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최근 가로수에 하얀 이팝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전통의 은행나무를 소리 소문 없이 목하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가로수 하면 도시의 매연에 잘 견디면서도 여름에 서늘한 그늘을 선사하고 또 몸에 좋은 은행도 생산하는 은행나무가 부동의 인기 품종이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길에 떨어진 은행을 줍고는 했었는데 언제쯤인가 그러한 열매를 자루째 쓸어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자 갑자기 가로수라는 공공재에서 사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었고 덩달아 어르신들도 남의 눈총을 의식해 은행을 수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은행 열매는 길바닥에 떨어진 채로 터져서 악취를 풍기게 된 것이다. 은행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던 세대가 점차 천수를 다하면서 당당히 유실수로 대접받던 은행 열매가 이제는 오히려 환경미화원의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 열매를 치우지 않아 악취 뿐 아니라 미끄러짐 사고를 유발한다든지, 피부 염증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한다든지, 낙엽이 너무 많다든지 하면서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니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은행나무는 겨울철에는 민둥가지라서 도시가 삭막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를 계절감 있게 꽃이 피는 가로수로 대체하면 '회색 도시'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기후변화로 인한 건조, 병충해와 대기오염 등에 두루두루 내성이 강한 이팝나무, 황금사철나무, 배롱나무 등이 최근 인기 가로수종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식물로 5~6월에 꽃이 피는데 목련처럼 아름답다. 조선시대에는 이팝나무가 피는 시기를 모내기의 적기로 삼았다고 한다. 이팝나무 이름의 유래도 쌀밥을 한 솥 지은 듯이 하얀 꽃이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 '이'는 쌀을 뜻하는데 이래저래 정이 가는 나무이다.
요즈음 집 근처를 산책할 때 조팝나무도 많이 보인다. 이팝나무와 이름이 비슷해서 찾아 보았더니 역시 작고 흰 꽃들이 좁쌀밥처럼 빽빽이 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도 '조'는 좁쌀을 뜻한다. 조팝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키 작은 관목으로 정원이나 화단에 많이 심는다. 조팝나무는 예로부터 혼례나 봄꽃 장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꽃말은 '노력'으로 작은 것이 모여 큰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뜻이다.
Note:
이팝나무가 가로수로서는 단점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낙화 및 열매로 인한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낙엽과 열매로 인한 불편을 가진 은행나무의 단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비록 이팝나무가 병충해에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병충해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은행나무는 병충해와 공해에 정말 강하고 공기정화 능력도 있다. 게다가 잎에 수분이 많아서 불에 잘 타지 않아 화재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팝나무의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은행나무의 단풍도 그에 못지 않다. 가로수 교체는 그냥 한 때의 트렌드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