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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주의 교란

조영필역

by 조영필 Zho YP

우리의 주의 메커니즘을 바보로 만들기


창의성은 확실한 것들을 놓아버리는 용기를 요구한다.


- 에리히 프롬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용기도!)



나는 새로운 강의 과정을 시작할 때, 참가자들을 알게 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말한다, 나의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때때로 더 흥미롭다고, 그 과정의 교자재보다도… (단지 농담 – 아시트 과정은 최상의 평가를 받습니다!)


나는 보통 참가자들 각자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나는 평범한 길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들을 두 사람씩 쌍으로 나누도록 요청한 후, 각자가 자신의 짝을 소개하라고 요청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분할 기법의 멋진 적용인데, 또 참가자들에게는 엄청난 재미이다 –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듣는 것은 항상 재미있다.


그러나 나는 참가자들을 소개하는 이러한 방식에서 내가 발견한 재미있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당신이 이 실습에 참여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당신은 누구에게 관심이 있을까? 소개를 하는 사람 아니면, 소개를 받는 사람?


대개는 그것이 동일한 사람인데,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이 실습 동안 나머지 참가자들을 지켜보고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들의 집중을 “소개자”에서 “소개받는 자”로 테니스 경기의 관객들처럼 앞뒤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누구나 이 단순한 실습은 우리의 주의 메커니즘에 도전하고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의는 우리의 창조적 능력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그것이 너무 엄격하면, 우리는 해결책에 중요할 수도 있는 요소들을 결코 보지 못한다. 만약 그것이 너무 유연하면, 우리 생각들은 방황하고 사막의 모래처럼 우리 마음 여기저기로 떠다닐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는 꽤 우리의 주의가 혼란되는 상황을 즐긴다는 것을 유념하는 것은 또한 재미있다. 우리는 약간 “풀어지게” 느낀다 (아마 롤러코스터에 있는 신체적 느낌에 약간 비유될 수도 있다).


나는 한때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 우리의 주의를 혼란시키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 그의 그림에서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배경이 무엇인지가 결코 명확하지 않다.


아시트는 실제로 주의 통제 기법이다. 아시트는 우리에게 매번 다른 문제 대상에 집중하여 그 대상을 변화시킴으로써 그 문제를 풀어보라고 지시한다.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주의 메커니즘을 약간 느슨하게 돕는 훈련은 우리가 아시트를 사용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그래서 다음번에 당신이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 중의 하나를 관찰할 때에, 아시오, 당신은 실제로 당신 자신을 아시트를 사용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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