 매개 항 없이 두 극을 연결할 수 없다. 단군신화에서는 신과 짐승이 매개 항 없이 결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화는 먼저 짐승을 인간으로 변형하고 신이 인간으로 변한 후에야 신과 인간이 성적인 매개를 통해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